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서점 출판사 창업 운영/2023 강동면 마을문화디자이너

강릉시 강동면 관련 도서 서적 (광명강동)

강다방 2023. 9. 30. 20:16

 

 

 

 

 

광명강동(光明江東)
강동면(江東面)
강동면개칭100주년기념사업회

 

 

 

 

 


祝江東面誌發刊
강동면지 발간을 축하하며

정항교(오죽헌박물관장 문학박사)

江滾群仙千載中
군선강은 유유히 동해로 흘러들고

德峰聳翠臨瀛東
임영 고을 동녘에는 망덕봉이 우뚝 섰네

楓湖月色清秋白
풍호에 비친 달빛 가을이라 더욱 밝고

伽寺鐘聲落日紅
낙가사 종소리는 노을 속에 들려오네

致祭松潭鄕里範
율곡 선생 제향 함은 향리의 본보기요

前賢可續萬年風
선현의 얼 이어감은 만고의 풍습이네

花郞遊邑限昌盛
화랑선인 노닌 고을 번영이 끝이 없고

X久尤新永無窮
새로움 속 강동 발전 영원히 무궁하리

 

 

 

 

 

 

帆詩

내고향 江東
- 강동면지 발간을 축하하며

淸江 金X卿 (충북대학교 명예교수)

정기가 萬德에 뻗어내료
XXX 골짜기마다 맑은 물이 흐르고
동해의 아침 햇살 正東津에 빛나는데

群仙江, 寒松亭은 화랑들이 노닐던 곳
성현의 가르침을 松潭에 간직한 채
獻花歌의 사연은 끊어질 듯 전해진다

江東八景 풍광 속에 인심이 후덕하고
오곡백과는 철따라 풍성하여
詩洞에 글 읽는 소리 예부터 소문났네

전생의 緣이 있어 이곳에서 태어나서
茅田에 함께 모여 높은 꿈 키우더니
아버님 새기신 뜻 온 누리에 펼쳐본다

江東의 뿌리는 어딜 가나 잊을 수 없어
이제는 돌아와 어머니 품에 묻히리니
고향의 흐뭇한 情感 만세에 이어지리


 

 

 

 

강동면의 공공기관

강동면사무소
정동진하수종말처리장
강동보건지소
정동보건진료소

 

 

 

 

 

강동초등학교
강동복지회관
정동초등학교
임곡리보건진료소
강릉경찰서 강동파출소
임곡초등학교
해양경찰서 안인진리출장소
동산어린이집
안인역

 

 

 

 

 

통일안보공원

통일공원 내 북한잠수정
통일공원 내 전시 함정
통일공원 전시관
통일공원 내 의병항쟁 기념탑
통일공원 내 공군전적기념비
통일공원 내 베트남참전기념탑
통일공원 내 6.25전쟁 민간인 희생자 위령탑

 

 

 

 

 

통일공원 내 6.25 남침사적탑
통일공원 내 강릉무장공비 침투 희생자 위령탑
통일공원 내 무궁수훈자공적비
통일공원 내 등산로
통일공원 내 임해자연휴양소
통일공원 앞 거북바위

 

 

 

 

 

강동면의 문화재

정동진 해안단구 사면
하시동고분군
강릉 고려성
하시동 파괴분 및 고배류(1916 조선총독부), 2010년 강행 『강원도사』 참조

 

 

 

 

 

안인리유적 (2000년 강릉대학교 박물관; 2010년 강원도사 참조)
안인리 유적 아궁이식 노지
안인리 유적 점토띠식 노지
안인리 유적 여(呂)자형 주거지
안인리 유적 철자형 주거지

 

 

 

 

 

송담서원
등명사지5층석탑
안인 해랑당 내부모습
남한복효자각
하시동 박창규 가옥

 

 

 

 

 

강동면의 관광자원

안인진리 해변과 해안가
심곡리 헌화로
정동진리 전경 및 해안

 

 

 

 

 

정동진리 해안과 정동역
정동진 모래시계
등명해수욕장

 

 

 

 

 

군선강 하구(염전리)
하시동(옛 풍호지) 연꽃 축제
영인정
강릉승마장

 

 

 

 

 

명선문 모습
명선문 암각서
심곡리 포구 전경
심곡리 해안도로(헌화로)

 

 

 

 

 

강동면의 산업
안인진항
심곡항
임곡리 대흥자원개발 채굴현장
단경댐
정동진역

 

 

 

 

 

강동농협 강동지점
언별리 한우농장
산성우리 성황당 소나무
염전리 들판과 영동화력

 

 

 

 

 

 

제1편 강동면의 역사

제1장 선사시대의 강동면

제1절 구석기시대
1. 정동진리 50-89번지 유적
2. 심곡리 유적

제2절 신석기시대
1. 하시동 유적

제3절 청동기시대

제4절 철기시대(원삼국시대)
1. 안인리 유적

 

제2장 고중세의 강동면

제1절 통일신라 이전 강동면의 역사적 변화
1. 하시동 고분군

제2절 통일신라 이후 강동면의 역사적 변화
제3절 고려시대의 강동면

 

 

 

 

 


제4장 비지정 문화유산
제1절 현존 문화유산
1. 明德齋
2. 敬寅齋
3. 篤慶齋
4. 孝子南漢復之間
5. 長安城
6. 三韓城
7. 괘방산성.
8. 명선문
9. 허리대
10. 영하대
11. 구로대
12. 강동(江東)8경.
13. 풍호(楓湖)8경 (1)
14. 풍호8경 (2)

 

 

 

 

 

 


15. 태봉(胎封)
16. 6.25 남침사적비
17. 영인정
18. 항일의병기념탑

제2절 현전하지 않는 문화유산.
1. 옛 燈明寺
2. 사선정
3. 풍호정
4. 한송정
5. 오근산 봉수대
6. 해령산 봉수대
7. 안인역

 

 

 

 

 


11. 가춘시화
12. 영주구로회첩
13. 시호년기
14. 간찰-강릉향교 관련 자료
15. 간찰-대동아 전쟁 동원 관련 자료

제2절 송담서원 소장자료.
1. 송담재지
2. 송담재복조부
3. 서원관리조례

제3절 기타 소장처
1. 강동면사무소 소장 자료
2. 강릉시오죽헌시립박물관
3. 관동대학교 박물관

 

 

 

 

 


제2절 강동면의 근·현대문학
1. 시

제4편 강동면의 종교와 민속
제1장 종교
제1절 사찰
1. 등명낙가사.
2. 대성사[조계종]
3. 보현사
4. 약사전
5. 연등암[조계종]
6. 오룡사[서화종]
7. 용왕사

제2절 유교
1. 강릉유도회 강동면 지회 역대 강동면 지회장
1 강동면 출신 강릉향교 역대임원

 

 

 

 

 


제1절 설화
1. 채록설화
1) 화비령 아기 장수전설
2) 삼정승 육판서가 난 자리
3) 방재를 혼자 넘은 여자.
4) 화비령에 호랑이가 없어진 내력.
5) 고성산(山) 유래
6) 잉어 잡아먹고 망한 집안
7) 진둔지와 가둔지
8) 송담서원이 없어진 내력
9) 구무덤(九夫塚·八夫一妻墓)
10) 총각 덕에 살아난 호랑이
11) 어정거리 장사

 

 

 

 

 


27) 상시동 거북골

2. 문헌에 전하는 설화
1) 안인진리 서낭당
2) 안인 해랑당
3) 안인해령사
4) 등명산의 명당자리
5) 밤재 호랑이와 강감찬
6) 화비령 도둑 물리친 나승보
7) 안인 해랑당 전설
8) 해랑당 전설
09) 녹두정
10) 녹두(菉荳亭)
011) 권동지와 김동지
12) 여귀(女鬼)쫓는 목제칼

 

 

 

 

 


14) 안선달의 장력 (壯力)
15) 경주 김씨와 독송정(獨松亭)
16) 회비령 호랑이
17) 육발 호랑이의 내기두기
18) 명사와 왕의 안질
19) 마귀할미바위의 유래
20) 여자에게 속은 호랑이
21) 해랑당신
22) 구리바위
23) 등명낙가사
24) 기생바위와 선비

3. 속설
1) 괘방산 때문에 과거에 급제를 많이 한다.

 

 

 

 

 


4) 베틀소리(가창유희요).
5) 우리애기 잘도잔다(아기 재우는 소리)
6) 상받아라 문열었다(널뛰는 소리)
7) 봉바봉아 천지봉아(신 부르는 소리)
8) 성님성님 사촌성님(가창유희요)

제4장 마을지
제1절 강동면 개관
제2절 자연마을 개관
1. 대동리(大洞里)
2. 모전리(田里)
3. 산성우리(山城隅里)
4. 상시동리(上洞里)
5. 심곡리(深谷里).
6. 안인진리(安仁津里)

 

 

 

 

 

 


9. 정동진리(正東津里)
10. 하시동리(下詩洞里)

제2절 지명유래
1. 대동리(大洞里)
1) 1리
2) 2리

2. 모전리(茅田里)
1) 12)
2) 2리

3. 산성우리(山城隅里)
1) 1리
2) 2리

4. 상시동리
1) 1리

 

 

 

 

 

제3절 민간신앙
1. 서낭제
1) 대동리
2) 모전리
3) 산성우리
4) 상시동리
5) 심곡리
6) 안인진리
7) 언별리
9) 정동진리·
10) 하시동리

2. 가신신앙

 

 

 

 

 


제5편 강동면의 인물
제1장 직업별
제1절 고위공직자
제2절 장성
제3절 저명인사
제4절 교육계
제5절 의회 의원
제6절 훈장

제2장 효자·효부
제1절 효자
제2절 효부

제3장 조선시대 인물

 

 

 

 

 


1) 행정기구 연혁
2) 행정기구도
3. 공무원 정원의 변천

제2절 행정구역 변천
1. 행정구역 변천 연혁
2. 행정구역 변화

제3절 부문별 행정
1. 총무담당
2. 주민생활지원담당
3. 민원재무담당
4. 산업담당.
5. 개발담당.

제4절 역대 면장 현황

 

 

 

 

 


신라의 영향권에 흡수되었음을 의미하며, 강동면 지역 역시 이때를 전후하여 신라와의 관계가 있음을 시사한다.

1. 하시동 고분군

강동면 하시동의 풍호와 바다 사이의 사구지대에 위치한 하시동고분군은 신라고분으로 약 10여기가 넘으며, 고분의 매장주체부는 수혈식석곽이다. 이 고분군은 일제강점기 세키노(關野貞)와 다니아(谷井濟一)에 의해 처음 조사되었고, 1970년대 문화재관리국에서 도굴된 수혈식석곽묘 2기를 발굴조사하였다. 발굴 당시 이 고분은 두광족협(頭耿狹)의 석곽묘로 침향은 동침일 가능성이 높고 낙동강 서안의 함안, 고령, 김해 등지에서 발견되는 석곽묘와 유사성이 있는 삼국시대 고식고분군으로 추정하였으며, 출토된 토기편의 편년을 통해 4세기 후반까지 올라갈 수 있다고 보았다. 한편 일제강점기 세키노의 의해 수습된 출토 토기는 동경대학 건축학부에 보관중인데, 그는 이 토기들이 창녕계토기가 포함되었을 가능성을 언급하였다.(早乙女雅博, 「三國時代 江原道 古墳과 土器一關野貞資料土器歷史的 意義」,朝鮮文化硏究 4, 1997; 定森秀夫·白井克也, 「韓國江原道溟洲下詩洞古墳出土遺物」, 『朱雀」, 11, 京都文化博物館)

한편 강동면 안인리 지역에서는 한성백제와 관련성이 있는 유물이 출토된 바 있는데...

