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출판물, 에세이
3번의 퇴사, 4번의 입사, 최우진
제목 : 3번의 퇴사, 4번의 입사
저자 : 최우진
펴낸곳 : Harmonybook(하모니북)
제본 형식 : 종이책 - 무선제본
쪽수 : 243쪽
크기 : 128x188mm
가격 : 15,000원
발행일 : 2021년 5월 1일
ISBN : 979-11-89930-86-8 (03810)
공무원, 공단, 해외취업을 거쳐 대학병원 직원이 된, 프로 퇴사러의 이야기. 투박하면서 솔직담백한 직장 뒷담화(?)가 매력적인 책입니다. 체코 해외 취업 사기(?)와 일본인 여자친구와의 연애(!)까지. 퇴사를 고민하고 있다면, 파란만장 샤이 보이의 퇴사썰을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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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회사 안 그만뒀지?"
전화를 먼저 잘 걸지 않는 할머니로부터 수화기 너머 들려온 첫마디였다. 나를 아는 거의 모든 사람은 내가 틈만 나면 퇴사한다는 인식을 하고 있기에, 그 기대에 부응해서 이제부터는 취미란에 '퇴사'라고 적는 것도 고려 중 이다. 서문을 적으면서 다시 다짐한다. 이제 다시는 퇴사를 하지 않겠다고. 아, 중간에 '섣불리'라는 단어가 빠졌다.
공무원, 공단, 해외 취업 그리고 대학병원 교직원까지 일련의 과정을, 제목만 보면 누군가가 간절히 원하는 것들의 조합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찰리 채플린이 인생이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라고 말했다. 내 삶을 자주 자세히 들여다보면 희극보다는 비극에 가깝다고 느꼈다. 비루하게 그지없는 삶이었으나 이렇게 내 삶을 글로 적는 이유는 지나온 내 삶이 대한민국에 사는 누군가의 이야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를 직장과 회사에서 고군분투하며 일하는 모든 이들에게 바치고 싶다.
혹자는 퇴사는 실패가 아니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내가 느낌 감정들은 뭐지? 내가 느꼈던 이 퇴사를 하면서 느낀 모욕감과 추락감은 무엇이었을까?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나 자신을 치유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으나, 누군가에...
한국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특징 중에 '자의식의 과잉'이라고 하는 개념이 있는데, 본인이 굉장히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을 말한다. 스스로 아주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세상과 부딪히면서, 우주에서 내 존재가 먼지와 같다는 것을 깨닫고, 순간 정말 먼지가 된 것처럼 부끄러워졌다.
장마다 속했던 조직을 기준으로 작성했다. 1장은 취업일기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수험생의 이야기를 담았다. 2장은 그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고 공직자로 지내면서 느꼈던 감정과 소회를 풀어보았다. 3장은 이직하여 누구나 알만한 공단에서 일하면서 느낀 중고신입의 고충과 고민을 적었다. 또한, 그리 길지 않은 두 번째 직장 생활을 마치고 맞이한 공백기 동안 겪었던 다양한 에피소드도 함께 담았다. 4장에서는 해외 취업을 위해 해외로 나가 방황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해외 기업에 취업해서 해외 생활을 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5장에서는 현재 다니고 있는 대학병원에서 일하면서 느꼈던 소회를 적었다. 가장 분량이 적지만, 회사 생활에 대해 진지하고 깊이 있는 고민...
내가 그만두게 된 이유 중 가장 큰 이유는 아마 '잘해야 한다.'라는 생각의 강박감이 컸던 것 같다. 그것도 매우 높은 기준을 자신에게 적용하고 있었다. 아직 나는 조직 안에서 초심자였고, 못하는 것이 당연한 시기인데 본인에게 너무 엄격한 잣대를 자신에게 들이대면서 매일매일 좌절했던 시기였다.
