커피
강릉에는 카페가 참 많다. 체감상으로 강릉 내 카페는 편의점이나 치킨집 보다 많은 것 같다. 실제 한국은행 강원본부가 발행한 보고서에 의하면 강릉 지역의 카페는 인구 1만명당 25개로 전국 평균 14개보다 2배 가까이 많다. 그래서 서울에서는 쉽게 접하지 못하는(?) 핸드드립 커피 전문점도 흔하고, 집에서 커피를 직접 내려먹거나 커피콩을 볶아 먹는 사람들도 많다. 강릉에서는 매년 가을이 되면 커피축제도 열린다.
강릉에 있는 게스트하우스 답게, 강다방은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며 매일 아침 커피콩을 갈아 손님들에게 커피를 내려드렸다. 커피콩이 갈리는 소리, 커피를 내릴 때 퍼지는 향, 무엇보다 누군가를 위해 정성스럽게 커피를 내리는 걸 손님들은 참 좋아하셨다. 처음에는 누군가 볶아놓은 분쇄 커피를 내리기만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직접 원두를 갈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에는 생두를 사다 원두도 직접 볶았다.
한 번은 직업으로 커피를 내리는 분이 강다방 게스트하우스에 오셨다. 그리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아침 식사를 함께 먹으며 커피를 내려드렸다. 처음 생두를 사다 직접 로스팅을 했던 때였다. 당시에는 처음 콩을 볶는 때였기 때문에 가장 저렴하고 기본이 되는 베트남 커피콩(옥수수, 곡류 등 구수한 맛이 나는 것이 특징. 가격이 저렴하고 크레마가 많이 나오기 때문에 여러 원두를 섞는 브랜딩할 때 주로 사용한다)을 볶아 내려드렸다.
커피 애호가들, 전문가들은 스페셜티라 불리는 최상급 단일 원두를 마시는 편이고, 베트남 커피는 보통 보급형 커피에서 많이 사용하는 원두인데, 당시에 오셨던 손님은 강다방이 내린 커피를 정말 맛있게 마셔주셨다. 그리고 자신이 하는 일에 회의가 들어 여행을 왔고 커피가 생산되는 국가들을 여행할 계획을 세웠는데, 내가 내려드린 커피를 마시고 베트남을 여행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칭찬해주셨다.
힘든 일이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이것저것 해봤다고 했는데, 어떠한 것을 해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데 우연히 들어간 카페에서 마신 따뜻한 커피 한 잔이 자신의 마음을 어루어 만져줬다고 이야기 했다. 그래서 커피를 내리는 일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제는 얼굴도 생각나지 않지만, 가끔 커피를 마실 때면 그 때 그 손님이 생각난다. 그 때 그 손님이 마셨던 커피도 이런 느낌이었을까? 그 때 그 손님과 지금의 내가 마시는 커피처럼 커피 한 잔이 여러분에게 힘이 되어줬으면 좋겠다.
호미들 - 사이렌 Remix (Feat. UNEDUCATED KID, Paul Blanco)
울려댔어 사이렌
텅 빈 길거리엔
도망치다 흘린 칼자루와 피가 흥건해
우리 그때 어릴땐
뭘 몰랐었지 man
그냥 힘쎈 형이 제일로 멋졌었지 그땐
그래 우린 살아나왔어 지옥
이제 어딜가든 다 비옥
수도 없이 맛본 치욕
어릴때부터 입에 붙은 쌍욕
절대 할 수 없었지 신고
할 수 있는게 오직 기도
어떻게 느끼겠어 피곤
붉게 물들지 않을려 내 흰옷
아무 방법이 없어 no way
돈만 준다면 해 노예
내 믿음이 바뀌기 전에
주변이 다 바뀌길 원해
아직 죽지마 ma bro
달려왔어 짓밟고
상처투성이된 몸
씻기엔 피가 물든 손
빈속에 피워대기엔 뻑뻑해
눈뜨고 나니 전봇대
일을 해도 don't payback
가난한게 make me 죄인
닥쳐 you know ma pain
편히자 now we safe
벌어들여 다 stack my chips
남들앞에 마침내
울려댔어 사이렌
텅 빈 길거리엔
도망치다 흘린 칼자루와 피가 흥건해
우리 그때 어릴땐
뭘 몰랐었지 man
그냥 힘쎈 형이 제일로 멋졌었지 그땐
그래 우린 살아나왔어 지옥
이제 어딜가든 다 비옥
수도 없이 맛본 치욕
어릴때부터 입에 붙은 쌍욕
절대 할 수 없었지 신고
할 수 있는게 오직 기도
어떻게 느끼겠어 피곤
붉게 물들지 않을려 내 흰옷
진흙탕에서 STARTED
바닥에서부터 클라이밍
닥치는대로 다 TRY SHIT
돈을 원했어 단지
성공을 할수 있다면 고민 없이 걸어 내 모가지
이젠 눈물없이 보지 못하겠어 내 어릴적 사진
엄마 내가 돈 못벌면 파 호적
차라리 죽는게 나으니
얼른 가난을 졸업하고말꺼야
난 반드시 변하지않아 나의 목적
평생 한길만 팠으니
멈추지않아 나의 도전
난 잃을께 없는 하층민
나의 친구들의 눈엔
아직 슬픔이 담긴 흰자
내 친구들을 꼰지를
빠엔 앉아 전기의자
어릴적에 생긴 상처들을 다
명품옷으로 위장
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 잃지않아 희망
울려댔어 사이렌
텅 빈 길거리엔
도망치다 흘린 칼자루와 피가 흥건해
우리 그때 어릴땐
뭘 몰랐었지 man
그냥 힘쎈 형이 제일로 멋졌었지 그땐
그래 우린 살아나왔어 지옥
이제 어딜가든 다 비옥
수도 없이 맛본 치욕
어릴때부터 입에 붙은 쌍욕
절대 할 수 없었지 신고
할 수 있는게 오직 기도
어떻게 느끼겠어 피곤
붉게 물들지 않을려 내 흰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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