 

 

 

 

 


강릉은 대도호부로 승격된 이래 조선 세조대에 진관체제가 정비되면서 삼척도호부와 양양도호부 등 2개의 府와 평해, 간성, 고성, 통천 등 4개의 郡과 울진과 흡곡 등 2개의 X를 통할하게 되었다. 따라서 조선시대의 강동면 역시 강릉대도호부의 설치와 그 흐름을 함께하고 있다.

2. 조선시대 수군 기지였던 안인어
沿海·國境 등의 중요지에 營.鎭을 설치하면서 지방의 治所를 제외한 변경에 대한 방어를 중요시 함에 따라 세종 때부터 內地 주현의 방어가 소홀하게 되었다. 이러한 난점을 해결하기 위하여 군사상으로 편제를 재정비하였는데, 이를 진관체제라 한다. 조선시대 강원도 수군편성 현황을 보면 다음과 같다.

 

 

 

 

 


<표 1> 조선시대 강동면 안인포의 소속
수군 僉節制使 (萬戶)
三陟鎮管 (三陟浦僉使)
안인포(강릉)·城浦(高城)·蔚珍浦•松浦(강릉)만호

강원도의 수군은 三陟管에 僉節制使가 배치되어 있었고, 고성·城珍강릉에는 萬戶가 있었다. 이중 강동면 안인포는 수군 주둔지로 알려져 있다.

한편 강동면 지역에는 고려성, 삼한성, 장안성 등 석성과 토성이 있는데, 특히 고려성에서는 조선시대 와편들이 발굴 조사되었던 점으로 보아 조선시대까지 군사시설로 활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후기 지방군은 진관체제 대신 신분까지도 편입시킨 속오군을 조직했다. 束伍軍은 처음 有役·無役, 良賤의 구분없이 거의 동원되다시피 하여 편성한 군대였다. 이들 東伍軍은 처음 前期軍制를 재편하고 倭亂을 극복하기 위해 應의 조처로 설치되기 시작했으나 왜란이 끝나자 서서히 지방군제의 핵심군대로 등장하였다.

이들 속오군은 처음 훈련도감의 操練習陣의 감독 아래 地方巡察使(監司) 책임하에 전기의 수를 없애고, 또한 이량취회 및 道路往來之弊를 없애기 위하여 평상시에는...

 

 

 

 

 


통해 본 강원도 관할 역도는 3곳이다. 한편 『호구종수』에 의하면, 남편인 강동면 지역에 안인역리라는 지명이 나타나는 점으로 안인역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6. 강동면의 봉수
조선전기 강원도의 봉수대는 『세종실록』 지리지와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48개체가 기록되어 있다. 이 가운데 강릉지역은 간선망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봉수대는 주문산 · 사화산 · 소동산 · 해령산 · 오근산 · 어달산에 있었다. 그러나 조선후기에 와서는 경흥으로 이어지는 본선에 속한 평강 · 회양·철원 · 금성의 봉수대만 존속하고 동해안으로 이어지는 간선망은 모두 폐지된다. 강동면에서는 안인진리 해령산 정상에 봉수가 있어 안인진리 수군 주둔지와 함께 군사 시설로 이용되었다.

 

 

 

 


7. 강동면의 교육기관

1) 송담서원
임란이후 전국적인 난후 복구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 속에서 강릉지방 사족들은 수령과 관찰사의 지원, 더 나아가서는 국가로부터의 지원에 힘입어 새로운 서원 건립을 추진하는데, 그것이 율곡 이이를 배향하는 송담서원이다.

이는 1536년(중종 31) 강원도 강릉 북평촌[현재의 강릉 오죽헌] 외가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사헌부 감찰이었던 李元秀이고 어머니는 신명화의 딸인 師任堂 申氏이다. 이이는 6세까지 강릉에 살았으며 귀경한 후에도 자주 왕래하였다. 이처럼 대부분의 유아기를 강릉 지역에서 보냈을 뿐만 아니라 성장해서도 외가의 大小事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으며, 外鄕의 사류들과도 긴밀한 관계가 형성되었던 것이 연유가 되어 송담서원에 배향되었다.

강릉지방 사족들은 1592년 서원 건립을 추진하였다. 서원을 건립하려는 목적은 이이가 도학의 종장이고 유림의 영수이기도 하지만 강릉이 그의 출생지라는 연유로 인해 강릉 사람들로부터 경모의 대상으로 추앙받고 있었으며, 이에 그를 추모하고 그의 덕을 높이 받들기 위해 서원 건립을 추진하였다.

 

 

 

 

 

 


많이 이동하였으며 동절기를 제외하고는 차량을 통해 대관령을 넘어 유입되기도 하였다.

<표5> 강릉군내 시장현황 및 매상고(1929년)
시장명 / 출장 판매자수 / 구매객수(평균) 1년 매상고 / 농산물 / 수산물 / 직물 / 축류 / 잡품 / 계

강릉시장
주문진시장
옥계시장
강동시장
연곡시장

<참고>: 「生活狀態調查」, 朝鮮總督府, 江陵篇, 1931.

시장은 주로 소규모로 형성되었는데, 1920년대 초기 강릉지역의 商圈은 평창·정선...

 

 

 

 

 

사단은 일거에 대관령으로 후퇴하였던 바, 이때 강동지구에서 북한군과 대치한 채 협공을 저지 중이던 제21연대의 혼성제2대대는 사단주력이 철수한 것도 모르고 있다가 철수를 완료한 27일 18:00에야 대관령으로 철수를 개시하였다.

그리하여 강동지역의 제21연대 2, 4, 8중대는 북한군이 이미 침입하였을 것으로 예상되는 강릉을 우회하여 박월리-장현리-제비리-구산리에 이르는 논길을 따라서 철수하고 제6,10중대는 새재-마수리재를 넘어 대관령으로 향하였다.

2. 북한 잠수정 침투사건

1996년 9월 18일 00:50분 경 강동면 안인진리 국도 상에서 얼룩무늬 복장 거수자 2명을 발견후 대포동 해안 암초에서 좌초된 미상선박을 발견, 인근 강동파출소에 신고하였다. 군·경 정보분석조가 현장에 출동하여 분석한 결과 북한 잠수정이었다. 북한 잠수정에는 북한 인민무력부 정찰국 직속 요원들로 영관급 6명, 위관급 16명, 미상 3명 등 25명이 승선하였고, 무기는 소총(M-16/AK), 브로닝 66식 권총, M26/F-1 수류탄 등을 소지하였다.

 

 

 

 

 


나. 책과 친해지기
활동명 / 활동 내용 / 실시일

유치원

동생·친구에게 책 읽어주기 / 연중
- 하루에 1권 동생이나 친구에게 책 읽어주기

도서관 나들이 / 주1회
- 망덕도서관을 방문하고 책보기 활동 후 관심 있는 책을 대여하기
- 대여한 책을 1주일 동안 유치원에서 함께 보고 반납하기

평생학습 정보관 견학 / 년 1회
-정보관 견학
- 정보관 소개 및 이용방법
- 전자책 홍보 및 이용방법
- 영상자료 관람 및 다양한 독후관련활동

연관 및 확장활동 / 연중
- 동화 속 세상
· 매월 2권의 책을 선정하여 다양한 독후 활동 해보기
-나만의 책만들기
· 생활 주제와 관련된 활동 내용을 북아트를 활용하여 나만의 책 만들기 활동
- 생각이 크는 나무
· 책을 읽고 내용을 그림이나 글로 표현해보기
· 읽은 책 누가 기록하여 다독왕 선발하기

초등학교 캔디 데이 연계 / 월 1회
- 매월 11일 도서관을 방문하는 사람에게 사탕을 주는 행사에 참여하기

 

 

 

 

 


<표 3> 해방 이후 강동면 초등교육기관 현황

학교명 / 소재지 / 설립연도 / 비고
강동초등학교 : 모전리 1932
임곡초등학교 : 임곡리 1944
정동초등학교 : 정동진리 1940
심곡(분)초등학교 : 심곡리 1969
* 1995년 폐교 후 2006년 9월 14일 장애인연수원으로 임대 중


<표 4>강동면 초등학교의 통학구역(2010년 현재)
학교명 / 학교명
강동초등학교
임곡초등학교
정동초등학교
운산분교

 

 

 

 

 


제1절 강동면 매장문화재 현황(<표57>)
구분 / 시대 / 유적명 / 소재지 / 내용 / 비고

선사유적
구석기 - 심곡리유적, 강동면 심곡리, 석기 산포지, 시굴조사

신석기
- 안인리유적, 강동면 안인리, 빗살무늬토기편 및 석기 출토, 시굴조사
- 하시동리유적, 강동면 하시동리, 유구포함층, 빗살무늬토기편 산포지, 지표조사

청동기
- 하시동리 유적, 강동면 하시동리, 유구포함층, 민무늬토기편 산포지, 지표조사
- 안인진리 유적, 강동면 안인진리, 민무늬토기편 및 석기 출토, 지표조사

원삼국
- 안인리유적, 강동면 안인리, 주거지 37기, 토기 및 석기 출토, 발굴조사

역사 유적
삼국시대
- 하시동고분군, 강동면 하시동3리 산 134, 100여기 분포, 토기편 산재, 2기발굴, 토기류 출토, 일부 도굴, 발굴조사
- 모전리고분군, 강동면 모전리, 20여기 분포, 도굴, 토기편 산재, 지표조사
- 안인리고분군, 강동면 안인리, 철기 · 토기 · 옥구슬 출토, 일부 발굴, 발굴조사

 

 

 

 

 

문양은 아가리 밑에 点列文과 格子文, 斜線文, 몸통부에 사선문과 魚骨文 이 시문되었다. 밑이 뾰족한 형태도 있다. 그물추들은 둥글납작한 냇돌의 양단을 간단한...

안인리 유적 출토유물(2000년 강릉대학교 박물관;2010년 『강원도사』 참조)

 

 

 

 

 

3. 지방기념물
1) 하시동고분군(제3절 역사고고 유적 1. 下詩洞古墳群 참조)

2) 강릉 고려성
2003년 1월 18일 강원도 지방기념물 제79호로 지정된 강릉 고려성은 고려시대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성이다. 고려성은 동해가 내려다보이는 괘방산(해발 384m)의 구릉 정상부 주변을 한겹 둘러 싼 돌로 쌓은 산성이다. 지리적인 위치로는 바닷가에 위치한 해안성으로, 강릉지역의 주민들이 바다로부터 침략하는 적이나 약탈자들로부터 방어하기 위한 목적으로 쌓은 성이다.

성의 총 길이는 451m로 현재 남아 있는 성벽의 높이는 2~3.5m정도이며, 가장 잘 남은 내벽의 높이는 2m정도이다. 현재 남아 있는 성벽은 서벽 25m, 남벽 55m정도이다. 성벽은 일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산돌을 이용하여 장방형의 불규칙한 석재를 사용하였다.