내가 생각하는 조직의 기준치는 이미 5년간 다닌 국가기관에 맞추어져 있으니, 규모도 공무원 조직보다 10분의 1로 작고 여러 가지로 부조리한 것이 많은 이 공단이 성에 찰리가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 공무원 조직과 비교하면서 맘에 들지 않는 것을 불평하기 시작했다. 틈만 나면 공단을 욕하면서 퇴사해야 할 이유를 찾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만두기 2주 전에, 본부 주최로 또 집합 교육이 있어서 한 호텔에서 다시 동기들과 모이게 된다. 이미 퇴사를 마음을 먹었고 나를 마음고생시켰던 조직원들과 동기들에게도 정을 떼기 시작했다. 아직도 나는 반장이라는 직책을 맡고 있었지만, 그 무거운 직책도 조금 내려놓고 싶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교육에 임하려고 했으나, 교육받는 마지막 날에 본부 행사에서 마술공연을 해 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마술 공연이라, 예전 같으면 내가 그 조직에서 인정받는 도구로 사용했을 것 같은데, 이미 이 공단의 마일리지를 모두 차감하고 조직으로부터 탈주를 계획하고 있어서, 그저 마술사의 입장으로 공연만 잘 해내자고 마음먹었다.
공연을 마쳤고 현업에서도 응원의 연락이 왔으나, 별로 달갑지는 않았다...
특히 이직하는 사람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이직을 선택했다면, 현재 직장에서 어떤 형태로든 스트레스나 어려운 부분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때 이직하는 사람이 착각하는 것 중 하나는, 지금 직장에서 충분히 보장되는 것이 다음 직장에서 여전히 보장되리라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나마 글자로 공지된 내용은 예상하고 당할 텐데, 들어가 봐야 알 수 있는 단점들은 예상을 전혀 할 수 없다.
당연하게 누려오던 것을 다음 직장에서 누리지 못하면 이 충격은 생각보다 크다. 이 느낌은 있던 것을 뺏기는 느낌이다. 추가로 받아야 할 것을 못 받은 것과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뺏을 때의 느낌은 분명히 다르다. 이직하면서 지금 직장의 단점만 보완하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세상이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사고방식이다.
예를 들어, 현재 애인의 가진 1가지 단점을 완벽히 보완하는 새로운 이성...
체코에 살려고 마음먹고 2개의 여행용 가방과 여분의 옷 가방까지 가지고 왔었다. 허망함을 느낀 후 그중 필요 없다고 생각되는 옷가지와 신발을 숙소에 버려두고 여행용 가방 1개는 기숙사 앞에 버려두고 나는 닷새 만에 체코의 공항으로 돌아왔다.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았기에 다시 경유하는 비행기를 예약했다. 체코에서 중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고 중국에서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를 타고 한국을 돌아왔다. 한국을 떠난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 유럽에서 나는 돌아왔다. 이 사실을 아는 것은 나에게 살 집을 공유해준 내 친구 지호를 제외하고 아무도 없었다. 한국행 비행기를 탔을 때 가장 두려웠던 것은 주변 사람들에게 말해 놓은 것을 내가 번복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제일 부끄러웠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남들의 시선 따윈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체코로 떠난다고 주변 사람들은 모두 만나서 송별회도 하고 파티를 열고 해외로 떠났다. 그런데 계약상의 문제로 한국을 일주일 만에 돌아왔다고 말할 자신이 없었다.
나는 한국팀에서 거의 왕따였다(이젠 천성인가 싶다). 정확히는 한국 팀에서 왕따 비슷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회사 내에는 다양한 국가 출신의 외국인 친구가 있었다. 화교 친구가 있었고, 태국 친구, 일본 친구들 이렇게 다양한 국가의 동료들과 가깝게 지냈다. 그중에 제법 친한 친구가 많았다. 아이러니하게도 한국 사람들과 가장 사이가 안 좋았다. 몇몇 그런 후진 생각을 하는 팀원이 싫었다.
한동기는 이렇게 말했다.
"아유, 저 후진국(말레이시아) 새끼들.”
"아유, 저 일본놈들.”
이렇게 말한 사람은 자신이 말한 그 후진국에 이민을 마음먹고 아이들을 교육하겠다고 교육 이민을 온 가정의 가장이었다. 이미 말 몇 마디에서 자체 모순이 있었다. 그는 처음 말레이시아에 온 날 생각 없이 내뱉는 말로 내 심기를 매우 불편하게 했던 사람이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다.
미키 이야기
A에게 신물이 난 상태에서 우연히 내가 사는 콘도미니엄 로비에서 엄청나게 예쁜 사람을 발견한다. 동양인인데 한국 사람도, 중국 사람도 아닌 듯했다. 느낌대로 일본사람이었다. 일본사람이고 이 콘도에 살면 나와 같은 회사 에 다닐 가능성이 99%였다. 새로 들어온 직원으로 보였다. 피부가 흰 눈처럼 하얗고 눈은 고양이 같았다. 옛 여자친구 때문에 힘든 순간에도 여전히 내 심장은 뛰었다.
