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작가, 에세이
오늘도 소집하나요?, 고기은
커피거리로 유명한 안목에서 조금만 방향을 틀어 남쪽으로 향하면, 남항진과 남항진 가는 길 병산동 감자옹심이 마을이 나온다. 이 책은 병산동 감자옹심이 마을에 있는 갤러리 소집, 소집지기가 쓴 이야기다. 소가 살던 우사를 고쳐 갤러리로 만들고, 코로나를 겪고, 공간을 운영하며 만난 사람들과 5년이란 시간 동안 보고 느낀 이야기가 담겨있다. 강다방도 깨알 등장한다. 2024년 4월 28일까지 소집 5주년 특별전 <오늘도 소집하나요?>가 갤러리 소집에서 진행 중인데, 이 책을 읽어보고 가면 더욱 좋다.
제목 : 오늘도 소집하나요?
저자 : 고기은
펴낸곳 : 위아고앤
제본 형식 : 종이책 - 무선제본
쪽수 : 216쪽
크기 : 135x195mm
가격 : 17,000원
발행일 : 2024년 4월 24일
ISBN : 979-11-959872-1-4 (03810)
소집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storysozip/
유튜브 채널 소집
https://www.youtube.com/channel/UC7vi7svcFbCinslJsgOuN9Q
오늘도 소집하나요?
고기은 지음
자연 여행자에서 사람 여행자가 된
아버지와 딸이 강릉에서 그려가는 갤러리 이야기, 소집
프롤로그
'여기가 정말 소가 살았던 공간이라고?'
'아버지와 딸이 같이 꾸려가는 갤러리라고?'
누군가는 한 편의 동화라고 말한다. '동화라면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결말이 나겠지만 강릉 남항진 해변으로 향하는 길에 자리한 병산동 마을의 작은 갤러리 '소집' 이야기는 5년째 현재 진행형이다.
소집은 소를 키웠던 공간에서 이야기를 키워가는 갤러리로 2019년 4월 24일 문을 열었다. 해마다 '이대로 괜찮은 걸까?' 고민이 깊어진다. 지난해 봄에 고민이 절정기에 다다랐다. '계속 이 공간을 할 수 있을까?' 갈림길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매입이 아닌 세입으로 공간을 시작했던 것이기에, 5년의 계약기간 만료일을 1년 앞두고 고민이 깊어졌다. 더 이상 할 수 없는 상황이 될 수도 있고, 더 할 수 있는 상황이 되어도 마음이 편치 않은 상황이었다.
1부 강릉 소집 갤러리 고종환, 고기은 작가 편, 2부 정선 사진 작업실, 들꽃 이혜진 작가 편, 3부 강릉 웨이브 우드 이동근 작가 편으로 제작했다. 지역에서 창작 활동과 더불어 문화공간을 운영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함께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오랜만에 두근거리는 작업이었다. 담고 싶은 이야기는 너무나 많은데 분량 제한이 있어 줄이고 줄여야 했다. 다 풀지 못한 이야기를 글로 풀어냈다.
고향으로 돌아온 지 8년, 공간을 한 지 5년에 접어들어서야 용기가 생긴다. 글을 쓰지 않는 시간도 글을 쓰는 시간이라고 말했던 선배의 말을 되뇌는 오늘이다. 이제야 비로소 그 시간을 헤아리고 쓰는 밤이다.
차례
프롤로그
'처음'의 길 위에서 함께한 사람들, 소집
14 첫걸음의 길 위에서
21 하고자 하는 의지를 키워준 사람들
28 첫 소집 날까지 함께 걸어준 사람들
34 해를 거듭할수록 단단해지는 다정한 마음들
38 그림 읽어주는 소집지기를 시작하다
42 첫 소집 아트페어
이야기를 풀어내는 갤러리, 소집
2018년 봄. 믿었던 사람들이 등을 돌리며 어디론가 다시 떠날 마음이 커지던 때였다. 예전 같으면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났을 나지만 그때는 이상하게 이대로 떠나긴 싫었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이 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의 <동해안 공간 기반 청년창업 지원사업> 모집 공고였다. 그 공고를 보고 생각했다. 이곳을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번 지원해 보자고. 그때 공간을 구하지 못했다면, 지원 사업에 떨어졌다면 아마도 난 지금 강릉이 아닌 곳에서 다른 일을 하며 살고 있지 않을까 싶다.