일부 성벽 사이사이의 공간에는 잔돌 끼움쌓기를 하여 성벽의 무너짐을 방지하였다. 외벽은 면맞춤한 막돌 흩은층쌓기를 하였으며, 성 안쪽으로는 잡석이나 흙을 채워넣는 내탁법(內托法)을 이용하였다. 서벽과 동벽의 북쪽에는 각각의 문터를 2개 만들었고, 서문터...

 

 

 

 

 


예전에 강동면에 사는 선비 가운데 80세 이상이 된 9명이 모여 시문을 지어 서로 촌평을 하며 풍류도 즐기며 우정도 돈독히 했다고 한다. 해변 바닷가에 글씨가 새겨져있다.

12. 강동(江東)8경
· 덕봉모운(德峰暮雲) 망덕봉에 퍼져있는 저녁 구름의 모습.
· 봉도어선(烽島漁船) 안인진리 봉화산 아래 바다에 떠 있는 고기잡이배들의 모습.
· 호견초월(壺牽初月) 병목재에 떠오르는 초생달의 모습.
· 장적초창(藏跡樵唱) 별리 장적골에서 나무를 하면서 부르는 나무꾼 노래 소리
· 율현고송(峴孤松) 상동리 밤재에 외로이 서 있는 소나무의 모습.
· 풍호애련(楓湖愛蓮) 풍호에 피어있는 연꽃의 모습.
· 방산반조(返照) 괘방산에 저녁노을이 반사되는 모습.
· 도동취연(道洞煙) 하시동리 돗골(도동)에서 밥 짓는 연기가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

 

 

 

 

 



· 풍호애련(楓湖愛蓮) 호에 피어있는 연꽃의 모습.
· 방산반조(山返照) 괘방산에 저녁노을이 반사되는 모습. 예를
· 도동취연(道洞煙) 하시동리 돗골(도동)에서 밥 짓는 연기가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

13. 풍호(湖)8경 (1)
· 풍호애련(楓湖愛蓮)
풍호(앞개 : 강동면 하시동리-강릉의 5호 가운데 하나)에 핀 아름다운 연꽃의 모습.
· 한사모종(寒寺暮鐘)
저녁 때 남항진에 있는 한송사에서 울려 퍼지는 은은한 종소리.
· 도동취연(道洞炊烟)
하시동리 원장봉 밑에 있는 돗골에서 밥 짓는 연기의 모습.
· 와교목적(瓦橋牧笛)
상시동리 와교에서 목동들이 소 먹이고 돌아가면서 소 위에 올라앉아 피리를 부는 모습.

 

 

 

 

 

· 구곡숙운(龜谷宿雲)
상시동리의 거북골에 머물고 있는 구름의 모습.
· 계잠낙조(鷄岑落照)
상시동리의 계잠(골말)에 비치는 저녁노을의 모습.
· 누촌죽수(樓村竹樹)
덕현리 뉘일(樓谷)에 있는 대나무의 모습.
· 율현간송(松)
상시동리의 밤고개에 밤나무가 많이 있는 숲에 외로이 서 있는 소나무의 모습.

14. 풍호8경 (2)
· 풍호애련(楓湖愛蓮)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보면, '부 남쪽 20리에 있다.' 라고 기록되어있다. 안인역은 북쪽으로는 대창역, 남쪽으로는 낙풍역(옥계면 낙풍리 소재)과 연결되었다.

8. 안인염전
안인염전은 안인리 군선강 하구 염전에 있었다. 마을 앞으로 흐르는 군선강 하구 바닷가 모래불에 있었는데 염전밭은 모래불에 가로 30m, 세로 15m 정도의 넓이로 모래불을 파고, 찰흙으로 바닥과 벽을 잘 발라서 바닷물이 땅속으로 스며들지 않도록 만든다.

염전밭에다 바닷물을 펴서 부어두면 여러 날을 걸쳐 햇볕에 쪼이면 바닷물이 증발되어 소금기만 남게 된다. 그러면 끌개로 소금기를 밀어 한 곳에다 쌓아두고 다시 바닷물을 퍼붓는다. 이렇게 여러 차례 번복하여 바닷물을 퍼 넣고 졸이면 소금이 된다.

9. 정동염전
정동염전은 정동천 하구 바닷가 염전밭에 있었다.

 

 

 

 

 

 

향인들은 4인을 가르켜 신라 때 풍호에 와서 호연지기를 기르던 화랑 4선 (영랑·술랑·남석랑·안상랑)에 비유하여 '도동4선'이라 하고 사선정이라 하였다.

3. 풍호정
풍호정(楓湖亭)은 하시동리 풍호 옆에 있던 정자로 1946년에 박원동(朴元東)이 세웠다. 지금은 없다.

4. 한송정
한송정(寒松亭)은 하시동리 불하산 동북쪽 기슭에 있던 정자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부 동쪽 15리에 있다. 동쪽으로 큰 바다에 임했고, 소나무가 울창하다. 정자 옆에 차샘 · 돌 아궁이 · 돌절구가 있는데 곧 술랑선인(仙人)들이 놀던 곳이다.'고 기록되어 있다.

신라 때 서라벌에서 호연지기를 기르러 명주에 온 화랑들이 이곳에서 공부를 했다고 한다. 지금은 없다.

 

 

 

 

 


10. 고성동 염전

정동진리 1리 고성동 앞 바닷가(현 정동역 위쪽)에 있었다. 화덕 위에 드럼통으로 가마솥을 만들어 놓고, 바닷물을 퍼 담고 끓인다. 불을 오래도록 지펴 끓이면 바닷물이 졸아서 줄게 된다. 그러면 다시 더 바닷물을 붓는다. 이렇게 하여 계속 불을 지피고 바닷물을 부어 하루 종일 끓이면 소금이 된다.

【林鎬敏】

 

 

 

 

 

 


제1절 고전문학

1. 향가
<헌화가>

붉은 바위가에
암소를 잡은 손을 놓고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신다면
꽃을 꺾어 바치오리다.

<해가(海歌)>
거북아 거북아 수로를 내 놓아라
남의 아내 빼앗아간 죄 얼마나 큰가.
네가 만일 거역하여 내놓지 않으면
그물로 잡아 구워서 먹으리라.

 

 

 

 

 

 


〈송담서원(松潭書院)〉

금강산 등마루가 태백으로 이어지니
팔 다리 나뉘어져 바닷물을 흔드네.
하늘과 땅 넓게 트여 해와 달이 밝고
눈 닿는 곳마다 아름답기 그지없네.
동쪽 사람 습성이 유별나다 이르니
천년 동안 오로지 사선(四仙)만을 알뿐이네.
옛 유적 남김없이 더듬어 보노라니
이름난 곳 알려주는 푯말 하나도 없네.
행여나 송담서원 마저 없다고 하면
그 누가 관동의 수치라 말 하잖으랴.
송담은 북쪽으로 북평촌(北坪村)에 미쳤으니
율곡(栗谷) 선생 바로 여기 강림하셨네.
호걸영재 모두가 성현을 배우니
오백 년 이래 세상에 뛰어난 선비 났네

 

 

 

 

 


제1절 설화

1. 채록설화
1) 화비령 아기 장수전설
강릉에 있는 강릉 최씨가 부친상을 당하자 풍수 하는 지사(地師)를 불러서 묘자리를 물어 봤어요. 그랬더니 지사가 하는 말이

"여기서 가고 싶은 데로 한 번 가 보시오. 그러면 알 도리가 있을 것이요." 하드래요.

그날 저녁 자다가 새벽에 잠을 깨니 남쪽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대요. 그래 남쪽으로 가다가 화비령 재 옆에 있는 불율산에 오니 날이 훤히 새드래요. 날이 훤히 새니, 보니까, 서낭당이 있는 데서 쉬며 보니까 건너편에 있는 봉이 말 탄 것처럼 보여서 그가 능선으로 내려오면서 보니, 해가 환하게 떤데 보니 노루가 두 마리 큰나무 밑에서 자고 일어나드래요. 그래서

"옳다. 저기가 이상하다. 한 번 건너가 보자."

그래서 상주가 상옷을 입고 건너가 보니 노루가 암놈, 숫놈 한 쌍이 자구 마침 일어나 가드래요. 그 자리를 보니 언만할 것 같아서 그 자리에 아버지 묘를 썼어요. 그런 후 그 집에서 장수가 났대요. 언나(어린 아이) 어머니가 애를 낳고 사흘 만에 어머니가 언니를 눕혀놓고 방아 찧으러 갔다 오니 언니가 없드래요.

 

 

 

 

 

 

그러니 웬일인지 원 안으로 들어온 개미는 물지 않았다. 지금도 망상의 개미들은 사람을 물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 다음 장군은 북평(동해시 북평동)으로 갔다. 해가 저물어 일박을 하게 되었는데 모기 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래서 부적을 써 붙이니 모기들이 물이 않아 잠을 편히 잤다.

지금도 북평의 모기는 다른 지역의 모기와는 달리 잘 물지 않는다고 한다.

5) 고성산(山) 유래

그것은 전에 하던 얘기를 들었는데, 고성(강원도 고성군)에 그 산이 하나 있었는데 어느 날 산이 없어 졌답니다. 그래서 그 분들이 애를 쓰고 찾아보니까 여기 정동에 그 산이 와 있 더랍니다. 그래서

"우리 산이 여 왔다. 우리 산이 여 왔으니까 산세를 다와.”

 

 

 

 

 

그래서 매년 산세르 우리 마을에서 거둬 줬답니다. 주다보니까 어느 해인가 좀 농사가 잘 안되고, 산세르 물어주기 어려운 그런 때에 그 고성사람들이

"산세르 달라."고,

그러니까 지금 말하자면 이장이라는 분이 돈이 없으니까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아들이 7살 먹은 아들이 있는데, 그 아이가

"아버지 뭐 왜서 그러냐?"고, 그래서
"산세르 받으러 왔는데, 돈이 없어 큰일이다." 이러니까
"아버지 그걸 뭘 그렇게 걱정하십니까. 그러면 그 낼에 산세 받으러 오는 분이 오거든 그 산을 파가지고 가라. 그러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그 아버지가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 옛말이

'뭐, 아들 말도 귀담아 들어라.'고,

그러고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이게 그럴듯 하단 말이야. 그래서 그 이튿 날에 그 사람이 산세르 받으러 왔는데

"우리 돈이 없으니까 산을 파 가져가시오."

그러니까 산을 파가져 갈 수가 없잖습니까. 그 다음 해부터는 다시 산세르 받으러 안 왔답니다.

(최경달, 남, 70세, 정동진리 1리 3반, 2006년)

 

 

 

 

 


13) 정동진 등명낙가사의 폐찰(2)

정동진(東津)은 임금이 머무는 한양 궁궐에서 정동쪽에 있는 나루여서 생긴 이름이다. 정동진 뒤에는 괘방산이 있고, 그 괘방산 중턱에 등명낙가사가 있는데, 이 절은 동쪽바다를 보고 있다. 그래서 이 절과 이 절에 있는 스님들은 동쪽에서 떠오르는 해의 기를 제일 먼저 받고, 그런 다음 한양에 있는 궁궐에서 해의 기를 받게 된다. 그러니 임금은 해의 기를 등명낙가사 스님들보다 나중에 받는 셈이 된다. 그러니 스님들이 임금보다 해의 기를 먼저 받는 것은 불경스런 일이 된다. 그래서 신하들이 임금에게

"등명낙가사중들이 해의 기를 먼저 받기 때문에 궁궐의 기운이 융성해지지 않습니다." 고하니, 임금이다

"그럼, 그 절을 없애라."고 하여, 등명낙가사가 없어졌다고 한다. 그러니 등명낙가사는 정동진에 있었기 때문에 없어진 셈이다.