역시 사랑을 빼놓고는 나를 이야기할 수 없다. 그녀를 처음 보고 한동안 그 잔상을 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어떤 행동을 할 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인연이라면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되리라 생각했다. 거짓말처럼 얼마 되지 않아, 나는 퇴근하면서 그녀와 그녀의 동료를 만나게 된다. 잠시 망설이다가 집에 가는 지하철 안에서 말을 걸어 보기로 한다. 용기 내서 말을 걸었던 내가 무안하지 않게 그녀는 기쁘게 나를 반겨주었다. 그녀의 이름은 '미키'였다.
나는 퇴근하는 길을 그녀와 동행했다. 같은 건물에 사는 것까지는 알고 있었지만 더 놀랐던 것은 그녀가 엘리베이터를 타 순간 우리는 같은 층...
비교적 시골에 있는 내 직장에서 직원들이 가족처럼 지낸다고 입사 후 인사 담당자에게서 들은 적이 있다. 동료들이 가족 같은 것이지, 진짜 가족은 아니다. 첨언하면, 가족이 사이가 좋거나 화목할 것이라는 편견은 버리자. 그런 의미로 가족이라면 이 문구는 같은 맥락일 수도 있다. 직원끼리는 가족 같은 것보다 차라리 데면데면한 것이 건강한 직장 생활에 더 이롭다.
나는 회사에 아무런 기대가 없다. 직장생활은 0으로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하자. 공룡을 잡으러 온 곳에서 그 밖의 것까지 욕심내지 말자. 여기서 시작하면 생각보다 삶의 만족도가 높아진다. 회사에 아무런 기대가 없으면 뜻밖의 친절에 감사하게 된다. 또 맘이 맞는 동료들이 생기면, 그 회사 생활이 더 즐거워질 것이다. 회사에 아무런 기대가 없던 나에게 감사할 일이 덤으로 생기는 것이다. 예전에 취업이 힘들었던 시절에는 출근할 회사가 생긴다면 '영혼을 팔아서라도 회사가 시키는 모든 것을 해야지'라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보통 입사 후 마음은 180도 바뀌어 곧 불만 가득한 사람이 되고 만다.
"본인이 에티오피아 난민보다 상황이 좋으니 감사하면서 사세요."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도 아니고 "회사는 돈만 주는 곳이니, 다 무시하고 제멋대로 사세요"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보래 내 것이 아닌 것을 욕심내고...
언젠가 다가올 4번째 퇴사를 위해서
나는 열등감 덩어리였다. 어렸을 때부터 하고 싶은 것도 많았고 가지고 싶은 것도 많았다. 20살이 되는 순간부터 내가 하고 싶었던 것들을 하나하나 하기 시작했다. 군대를 다녀온 후 2년을 공부해서 공무원 시험에 붙었다. 그 성취감을 시작으로 나는 새로운 것들을 도전하는 데에 재미를 붙였다. 마술을 배웠고, 외국어를 공부했다. 정부 기관에 근무하면서 직원모델에 발탁이 되기도 했다. 정말 되고 싶었던 직원모델도 막상 되어보니 별것이 없었다. 물론 그 추억은 가치 있는 경험이었다. 공무원도 되어보니 다시 놀랄 것도 없는 보통의 삶이 되었다. 공사·공단으로 이직해서 경제적인 여유를 조금 더 누려야지 생각했지만, 막상 가보니 그것도 내가 원하는 생활이 아니었다. 해외에서 사는 삶이 자유롭고 경쟁에 지친 대한민국에 사는 것보다 여유로우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해외에서 일해보니 내가 꿈꾸던 해외 생활은 다큐멘터리에서 보던 아름다운 풍경과는 사뭇 달랐다. 그리고 지금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서 대학병원의 행정직 직원으로 일하고 있다. 이 긴 이야기가 공공기관 도장깨기를 하는 바람의 파이터로 보일 수 있지만, 단지 매 순간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지키기 위한 노력과 선택이 모여 우연히 지금 내 모습이 된 것이다. 막상 내가 가고 싶었던 직장을 모두 다녀보니 별거...
강다방 이야기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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