가장 아프게 하는 것도 사람이지만 가장 낫게 하는 것도 사람이었다. 가장 힘들 때 손을 놓아버린 사람들이 있었고, 또 손을 잡아준 사람들이 있었다. 그때 당시에 협업 활동을 한 언니, 오빠가 정말 좋은 기회인 거 같다며 꼭 지원해 보라고 용기를 주었다. 어쩌면 그때 난 어디에도 둘 수 없는 마음을 여기에 잠시 기댔었던 것 같다. 지원하려면 우선 '유휴공간'부터 찾아야 했다.
예술을 늘 곁에 두는 삶을 살고 있는 것에 감사하다. 예술가의 길을 걷고자 하는 사람에게 사람들은 '돈도 안 되는 거'라고들 한다. 또 예술을 경험하는 것은 '돈이 있어야 하는 거'라고도 한다. 좀처럼 예술과의 거리를 좁힐 수 없게 하는 말들이다. 예술을 하려는 사람들에게 주눅들게 하는 말 대신 따뜻한 말을 건네는 사람들이 많아지길 소망한다. 예술을 경험하는 것엔 큰 돈이 드는 것도 아니다. 미술관, 박물관은 관람료가 대부분 무료이기에 그곳을 찾아갈 시간만 있다면 충분히 경험할 수 있다. 그림이 꼭 미술관에만 걸려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늘 걷는 길에도 그림들이 있다. 소집을 '카페'로 알고 들어온 사람들이 잠시 그림 앞에 멈춰서 그림을 바라보는 뒷모습을 볼 때가 좋았다. 앞으로도 그러한 모습을 많이 보고 싶다.
그동안 열린 전시를 다시 써 보았다. 때때로 나에게 질문을 던지는 전시가 있었고, 용기 내 첫걸음을 뗀 전시가 있었고, 경계를 허물어 준 전시가 있었다. 소집을 지키면서 늘 바짝 긴장하는 나에게...
오랜만에 여의도환승센터에서 내렸다. 여의도 공원을 걸었다. 점심 때마다 식후 커피를 마시며 걷곤 했던 길이다. 서서히 보이기 시작하는 방송국 건물. KBS를 보는 순간 가슴이 두근거렸다. 많이 보고 싶지만, 만날 수 없었던 사람을 오랜만에 만났을 때의 두근거림이었다. 오르고 내리고 하던 계단도, 수없이 드나든 현관문도 그대로 였으나, 로비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새로운 카페가 들어서 있었고, 낯선 공간들이 생겼다.
13년 만의 출근이었다. 제작진이 아닌 출연진으로의 출근이었다.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오는구나. 묘했다. 녹화 일로부터 일주일 전쯤의 일이다.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이동 중이라 전화를 받지 못했는데, 그 사이 강다방 님의 문자 한 통이 함께 와 있었다.
나의 출근길이 여행길이 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도로명 덕분이다. 공항길. 길 이름마저 반하게 하는 동네이다. 걷는 걸 좋아해서 집에서 소집까지 걸어서 출근하곤 한다. 긴장되는 마음으로 출근을 하지만 이 도로명 덕분에 잠시 설레는 여행길이 된다. 이 길의 끝에 공항이 나올 것만 같다. 하지만 공항은 없다. 이제는 없다는 게 정확한 표현이겠다. 한때 이곳엔 공항이 있었다. 현재 강릉 공군부대가 자리한 곳에 강릉공항이 있었다고 한다. 2002년 양양국제공항이 개설되면서 폐항되었다. 유치원 다닐 때였던 것 같다. 아버지, 어머니, 동생이랑 비행기를 타고 서울에 갔던 기억이 있다. 어머니께 내 기억이 맞는지 물었다. 그렇다고 한다. 서울 대학병원에 입원해 계신 할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에 급히 비행기를 타고 갔다고 한다. 강릉공항은 나의 첫 비행기 탑승 장소였다.
책으로 아버지와 나는 또 다른 여행을 이어가게 되었다. 아버지와의 동행 취재 일이 부쩍 늘어났다. 그러한 시간 속에서 좀 더 아버지 를 알아가게 되었다. 그러면서 닮은 점도 하나둘 발견했다. 근사한 풍경을 만나면 발걸음을 멈추고 눈으로 먼저 담고, 그다음 카메라에 담는 모습까지 꼭 닮았다.