14) 가마떼기

산둣골(모전리)에서 임곡리 쪽으로 가면서 공동묘지가 있는 데, 이곳을 가마떼기라 해

 

 

 

 

 

 

서생들이 새벽에 괘방산에 올라가 붉을 밝히고 기도를 하면 과거급제가 빨랐다고 한다.

16) 풍호의 연꽃

풍호는 강릉의 5호 가운데 하나로 하시동리에 있는데, 호수 주위에 단풍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어 생긴 이름이다. 호수는 옛부터 경치가 아름다워 신라 때 강릉으로 심신을 연마하려온 사선들(영랑·술랑·안상랑·남석랑)이 이곳에서 뱃놀이하며 풍류를 즐겼다고 하는데, 까마귀가 뿌리 없는 연꽃씨를 따먹고 이곳에다 흘리면 마을에 인재가 난다고 한다.

또 호수 안에 연꽃이 피는 것을 보고 그 해 마을의 풍년과 흉년을 점쳤다고 한다.

17) 시동(시둥) 유래
시동(詩洞)은 상시동리·하시동리를 말 하는데, 옛부터 이 마을에 글 하는 선비들이 많이 살고 있어서 생긴 이름이다. 그런데 시동은 원래 절골(寺谷)이라 하다가 나중에 시동으로...

 

 

 

 

 


15) 괘방산과 등멍이

쾌방산은 정동진리 뒤에 있는 산인데, 과거에 급제를 하고 이곳에다 합격증서인 방을 불였다고 하여 생긴 이름이기도 하고, 또 산줄기가 방처럼 길게 퍼져있다고 한다. 예전에 집 안의 자녀가 과거에 급제를 하면 이 사실을 여러 사람에게 알리고, 자랑하기 위해 커다란 두루마기에다가 급제한 사람과 아버지 이름을 나란히 써 붙인 방을 붙였다고 한다.

임금으로부터 합격증서인 홍패나 백패를 받으면 그 집 일꾼이나 방꾼들이 집에다 소식을 알리고 이곳에 올라와 방을 걸었다고 한다.

이 괘방산 밑에 등명낙가사가 있었는데, 등명은 강릉의 등화같은 존재로서 이곳에서 공부를 하는 서생들이 새벽에 괘방산에 올라가 붉을 밝히고 기도를 하면 과거급제가 빨랐다고 한다.

16) 풍호의 연꽃

 

 

 

 

 


"그러면 너는 남아라."
그리하여 그 한 마리 호랑이가 남아서 우리나라에 호랑이 씨를 퍼트렸다고 한다.

(최종철, 남,71세, 옥계면 남양2리, 1979년)


23) 등명사의 쌀뜨물

그 옛날에 낙가사 아니고, 등명사에서 그 먼 쌀뜬물이 30리를 내 뻗쳤다라는 전설이 있는데, 그 당시에 왜군들이 상륙하려고 보니까 그 절에서 골짜구에서 쌀뜬물이 한 30리를 내뻗쳤다고 그래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그 사람들이

"아, 저곳에 군사가 말이야 어머어마한 군사가 있구나."

하구선, 그래서 침범을 못했다는 이런 얘기 있습니다. 그러니까 인제 등명사 때문에 왜군들이 이리로 쳐들어오지 못했다는 그런 얘기지요.

(최경달, 남,70세, 강동면 정동진1리 3반. 2006년)

 

 

 

 

 

2) 안인 해랑당

옛날 안인진 바닷가에 가난한 어부의 딸이 살고 있었다. 가난에 쪼들려 살면서도 늘 자기의 배필 될 사람만은 훌륭한 사람으로 구하려 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을에 있는 총각들은 이 처녀의 마음에 차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이 여자는 혼기를 놓쳐 나이가 많아졌다.

그 때 마침 이 동네에 살던 한 어부가 있었는데, 늘 이 처녀를 생각했다. 처녀도 혼기를 놓친 처지라 하는 수 없이 이 남자와 약혼을 하기에 이르렀다. 약혼한 다음 날 젊은 사공은 바다에 고기잡이 나갔다가 돌풍에 쌓여 죽고 말았다. 그러나 이 처녀는 약혼한 사공이 언젠가는 돌아오리라 믿고 늘 봉화산에 올라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지쳐 실신해 죽었다.

처녀의 원혼은 이 마을 앞 바다의 고기떼를 몰리게 했다. 계속하여 바다에는 흉어와 사고...

 

 

 

 


3. 속설

1) 괘방산 때문에 과거에 급제를 많이 한다.

강릉에는 괘방산 때문에 과거에 급제를 많이 한다고 하는데, 괘방산(강동면 정동진리 뒤 TV 송신탑이 있는 산)은 강릉에서 동남쪽으로 높이 솟은 봉인데 이 봉은 화비령에서 북쪽으로 내려간 줄기에 있다.

괘방산 줄기는 조선시대 과거에 급제한 사람들의 명단(방)을 써 붙인 방과 같다고 하여 생긴 이름인데 방을 써 붙인 형상으로 생긴 이 산줄기 때문에 강릉에 과거에 급제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고 한다.

『택리지』 강원도 편에 보면 '지방민들은 자주 놀러 다니기를 좋아해서 동네 노인들은 기꺼이 기악과 술과 고기를 가지고 산이나 물가에 가서 마음껏 논다. 이것으로 큰 일을 삼기 때문에 자제들은 이에 감화되어 학문에 몰두하는 사람이 적다. 더욱이 그곳이 두 서울에서 멀어 옛날부터 현달한 자가 적으나 오직 강릉에만 과거에 급제한 사람도 많이 나왔다.'라...

 

 

 

 

 


2. 2월
1) 영등날

① 영등맞이 - 안인마을에서는 영등에 쓰려고 마련한 쌀을 쓰지 않고 밥을 해먹으면 그해 잘못된다고 하여 반드시 준비한 쌀로 밥을 한다. 제수는 백설기·채소·술·정화수를 쓰고, 부엌 구석에는 흰종이를 매달아놓는다.

② 좀생이보기 - 2월 6일(음력) 좀생이날에 마을사람들은 낮에 국수를 해먹고 밤에 별을 보고 그 해 농사의 흉년과 풍년을 점친다. 달과 별이 가까이서 가면 흉년이 들고, 달과 별이 멀리서 가면 풍년이 든다고 한다.

③ 미역 따기 - 입춘 무렵이 되면 해안가 쪽에 있는 정동진리, 안인진리, 심곡리 사람들은 바다에 나가 미역을 따거나 장대로 건져 올린다. 이른 봄에는 미역 외에 김. 파래 · 진우와리를 딴다. 또 봄철에는 주낙발이 · 자망발이 · 문어발이 · 호망발이(조개채취)를하고, 멸치·학꽁치 · 광어를 잡는다.

 

 

 

 

 

 


제1절 강동면 개관

강동은 고종 33년(1896) 잰골(資可谷)을 자가곡면이라 하여 16개리를 관할하다가, 1916년 군선강 동쪽이 된다고 하여 강동으로 고쳤다. 강동면은 원래 명주군 2읍(묵호읍· 주문진읍) 7면(강동면·구정면 · 사천면 · 성산면 · 연곡면 ·  옥계면 ·  왕산면)의 하나로 강릉군 자가곡면 이었다. 자가곡면은 심곡진 · 고성동 ·  등명 · 정동진 ·  산성우 · 임곡 · 안인진· 안인·안인염전 · 안인소동 · 모전 · 상시동 · 운산 · 신석 · 하시동 · 월호평의 16개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군면 폐합에 따라 심곡· 정동진 · 산성우 · 임곡 · 안인 · 안인진. 모전· 상시동 · 하시동 · 운산의 10개리로 개편하고, 1983년 2월 15일(대통령령 제11027호) 읍면행정구역조정으로 언별리가 구정면에서 편입되었고, 1989년 1월 1일 '대통령령 제12557호'에 의해 명주군 강동면 운산리가 강릉시 운산동으로 편입되었다. 1992년 1월 1일 모전리와 안인리가 1·2리로 분리되었고, 안인리의 이름이 대동리(大洞里)로 바뀌었다.

1994년 8월 3일 '경기도 남양주시 등 33개 도농복합형태의 시설치 등에 관한 법률'로 명주군과 강릉시가 통합되어 명주군에서 강릉시로 되었다.

면내에는 만덕봉에서 발원한 군선강이 있는 데, 이 물은 언별리 단경골에서 발원하여 모전리, 임곡리, 대동리를 거쳐 넓은 들을 이루고, 안인진리 해령산 낙맥에 있는 명선문(溪仙門)에서 바다로 빠진다. 또 피래산에서 발원한 정동천과 덕고개에서 발원한 와천이 있다.

강동에는 강동초등학교 · 정동초등학교 · 임곡초등학교 · 정동초등학교 심곡분교가 있었으나 정동초등학교 심곡분교는 1995년에 폐교되었고, 영동화력발전처 · 안인역 · 정동진역이 있고, 또 해안을 따라 6개의 나루(안인진·대포진 · 등명진·정동진·심곡진 · 금진)

 

 

 

 

 

 


강동면사무소와 강동보건지소

이를 강동6진(江東六津)이라 한다. 상시동리에 면사무소가 있고, 안인진리 대포동에는 조선조 중종 때 수군만호(水軍萬戶)가 주둔했다.

면의 총면적은 112.22 km2이고, 강릉의 남동단에 위치하여 동쪽은 바다, 서쪽은 구정면, 남쪽은 옥계면, 북쪽은 월호평동과 접해 있다.


제2절 자연마을 개관

1. 대동리(大洞里)

대동리는 본래 강릉군 자가곡면 지역으로 1916년에 안인염전리 · 큰말 · 솔밭말 · 지섯거리 · 장거리 · 관말을 합쳐 안인리로 되었다가 1996년 1월 1일 큰말이 있어서 대동리로 되었다. 이 마을은 원래 강릉 칠사당을 중심으로 동쪽이 되어 강릉의 동쪽이 편하다는 뜻으로 안인(仁)이라 했는데, 방위상 인(仁)은 동쪽을 뜻 한다. 5상(五常)인 인(仁) · 의(義) · 예...

 

 

 

 

 


(禮) · 지(智) · 신(信)은 각각 동서남북 중앙을 가르킨다. 서울의 동대문을 흥인지문(興仁之門), 서대문을 동의문(敦義門), 남대문을 숭례문(崇禮門), 북대문을 홍지문(弘智門), 4대
문 안에 있는 집을 보신각(普信閣)이라 하는 이치와 같다.

이곳은 조선조 때 대창도에 딸린 안인역이 있었고, 안인리 · 모전리 · 언별리를 통칭 안인동이라 했는데, 언별리 송담서원 앞 냇가 다리부근에 있는 큰 바위에 우암 송시열이 쓴 '안인동송담(安洞松潭)'이란 글씨가 새겨져 있다.

마을은 1992년에 1리와 2리로 나눠졌는데, 1리에 안인 기차역 · 영동화력발전처가 있고, 2리에 강릉경찰서 강동파출소가 있다. 동쪽으로는 바다. 안인진리, 서쪽으로는 모전리와 하시동리, 남쪽으로는 모전리 · 안인진리, 북쪽으로는 하시동리와 접해있다.


2. 모전리(田里)

모전리는 본래 강릉군 자가곡면 지역으로 마을에 띠가 많이 자란다고 하여 띠앗 · 또는 모전이라 하였는데 1916년 행정구역 변경에 따라 일부지역을 갈라서 모전이라 하고, 그 나머지를 언별리 · 안인리라 했다. 옛부터 이 곳 일대가 늪이어서 띠(草)가 많이 자라 띠 밭(돼지 · 뙡 · 떼밭)이라 했다.

또 이곳에 왕골의 일종인 줄이 많이 났다.

줄은 포아과에 딸린 여러해살이 풀로 못이나 물가에 자라는데, 구황식물로 어린 싹과 함께...

 

 

 

 

 

 

먹고, 잎은 도롱이 · 차양 · 자리를 만드는데 쓴다. 줄로 자리를 매 제사 때 쓰면 후손들이 잘 된다고 한다. 마을 앞산에 사태가 나면 만석군이 나온다고 했는데, 지금은 그곳에 광맥이 있어 산을 무너뜨리니 마을이 잘 살게 되
었다고 한다.

또 마을엔 공장이 많이 있어 마을사람들이
공장에 다녀 수입이 일정하여 다른 마을보다 잘산다고 한다. 마을 앞에 있는 산줄기 마지막 낙맥에 태봉이 있고, 마을 앞으로 군선강이 흐르는데 만덕봉과 망덕봉에서 발원한 물이 십년에 한번씩은 큰물이 흘러(十年有一大水) 범람한다고 한다.

마을 남쪽 멀리 있는 멍덕봉에 구름이 완전히 끼어 봉이 보이지 않으면 비는 오지 않는데 구름이 봉 허리를 조금 감싸고 돌면 마을엔 비가 온다고 한다. 마을 동쪽으로는 안인진리 · 안인리 · 서쪽으로는 언별리 · 상시동리, 남쪽으로는 임곡리, 북쪽으로는 상시동리 · 하시동리 · 안인리와 접해 있고, 마을에는 강동초등학교 · 농협단위조합, 장안성터가 남아있다.

1리와 2리는 1991년 12월 27일 '명주군 반 운영 규칙 제 771호'에 의해 생활권이 달라 나눠졌는데 군선강 북쪽이 1리, 군선강 남쪽과 임곡천 동쪽이 2리가 된다. 1리는 270여 가구, 2리는 50여 가구가 있다.

마을에는 강릉김씨(평의공파 · 옥가파), 삼척 심씨, 연일 정씨, 강릉 박씨들이 많이 사는데, 강릉 김씨 평의공파 가운데는 16대에 걸쳐 사는 집안이 있다.


3. 산성우리(山里)

산성우리는 본래 강릉군 자가곡면 지역인데, 1916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귀나무골 · 명계동 · 방재 · 성재·숯가마말·오리동과 정동진리 일부를 합쳐 성재의 산모퉁이에 있어서 생긴 이름이다. 성재는 삼한성지가 있어서 생긴 이름이다.

산성우리는 강동면 남단에 위치한 마을로 마을 남쪽에는 방재, 북쪽에는 화비령이 있는데 이곳으로 굴을 뚫고 옛 동해고속도로가 지나가는데 한 행정리에 고속도로 굴이 2개(화비령굴·방재굴)가 있다는 것도 기이한 일이다.

 

 

 

 

 


마을에는 산줄기가 많고 그 줄기 사이에 마을들이 있는데, 동쪽으로는 심곡리 · 옥계면 금진리, 서쪽으로는 임곡리, 남쪽으로는 옥계면 낙풍리 · 옥계면 북동리, 북쪽으로는 정동진리 · 임곡리와 접해 있다.

마을은 1리와 2리로 나뉘어져 있는데 북쪽으로는 화비령과 남쪽으로는 방재가 있는 마을이다. 마을 뒤에는 피내산이 높이 솟아 있고 앞으로는 말탄봉이 높이 솟아 있어 마을은 깊은 산속에 있는 셈이다. 마을로는 동해고속도로 · 7번 국도 · 영동북부선이 지나간다.

마을은 예전에도 광산이 있어 활기가 있었으나 지금은 광산이 모두 정리되고 마을을 많
이 떠나서 조용한 마을로 변했다. 마을에는 인동 장씨들이 많이 살고 있다.


4. 상시동리(上洞里)

상동리는 본래 강릉군 자가곡면 지역으로 시동의 위쪽이 되어 상시동·웃말이라고 하는데, 1916년 재궁골 · 골말 · 뒷골 · 서당말 · 옥골 · 뒷고개 · 하시동 일부를 합쳐 상시동리라했다. 시동은 원래 마을에 절이 있어서 절골이라 했는데, 이곳엔 들이 많고 예부터 부자 선 비들이 많이 살았다. 부자 선비들은 시와 풍류를 즐기며 생활했는데, 그 선비들 가운데 삼가(三可) 박수량(朴수량)의 후손인 완하당 박진해(朴震楷)가 이웃에 있는 안인에서 살다가 이곳에 오니, 글을 숭상하는 선비들이 많아 늘 글 읽는 소리가 들리는지라 절골이 마음에 들지 않아 사동(寺洞)의 절 '사(寺)'자 앞에 말씀 '언(言)'자를 붙여서 시동(洞)이라 하였다. 시동은 넓어서 서쪽 마을을 상시동, 동쪽에 있는 마을을 하시동이라 하는데, 이 마을은 오방수(午方水.五方水)가 들어오는 곳이어서 과거에 급제한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마을은 동쪽으로는 하시동리 · 모전리, 서쪽은 운산리 · 구정면 덕현리, 남쪽은 언별리 ·

 

 

 

 

 

 


모전리, 북쪽은 운산동 · 월호평동과 접해있다.

1리는 7번 국도를 중심으로 동쪽에 있고, 그리는 국도 서쪽에 있는데, 상시동리에는 강동면사무소 · 강동보건지소 · 강동농업협동조합(강동농협)이 있다. 마을에는 강릉 김씨 · 강 릉 박씨 • 강릉 최씨들이 많이 살고 있다.


5. 심곡리(谷里)

심곡리는 본래 강릉군 자가곡면 지역으로 심일. 지필 또는 심곡이라 하다가 1916년 행정구역 변경에 따라 심곡리라 했다. 심곡은 '깊은 골짜기 안에 있는 마을' 이라 하여 짚일 · 깊일이라 하는데, 짚일을 연음하여 지필(筆)로 음차하여 쓴다. 지필이란 마을이 종이를 땅바닥에 깔은 듯 평평하고 그 옆에 붓이 있는 형국이란 뜻인데, 이곳에 묘를 쓰면 글 잘 하는 후손이 난다고 하여 많은 집안들이 묘를 썼다. 마을을 처음 개척한 성씨들은 경주 최...

 

 

 

 

 


씨 · 전주 이씨들이나 지금은 각성받이들이 모여 살고 있다.

마을 뒤에는 피래산에서 동쪽으로 내려온 산줄기가 남북으로 길게 뻗어 마을을 포근하게 감싸고 있다. 이 산줄기 동쪽은 바다이고 이 바다에서 나는 미역. 김은 동해안에서 제일 유명한데, 특히 이곳에서 나는 미역은 임산부한테 좋다고 한다. 마을은 해변에서 백 여m 높이에 평평한 넓은 고원지대며, 해변쪽으로 푹 파인 좁고 긴 골에 마을이 있고, 그곳에 포구가 있는데, 이 포구는 강동6진 가운데 하나인 심곡진(深谷津)이다.

마을은 동쪽으로는 바다, 서쪽으로는 산성우리, 남쪽으로는 옥계면 금진리, 북쪽으로는 정동진리와 접해있고, 포구에서 해안을 따라 옥계면 금진리로 가는 헌화로가 새로 생겼다. 마을엔 정동초등학교 심곡분교가 있다가 1995년에 폐교되었다.


6. 안인진리(安仁津里)

안인진리는 본래 강릉군 자가곡면 지역으로 조선조 성종 때까지 안인포 수군만호영(安仁浦水軍萬戶營)이 있어서 안인날기 · 안인날개 · 안인나룻말 또는 안인진이라 하다가 1916년 행정구역 변경에 따라 갯목 · 안인소동리 · 모전리 일부를 합하여 '동쪽에 있는 나루'여서 안인진리라 했는데, 5상(五常)인 인의예지신禮智)에서 인은 동, 의는 서, 예 는 남, 지는 북, 신은 중앙을 나타낸다.

군선강 하구에 있는 마을로 마을 앞엔 봉화를 올리던 해령산이 있고, 그 중턱에 해령사와 해랑당이 있고, 동쪽 밑 바닷가에 강릉의 삼문 가운데 하나인 명선문(仙門글씨는 조선 정조 때 강릉부사 이집두가 썼다)이 있다. 마을 뒤는 화비령 북쪽 낙맥으로 이곳이 천리행룡 만리안대(千里行龍 萬里案臺)의 명당인데, 이곳에 강릉 김씨 집안에서 묘를 쓰고 집안이

 

 

 

 

 

 


크게 번성했으나, 건너 바닷가 염전에서 소금을 굽기 위해 불을 계속 땠기 때문에 그 운이 다했다고 한다. 그런데 소금을 굽기 위해 불을 때는 곳에 지금은 영동화력발전소가 생겨 그곳은 불을 계속 지피기 때문에 마을에 기운이 다했다고 한다.

1리는 농사를 짓는 농촌이고, 2리는 고기를 잡는 어촌이어서 1리와 2리는 마을 일을 같이 하지 않는다고 한다. 마을은 동쪽으로는 바다, 서쪽으로는 모전리 · 임곡리, 남쪽으로는 정동진리, 북쪽으로는 대동리와 접해있다. 바닷가에 포구가 있는데, 이 포구는 강동진 가운데 하나인 안인진이다. 포구에는 동해해양 경찰서 안인진출장소가 있다.

안인포에 대한 기록이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있는데, '부 동남쪽 25리에 있다. 예전에는 만호(萬戶營)이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졌다.'라고 기록 되어있다.

안인포진은 부동남으로 20리에 있고 수군
만호를 두었는데 성종 21년에 양양대포로 옮 겼다.


7. 언별리(里)

언별리는 본래 강릉군 구정면 지역으로 언별이라 하였는데 1916년에 가둔지 · 단경골 · 장재기와 모전리 일부를 합해 언별리라 하고 하구정면(구정면)에 편입하였다가 1983년 2월 7일에 강동면에 편입되었다. 언별리는 마을에 있던 송담서원이 불에 타 없어지자(단기 4137년 갑자3월1일) 유생들이 공부할 장소가 없어 이곳을 떠나게 되어 '아름다운 선비(彦)'들이 '떠났다(別)'는 뜻이며, 또 나라에 난리가 나서 선비들이 험한 이곳에 피난을 와 공부를

 

 

 

 

 

 


하다가 난리가 평정되자 각자 자기 고향으로 떠나갔는데 아름다운 선비들이 떠났다고 하여 마을이름이 생겼다. 이 마을을 안인동(安仁洞-송담서원 앞 냇가 바위에 安仁洞松潭이란 글씨가 새겨져 있다)이라고도 했다.