방황의 시기가 꼭 10대에만 있는 건 아니라는 걸 서른 살에 알았을 때, 아버지는 쉰다섯 살에도 있다고 알려주셨다. 방황하는 아버지와 나를 바라보는 어머니는 오죽 애가 타셨을까 싶다. 어머니께는 늘 죄송한 마음이 크다. 그러면서도 아버지와 내가 방황의 시기가 겹쳐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 시기가 맞지 않았다면 같이 여행하는 시간도, 함께 소집을 하는 시간도 허락되지 않았을 테니까.
코로나19까지 예상치 못한 위기 속에 잘 되던 공간들도 줄줄이 폐업하고, 서울의 내로라하는 갤러리들도 문을 닫는 마당에 이렇게 버틴 게 용하다고. 사실 그 말을 들었을 때 좀 불쾌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론꿋꿋이 버틴 것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다.
가끔 그런 분들도 있다. 전시가 끊이지 않고 열리다 보니 기관이 운영하는 공간인 줄 알았다고. 개인이 운영하고 있다는 걸 알면 깜짝 놀라기도 한다. '원래 좀 부유한 집인가?' 하는 분도 있었다. 작품이 많이 팔리는 것도 아니고, 커피, 미숫가루, 차를 파는 카페라고는 하지만 그렇게 많이 팔리는 것 같지도 않은데 대체 무엇으로 수익이 나는 거냐고 묻는다.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상사에게 이야기했던 날에도 상사는 나에게 회사 나가면 '뭘 해서 먹고 살거냐?'고 묻기도 했다. 나에겐 늘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질문이다.
돈을 좇아 사는 삶이었다면 고향에 돌아올 일도 없었을 것이다. 훨씬 돈을 많이 주는 곳으로 이직했거나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일...
최근에 한 작가가 내게 물었다. 어떻게 지치지 않고 이 일을 하고 있냐고 이 일이 나는 여전히 재미있기 때문이다. 내가 제일 두려운 것은 재미를 잃는 것이고, 하고 싶은 것이 없는 삶이다. 만약, 또 다른 재미있는 일을 찾게 된다면 그 일에 도전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내 판타지에 살고 있다'라는 예술가 요나스 메카스의 말처럼, 나도 고향에서 내 판타지에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드라마를 쓰겠다며, 스물아홉 살에 호기롭게 회사를 관두었던 나는 드라마 교육원을 다니며 점점 위축되었고, 드라마 작가의 꿈과 멀어졌다.
'길을 잃으세요.'
여행 글쓰기 수업에서 선생님의 한 마디가 다시 걸어 나갈 힘을 주 었다. 그러다 강릉에 이르렀다. 고향을 떠난 지 10년 만에 다시...
'드라마를 쓰겠다더니, 드라마처럼 살고 있다고.'
인생이란 알 수 없고 또 유한하기에, 언젠가 다시 또 어디론가 떠나는 날이 올 때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기도 하다.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 이곳에서 하고 싶은 건 다 해볼 작정이다. 이 시간이 유한해서 더 절실해지는 하루하루다. 그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데 있어 소는 결코 혼자 키워갈 수 없다. 그동안 함께 키워준 사람들이 있어서 나아갈 수 있었다. 앞으로도 허락된 날들 동안 함께 무럭무럭 키워가고 싶다.
멈춰있던 공간이 다시 쓰임이 있는 공간으로 재생되었듯이, 무언가 잊어버린 꿈 혹은 잃어버린 꿈이 소집에서 다시 재생되기를 바란다. 오늘도 소집은 당신의 꿈을 소집한다.
고기은
고향여행자이자 소집지기
여행이 책이 되고,
책이 여행이 되는 시간을 선물하고 싶은 사람.
방송구성작가, 컨텐츠 에디터로 활동하며,
팍팍한 서울살이를 하다, 고향 강릉으로 돌아왔다.
잠시 쉬어 가려던 곳이었는데,
8년째 살아가고 있다.
여전히 '정착'이란 말은 무겁다.
그래서, 스스로 '고향여행자'라 칭하며,
강릉에서 살아가고 있다.
2019년 4월부터 강릉 병산동 마을에서
소집 갤러리를 아버지와 함께 꾸려가고 있다...
강다방 이야기공장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용지로 162 (옥천동 3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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