마을 한가운데 송담서원(지방유형문화재 제44호)이 있는데, 송담서원은 강릉 오죽헌에서 태어난 율곡 이이의 위패를 모신 서원으로 언별리의 옛 이름이 송계리(松溪里)여서 송계의 '송'자와 황해도 해주에 있는 석담서원(石潭書院-율곡 선생이 제자들을 모아 글을 가르친 서원)의 '담'자를 따서 지은 이름이다. 송담서원은 강의실이 90여칸이나 되어 많은 유생들이 이곳에 와 공부를 했다.

마을 안쪽에는 망덕봉과 만덕봉에서 내려온 줄기가 뻗어있고, 그 줄기 사이에는 경치가 좋은 단경골이 있다. 마을은 동쪽으로는 임곡리, 서쪽으로는 왕산면 목계리 · 구정면 어단리, 남쪽으로는 옥계면 북동리 · 왕산면 목계리, 북쪽으로는 구정면 어단리 · 금광리 · 덕현 리 · 강동면 상시동리와 접해있다.

1리 안쪽 단경골에 예전에는 마을이 있어 30여세대가 살았으나 지금은 모두 소개되어 사람들이 살지 않는다. 지금도 단경골 길옆 숲속에는 서낭당이 있는데, 1가구가 모신다. 이 단경골은 만덕봉에서 내려온 계곡이 아름답고 험하고 고려 때 고려 왕조가 이성계에 의해 망하자 고려 유신들이 불사이군하며 조선왕조에 출사하지 않고 이곳에 와 고려 종묘의 단을 짓고, 옛 왕조에 대한 충성심을 나타냈다. 그리하여 단경(壇)이라 했으나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세부측량을 하면서 한국인의 역사의식과 독립의지를 약화시키기 위해 한자가 다른 단경(丹京)이라 했다. 마을에는 경주 손씨 · 강릉 최씨(필달계) · 경주 이씨 · 전주 이씨들이 많이 살고 있다.

 

 

 

 

 


8. 임곡리(谷里)

임곡리는 본래 강릉군 자가곡면 지역으로 숲이 많아 숲실, 또는 임곡이라 하였는데 1916년에 대수원이 · 밤나무쟁이 · 큰골 · 절골 · 재궁골 · 재밑 · 갈보다니를 합해 임곡리 라 했다. 숲실은 바늘과 실 형국(懸針型.旋針型)이라 하는데, 예전에 도선(道詵: 신라 말의 승려)이 이곳에서 잠을 자다가 깨 얼핏 주위를 둘러보고, 마침 지나가는 사람이 있어 그에게 이곳의 지명을 물으니 숲실이라 하자, 숲실에는 실에 해당하는 골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이곳을 선침형이라 했다. 즉 바 늘을 매달아 놓은 형국, 바늘에 실을 꿰매는 형국이라 하는데 이곳에 '천리행룡(千里行龍)에 만리안대(萬里案臺)'의 명당이 있다. 강릉 향언에 한 곳에 가만히 있지 않고 쏘대다니는 것을 보고 '숲실 개 쏘대듯' 한다.

이 마을은 신안 주(朱)씨 · 한양 조(趙)씨 · 강릉 함(咸)씨가 개척하였고, 마을에는 임곡초등학교와 임곡보건진료소가 있고, 동쪽으로는 산성우리, 서쪽으로는 언별리, 남쪽으로 는 옥계면 북동리, 북쪽으로는 모전리 · 안인진리와 접해있다. 마을은 남쪽(옥계면 북동리와 경계)에 있는 덕우리재에서 내려온 산줄기 사이에 있는 마을로 몇 년전까지만 해도 광산이 많이 있어 마을이 훙했으나 정부에서 광산을 정리하여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떠나고 빈집이 많이 있다.

9. 정동진리(正東津)

정동진리는 본래 강릉군 자가곡면 지역으로 마을 가운데 강원도 고성에서 떠내려 온

 

 

 

 

 

 


고성산이 있어서 고성동이라 했고, 그후 임금이 거처하는 한양에서 정동쪽에 있는 바다란 뜻으로 정동진이라 하다가 1916년 고성동·등멍이를 합쳐 정동진리라 했다.

마을 한가운데로 피내에서 발원한 정동천이 흐르는데, 내를 중심으로 서북쪽이 1리가 되고, 동남쪽이 2리가 된다. 예전에 이곳 주민들이 이 냇물을 먹었는데, 그때 1리 마을은 냇물이 흐르는 쪽으로 내리 퍼 먹고, 2리 마을은 물이 흐르는 반대로 치퍼 먹어 서로 속이 다르다고 하여 조그마한 내를 중심으로 미묘한 지역적 편견이 있었다.

마을에는 우리나라에서 바다와 가장 가까이 있는 정동역 · 강동면사무소 정동출장소 (1998년 10월 폐지). 정동진보건진료소. 정동우체국 · 정동초등학교 · 등명낙가사 · 등명사지 5층석탑(지방유형문화재 제37호) · 바닷가에는 모래가 고운 등명해수욕장 · 고성해수욕장 · 정동해수욕장 · 포구에는 동해해양경찰서 정동출장소 · 마을 뒤 괘방산에는 고려성 지(강원도기념물 제79호)가 있다. 정동천 하구엔 포구가 있고, 이 포구는 강동6진 가운데 하나다. 정동진역 앞에는 고성산이 있고, 고성산 꼭대기에는 영인정(仁亭)과 정 동쪽을
알리는 정동표시판이 있다.

정동진리와 심곡리에서 나는 돌김과 미역은 적국적으로 유명하여 특히 임부들이 많이 찾는다. 마을은 동쪽으로는 바다. 심곡리, 서쪽으로는 산성우리 · 임곡리, 남쪽으로는 산성우리 · 심곡리, 북쪽으로는 안인진리와 접해 있다.

 

 

 

 

 

 

10. 하시동리(下洞里)

하시동리는 본래 강릉군 자가곡면 지역으로 시동의 아래쪽이 되어 하시동이라 했는데 1916년 돗골 · 새매기 · 배나무골 · 엄나무골 · 골말 · 진골 · 호장골을 합해 하시리라 했다. 마을 북쪽에 있는 불하산이 동서로 길게 뻗어 있고 불하산 동쪽 낙맥에 한송정에서 공부하던 화랑들이 마셨다는 우물이 있는데 우물 옆 돌절구에 "신라선인영랑연단석구(新羅仙人永郞鍊丹石)"라 쓴 글(조선 고종 때 강릉부사 윤종의가 씀)이 있다. 마을 남쪽에 는 강릉의 5호 가운데 하나인 풍호가 아름다 움을 자랑하고, 뒤에는 뒷개(강릉의 5호 가운 데 하나)가 있고, 그 남쪽에는 원장봉과 사선정 · 신라 초기의 석관고분군(지방기념물 제18호) · 박창규가옥(문화재자료 제91호)이 있다.

마을은 동쪽으로는 바다 · 대동리(옛 안인리), 서쪽으로는 상시동리, 남쪽으로는 대동리. 모전리, 북쪽으로는 월호평동과 접해있다. 마을에는 강릉 김씨, 강릉 박씨, 영월 신씨, 강릉 최씨들이 많이 살고 있다.



제2절 지명유래
1. 대동리(大洞里)

1) 1리
· 역말 - 장터에서 현 안인기차정거장으로 가면서 왼쪽에 있는 마을. 조선조 때 이곳에는 대창도에 딸린 안인역이 있어 이곳에서 말을 갈아타고 남쪽에 있는 우계현(현 옥계면)에 있는 낙풍역(현 옥계면 낙풍리 소재)이나, 북쪽에 있는 대창역(현 강릉시 옥천동 소재)으로 다녔다.



 

 

 


· 염전밭-마을 동북쪽 바닷가로 현재 영동화력이 있는 일대. 예전에 이곳에 있는 밭에 바닷물을 퍼부어 소금을 구웠던 염전이 있었다.

· 새말-화력발전소 위쪽에 있는 마을.
· 안장거리-마을에서 안인진리로 가면서 군선교 남쪽에 있는 산줄기.

2) 2리
· 장터(장거리)-모전리에서 7번 국도를 따라 오면서 지서가 있던 길거리. 6.25 한국전쟁 전까지 이곳에 장이 섰다. 예전에 마을 사람들이 강릉으로 장을 보러 가지 않고 이곳에서 간단한 장을 봤다고 한다.

· 관터(관마을)-장터(장거리) 조금 아래에 있는 마을. 조선조 때 나라에서 집을 지어 놓고 화비령으로 넘나드는 나그네들에게 잠자리를 제공해 주던 관아가 있었던 곳이다.
· 지섯거리-장터 아래에 있는 길거리. 예전에 이곳에 지서(파출소)가 있었다고 한다.

2. 모전리(田里)
1) 1리
· 팻찌(茅田.퍁지)-마을 전체의 이름. 예전에 사람들이 살지 않았을 때 이곳에 띠가 무성하게 자라 전부 띠밭이어서 생긴 이름이다.
· 돌멩이 (乭坪• 새말)-1반의 소지명. 언별리와 경계인 언덕 밑에 있는 마을. 돌(乭)은 돌(石)의 이두식표기이다. 예전에 이곳이 전부 돌밭이었는데 땟찌 마을이 생긴 다음 새로 생긴 마을이다.
· 재궁골-돌펭이 위쪽 골로 언별리와 경계. 이 골에 강릉 최씨의 재궁이 있다.
· 지음터(知터)-돌멩이 위쪽에 있는 터. “김을 맨 터가 있는 골” 이란 뜻인 '김을 맨 터'가 '짐맨터'로 되었다가 '지음'로 되었는지, 또 '집을 지은 터'가 있는 '지은터'가 변해 지음터로 되었는지 확실하지 않다.
· 둔지말(屯地)-2. 3반의 소지명. 모전리 안쪽에 제일 높은 곳에 있는 마을. 둔지말이란 옛날 부족국가 시대에 족장이 이곳에 군사를 거느리고 진을 치고 주둔했다고 하나, 둔지는 '약간 언덕이 진 곳' 이란 뜻이다. 강릉에 사는 강릉 박씨 5부자가 살았던 마을...

 

 

 

 

 

제1절 고위공직자

· 박종성(朴鍾星, 1919~?) : 하시동 1리 출신으로 서울대학교 경영대학원을 수료하였다. 삼척군과 명주군 군수를 지냈으며, 강원도보건사회 · 산업 · 내무국장을 역임했다. 그리고 내무부지도과장, 강원도동해출장소장, 춘천시장, 강원도부지사, 강원도지사를 지냈다. (강릉시사』,강릉문화원, 1996년 간행 참조)
· 최각규(崔珏圭, 1933 ~ ) : 강릉상고와 서울대학교 문리대를 졸업했다. 17회 행정고시에 합격하면서 관계를 입문하여 재무부와 경제기획원 등 국가경제를 담당하는 주요 부처의 요직을 두루 거쳤다. 그리고 경제기획원 차관, 농수산부장관, 상공부장관, 신민주공화당 사무총장, 13대 국회의원, 부총리겸경제기획원 장관을 지냈다. 국회의원으로 재직할 시 한-이집트 의원 친선협회장을 지냈으며, 현재는 민선 강원도지사에 당선되어 도백으로서 자치시대의 도정운영에 헌신하면서 지역발전에 몰두하고 있다. 수상경력으로는 녹조소성훈장, 청조근정훈장 등 다수가 있다. (「강릉시사」강릉문화원, 1996년 간행 참조)
· 김홍기(金興, 1932-?) : 강동면 출신으로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관계에 입문하여 1967년부터 1973년까지 경제기획원 경제협력과장, 투자예산2과장을 지냈고, 1973년에는 주미경제담당참사관을 지냈다. 1976년부터는 경제기획원 외자관리·조사통계·투자진흥국장을 지냈고, 이후에 국방부 관리차관보, 전매청장을 지냈다. 1982년에는 재무부 차관, 1983년에는 경제기획원 차관, 1985년에는 산업은행 총재를 역임하였다. 현재는 금호석유화학 대표이사직을 맡고 있다. 황조근정훈장을 받았다.

 

 

 

 

 


제1절 행정조직의 변천

1. 연혁 및 변천사

강동면은 조선시대인 1786년부터 자가곡면(可谷面)으로 칭했는데, 자가곡면에는 심곡진, 등명, 정동진, 안인, 안인영전, 안인소동, 모전, 상시동, 운산, 신석, 하시동, 월호평 등의 16개리를 관찰하였다. 그러나, 1914년 군면폐합에 따라 심곡, 정동진, 산성우, 임곡, 안인, 안인진, 모전, 상시동, 하시동, 운산의 10개리로 개편하였으며, 1916년 10월 1일에는 군선강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고 하여 강동면이라 개칭하여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

1965년 6월 5일에는 정동진리에 강동출장소를 설치하여 정동진리 3개리와 산성우리 2개리, 심곡리 주민들의 민원사항에 대한 편의에 원활을 기하였다. 1983년 2월 15일 읍면행정 구역조정으로 구정면 언별리가 강동면에 편입되었다.

1989년 1월 1일에는 강동면 운산리가 강릉시에 편입되었다. 이후, 1995년 1월 1일 법률 제4774호로 강릉시와 명주군이 통합하면서 강릉시에 속하게 되었으며, 1998년 1월 1일에는 정동출장소가 폐지되었다. 현재의 강동면은 강릉시의 남동단에 위치하여 동쪽은 바다, 서쪽은 구정면, 남쪽은 옥계면, 북쪽은 월호평동과 접해 있다. 강동면은 21개 행정리, 10개 법정리, 62개 자연부락, 92개 반이 있고, 총면적은 112.22 km2이다.

 

 

 

 

 

 

<표 3> 1987년 및 2010년 행정구역 현황

1987년 : 법정리 11, 행정리 21, 반 110
2010년 : 법정리 10, 행정리 21, 반 92

 

 

 

 


제6절 사회복지

1. 강동면복지회관
명주군은 면소재지 지역 농어촌의 부채요인인 결혼 및 회갑연 등의 비용을 줄이기 위한 지원사업으로 1987년부터 연차적으로 결혼예식장 시설을 갖춘 종합복지회관을 건립하였다. 이 곳을 이용하여 결혼식을 할 경우에는 주례알선, 결혼기념앨범중정, 적금통장 등을 행정에서 지원하고, 드레스를 무료로 제공하였다. 1991년 강동면 복지회관에서는 결혼식이 총 12건이 치뤄졌다. 1999년 9월 1일에 복지회관 3층 증축보강공사를 실시하여 사입비 200,000천원, 사업량 361.18m2을 11월 30일에 준공하였다. 또한, 예식장 인테리어 공사를 같은 해 11월 30일에 시작하여 80,000천원을 들여 12월 25일에 준공하였으며, 집기구입도 같이 이루어졌는데, 61,785천원을 들여 예식장 하객용 의자 외 48종을 구비하였다.

<표 11>강동면 사회복지회관 현황

준공일 1990. 12. 30, 사업비 217(백만원),

대지 249, 건평 165 예식장 38, 폐백실 3, 목욕탕 30, 기타 94
자료 : 명주연감 1991, 명주군

 

 

 

 

 

 


제1장 산업·경제구조

강동면은 강릉시의 남단에 위치한 지역으로서 북쪽으로 강남동과 성덕동, 남쪽으로 옥계면, 서쪽으로 구정면과 왕산면에 접하고 있으며 동쪽은 동해의 해안과 해변을 접하고 있다. 강동면은 비교적 산이 많아 면적의 대부분이 임야로 되어 있으며 농촌, 어촌, 광산촌의 산업특성을 띠고 있었으나 정부의 석탄산업 합리화정책에 따라 폐광되어 광산촌의 면모는 찾을 수 없다. 현재 강동면의 산업·경제는 농업과 어업, 관광서비스업의 산업적 특성을 지닌 지역으로 생활여건이 매우 다양하다. 특히 18m나 되는 긴 해안선을 보유하고 있어 심곡의 자연산 돌김과 미역 등의 특산물과 모래시계로 알려진 강원 동해안 제일의 해돋이 명소인 정동진을 중심으로, 해안을 따라 펼쳐지는 넓은 송림과 해변, 아름다운 해안경관, 등명락가사 등 천혜의 관광자원을 갖고 있어 해양관광 지역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강동면의 면적은 112.48m2로 강릉시 전체면적의 10.8%를 차지하고 있으며 행정구역상 행정리 21, 법정리 10, 반 92, 자연마을 68부락으로 구성되어 있다.

인구구조는 1990년 9,952명, 1991년 9,323명(남 4,699명, 여 4,624명), 1992년 8,571명(남 4,293명, 여 4,278명)에서 광산 합리화 및 이농현상으로 1998년 7,585명, 2006년 2,491세대, 5970명이었으나 점차 줄어들어 2009년 말 현재 강동면의 총인구는 2,390세대, 총 5,213명 (남자2,636명, 여자 2,577명)이 거주가 있다. 1998년 12월 31일 기준 강동면의 전체인구 중 연령별 구성비율은 0~14세가 1152명으로 전체의 15.2%를 차지하고 있으며, 경제활동 가 능인구는 5,554명으로 전체의 73.2%, 그리고 65세 이상 인구가 897명으로 전체의 11.6%를 차지하고 있다. 2006년의 인구수와 비교해 보면 2006년 말 기준 전체 인구 5.938명에서...

 

 

 

 

 

 


0~14세가 662명으로 전체의 11.2%, 15세~64세의 경제활동 가능인구가 3,987명으로 전체의 67.1%, 65세 이상 1,289명으로 전체의 21.7%를 점하여 경제활동가능 인구는 큰 폭으로 줄어들었으며 노인층의 인구가 증가하여 강동면의 인구구조는 급격히 노령화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65세 이상의 인구를 14세 미만의 인구로 나누어 100을 곱한 노령화 지수가 1998년도의 76.3%에서 2006년도에 194.7%로 급격한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다. 강동면의 인구는 강릉시 전체 87,636세대의 약3%를 차지하고 있으나 2006년 기준 지난 10년간 인구의 변화는 인구의 유출 및 자연감소로 연평균 -2.9% 감소하였다. 2009년 말 현재 강동면의 인구수는 전년대비 126명이 줄어들었으며, 매년 인구수는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강동면의 산업구조로 볼 때 인구감소는 지속될 것으로 판단된다.

강동면의 지목별 토지이용실태를 살펴보면 총 면적 112.48km2 중 가장 넓은 면적은 임야 오서 96.16km2로 전체면적의 4.3%, 전은 3.52km2로 3.1%, 대지는 0.89km2로 0.8%의 구성비를 나타내고 있다.

<표 1>강동면 연도별 인구추이
1996년 세대수 69,188, 인구수 224,513
2001년 세대수 78,910, 인구수 85,372
2006년 세대수 85,372, 인구수 223,449
2009년 세대수 87,636, 인구수 217,464
전년대비 연평균 인구 증감률
자료: 강릉시 해당연도 통계연보, 강릉시

<표 2> 강동면 연령별 인구구조 현황

 

 

 

 

 

 


제1절 산업별 종사자 현황

2009년 말 현재 강동면의 산업별 사업체수와 종사자수 현황을 살펴보면 숙박업 및 음식점업이 강동면의 총 463개 사업체 중 234개 업체(종사자수 597명)로 전체의 50.5%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 다음이 도·소매업이 84개 업체(종사자수 179명)로 18.1%, 제조업이 40개 업체(종사자수 472명) 8.6%의 순으로 나타났다. 어업에 종사하는 사업체수는 3개 업체에 32명이 종사하고 있다. 정동진 썬크루즈 호텔 & 요트리조트는 관광호텔업체로 121개의 객실(종사자수 215명)과 조각공원, 위락시설, 전망대, 요트정박시설 등을 갖춘 관광명소로 알려져 있어 강릉관광을 선도하는 리조트호텔의 명성을 높이고 있으며 지역주민의 고용과 소득창출에 기여하고 있는 사업체이다.

강동면의 산업구조는 3차산업 중심의 서비스업종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므로 관광을 통해 지역주민의 소득증대와 고용창출을 도모할 수 있도록 지역특성을 관광과 접목하여 독특하고 다양한 관광상품개발을 통해 관광객을 끌어 들일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강동면의 산업별 사업체수와 종사원수의 현황은 다음 <표 4>와 같다. 정동1리와 2리, 심곡리의 경우 횟집 17개소, 모텔 및 여관 26개소, 민박 55개소로 관광객을 고객으로 한 업종이 지역경제의 주종을 이루고 있다.

 

 

 

 

 

 

<표 4> 강동면의 산업별 사업체수 및 종사자수

 

 

 

 

<표 19> 항·포구별 어선보유 현황

 

 

 

 

 

<표 22> 강르시 광업건 등록현황
<표 23> 강동면의 광종별 공구수
<표 24> 강동면의 광종별 생산현황
<표 5> 강릉시 가행 광산 및 연간생산량 현황

 

 

 

 

 

 

강동면의 주요관광지
박창규 가옥, 안인해변, 안인진항, 승마

페러글라이딩, 안보 등산로, 통일공원, 등명락가사, 강릉 고려성, 하슬라아트월드, 등명해변, 6.25 남침 사적비

정동진역, 정동진 타임 스토리, 정동진 해돋이 축제, 모래시계공원, 정동진해변, 썬크루즈리조트, 정동진항, 정동진해안단구, 심곡항

파래산

헌화로, 기마봉, 금진온천, 금진항, 금진유람선, 금진해변

 

 

 

 

 

<표 27> 강동면의 유형별 주요 관광자원 현황
구분 / 지명 / 위치 / 면적 / 지정일자 / 비고


자연 관광 자원
- 국민관광지, 등명관광지, 강동면 정동진1리, 0.167km2, 1997.8.2, 조성계획수립 : 당초 1998. 8. 19, 최종 2003. 11.24
- 마을관리휴양지, 단경골 마을관리휴양지, 강동면 언별리, 0.142km2, 1992. 6. 8, 매년 45일 (7.10~8.23)강동면자체 관리
- 해변, 정동진해변, 강동면 정동진리, 13m2, 시범, 강릉시 총 해변 수: 22개소
- 해변, 등명해변, 강동면 정동진1리, 24m2, 마을, 화장실, 샤워장, 탈의실, 주차장, 휴게실, 야영장 등

 

 

 

 


- 해변, 안인해변, 강동면 안인진리, 13m2, 마을, 화장실, 샤워장, 탈의실, 주차장, 휴게실 등
- 해변, 염전해변, 강동면 안인진리, 25m2, 마을, 화장실, 샤워장, 탈의실, 주차장, 휴게실 등
- 항, 안인진항, 강동면 안인진리, -, -, 전복, 가자미, 문어, 성계 등
- 항, 정동진항, 강동면 정동진 2리, -, -, 전복, 가자미, 문어, 성계 등
- 항, 심곡항, 강동면 심곡리, -. -, 돌김, 미역,전복, 문어, 성계, 등
- 등산로, 안보체험등산로, 강동면 안인진리, 8.3km 7.7km, 1997., 안보체험등산로 2개구간
- 산(등산로), 피래산, 강동면 정동진리, 높이 753.9m, -, 밤재, 소나무, 참나무군락지
- 약수터, 등명약수터, 강동면 정동진리, -, 등명락가사, 부인병, 피부병 등에 좋음
- 휴양림 임해자연휴양림, 강동면 안인진리, 116ha, -, 산림문화휴양관, 분수대 등
- 해안도로, 헌화로, 강동면 심곡리, 2.03km, 1998, 심곡과 금진간 해안도로
- 해안사구, 하시동·안인 해안사구, 강동면 하시동리, 23만3,964m2, 2008.12. 17, 2,400여년 전 해안사구, 환경부 생태·경관보전지역지정
- 해안단구, 정동진 해안단구, 강동면 정동진리산50-60번지 일원, 4km, 2004. 4.9 천연기념물 제437호

 


문화 관광 자원
- 사찰, 등명락가사, 강동면 정동진1리, -, -, 사찰
- 탑, 등명사지 5층석탑, 강동면 정동진리, -, 1971.12.16, 도지정 유형문화재 제37호, 등명락가사 내의 5층석탑
- 서원, 송담서원, 언별리1115번지, -, 1973.7.31 도지정 유형문화재 제44호
- 정자(누각), 영인정, 강동면 정동진1리, -, -, 정동진 고성산
- 고분, 하시동고분군, 강동면 하시동리, -, 1973.7.31, 도지정 기념물 제18호
- 성곽, 고려성지, 강동면 정동진리, -, 2003. 1.18, 도지정 기념물 제79호
- 박물관, 통일안보전시관, 강동면 안인진리, 138,600m, 2001. 9.26, 북한잠수함침투지, 전시관
- 박물관, 정동진 타임스토리, 강동면 정동진리 400m2, 2005, 시계박물관
- 전시관, 하슬라아트월드, 강동면 정동진1리, -, 2003.10.20, 미술관, 예술정원, 호텔 등
- 사적비, 6.25 남침사적비, 강동면 정동진1리, 2001. 6.20 6.25 최초 상륙지점
- 공원, 정동진모래시계공원, 강동면 정동진리, 48,193km2, 2000.12, 모래시계공원조성, 해돋이 등

 

 

 

 

 

 

- 공원, 강릉통일공원, 강동면 안인리, 138,600m, 2001.9.26,통일안보전시관 등
- 축제이벤트, 정동진 해돋이축제, 강동면 정동진리, -, 12.31-1.1, 해넘이와 해돋이 축제
- 축제이벤트, 연꽃축제, 강동면 안인3리, -, 2009.7, 풍호마을연꽃축제
- 축제이벤트, 정동진 독립영화제, 강동면 정동진리, 1999.8, 
한국독립영화상영 등
- 축제이벤트, 노란참가자미축제, 강동면 안인리, -, 2007.7, 가자미 잡이 어선체험 등

 

 

위락 관광 자원
- 레저시설, 정동레저공원, 강동면 산성우리, -, 2006.10.24 서바이벌게임 등
- 승마장, 강릉승마장, 강동면 안인1리, -, 1998.2, 강릉지역 승마대중화 기여

자료 : 강릉시 관광과, 강동면 내부자료 (2009년 12월 31일 현재)

 

 

 

 


을 외치며 왔다 해서 방()재라고 하고 고개주변에 밤나무가 많이 있었다하여 밤(栗) 재라고도 한다.

② 단경골 마을관리휴양지(단경계곡)-강동면 언별1리 단경계곡을 중심으로 지정된 마을휴양지이다. 단경은 고려 유신들이 종묘를 지키기 위하여 은거하고 어단을 세운 곳이라 하여 생긴 이름이다. 이곳에 위치한 단경골 마을휴양지는 총 연장 7km, 면적 146,000m2에 지정된 마을 휴양지로서 맑은 계곡물과 새소리가 어우러져 있으며 기암 절벽과 계곡 숲의 경관이 수려한 관광지이다.

1996년 비지정관광지로 지정되었다가 1998년 마을관리 휴양지로 지정되면서 강동면 언별1리 마을회에서 관리하고 있다. 마을관리휴양지는 매년 7월 1일부터 8월 31일까지 2개월간 해당지역 읍면에서 관리하고 있다. 휴양지 내에는 2개소의 오토캠핑장이 조성되어 있으며, 단경골 계곡에는 1급수에서만 서식하는 버들치, 가제 등이 서식하고 있으며 품질이 뛰어난 산나물이 자생하고 있다.

 

 

 

 

 


(2) 해안단구, 해안사구, 해안도로

① 정동진 해안단구(천연기념물 제437호)-해안단구는 해안 연변을 따라 분포하는 대지상(臺地狀) 또는 계단상(階段狀)의 지형으로 대체로 표면이 평탄하고 주위가 급사면이나 절벽으로 끊긴 계단의 형태로 발달된다.

정동진 해안단구는 강릉시 강동면 정동진리의 안인해변에서 옥계면의 금진리의 옥계 해변 사이에 있는 해안단구이다. 신생대 제3기말에서 제4기초인 200만~250만 년 전 지반의 유기작용에 따라 해수면이 80m정도 후퇴하면서 바다 밑에 퇴적되어 있던 해저지형이 현재와 같은 위치로 육지화되었다. 해안단구의 길이는 약 4km, 너비는 약 1 km이며, 높이는 해발고도 75~85m이다. 단구의 표면은 거의 수평에 가까운 반면 절벽인 단구애(段丘崖)는 수직의 바위로 이루어져 있다. 단구의 성분은 적갈색 흙과 모래 자갈이며 작은 계소가 발달해 있다.

정동진 해안단구는 한반도에서는 보기 드문 지형적 특성을 가지고 있어서 한반도의 지반융기에 대한 살아있는 증거자료일 뿐 아니라 자연사 연구에도 중요한가치가 있다는 점이 인정되어 2004년 2월 17일 천연기념물 제437호로 지정되었다.

② 하시동 · 안인 해안사구-하시동 · 안인 해안사구는 연대측정결과 2,400여년전에 형성된 국내의 대표적인 고사구(砂丘)로서 전사구는 약 1,000년에 걸쳐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환경부에서는 이 지역의 생태계를 보전하기 위하여 2008년 12월 17일 하시동·안인 일대 23만 3,964m2를 생태·경관보전지구로 지정하였다. 이 곳은 강릉일대에 아직까지 남아있는 해안사구로 동해안 경관의 형성과 변화과정 연구, 해수면 변동 연구지역으로 중요한 곳이다.

이 지역의 식물 및 식물상은 곰솔식재림과 통보리사초군락, 갯메꽃군락이 발달되어 있으며 해안초와 통보리사초 등 총 25과 56 62종류의 식물의 분포가 확인되었다. 동물상은 총 239종의 야생동물이 서식하거나 도래가 확인(조류 48종, 포유류 13종, 어류 17종, 양서류 8종, 파충류 5종, 곤충 112종, 저서성 대형무척추동물 36종)되었으며, 멸종위기야생동물 1급 종인 수달과 2급 종인 삵, 물수리 등 3종 그리고 사구성 곤충 7종이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강릉시와 원주환경청은 하시동 · 안인 해안사구 지역을 체계적으로 관리 · 보전하여 장기적으로 생태환경을 보전하면서 주민소득 증대를 도모할 수 있도록 생태관광 자원화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③ 헌화로(獻花路)-정동진 7번 국도를 따라 두런두런 바다와 마주하고 달리다 보면 작은 어촌마을 심곡항이 산의 계곡 사이에 묻혀 드러난다. 헌화로는 조용한 어촌마을 심곡리에서 금진항까지의 총 길이 2.03km(사업비 31억 원)로 1998년 "심곡금진 해안관광 도로 이름짓기 한마당 축제"를 통해 만들어진 해안관광도로이다. 헌화로의 유래는 신라 성덕왕때 지어진 "헌화가"와 관련 있으며 이 노래의 작자와 연대는 미상이다. 순정공(純貞公)이 강릉태수로 부임해 가다가 해변에서 점심을 먹게 되었는데 그 곁에는 높이 천 길이나 되는 돌산 봉우리들이 병풍처럼 바다에 닿아 있는데 그 위에 철쭉꽃이 많이 피어 있었다. 순정공의 부인 수로가 그 꽃을 꺾어 바칠 자가 없느냐고 물었더니 모두가 사람의 발길이 닿을 수 없으므로 불가능하다고 대답하였다. 마침 그 옆으로 암소를 끌고 가던 노옹이 수로부인의 말을 듣고 그 꽃을 꺽어 드리고 또 가사를 지어 바쳤다고 하는데서 유래하였다.

이 일대의 지형은 표고 600m 안팎의 해안단구로 이루어져 있다. 해안단구의 바다 쪽은 절벽으로 되어 있는데, 바다에 거의 맞닿아 있다. 헌화로의 특징은 해안과 맞닿아 있어 운전 중 바다를 바로 옆에서 볼 수 있고, 이 일대의 해안경관은 절경이며, 주변에는 금진·심곡해안단구에서 나오는 미네랄 성분이 풍부한 온천이 있다.

(3) 해변
① 정동진해변-강동면 정동진리의 길이 2,000m, 폭 50m 1만3천m2의 백사장이 있는 일반 해변이다. 정동진에서 해수욕을 즐길 수 있는 곳은 정동진역 앞의 해변과 모래시계 공원 앞 해변, 그리고 정동진 방파제가 있는 해변 등 3곳이다. 1997년 정동진 해돋이 관광열차의 운행으로 정동진관광지가 급부상하여 관광객들이 사계절 내내 붐비는 곳으로, 2,479m2의 주차장과 민박(37개소, 184실), 탈의장(1),급수대(2), 샤워장(2), 파라솔(400), L형텐트(3), 화장실(1) 등 편의시설을 갖추어 피서객들이 이용하기 편리한 해변이다. 개장시기는 다소 차이가 있으나 매년 7월 15일경부터 8월 20일까지 약 37일동안 운영한다. 시내버스(11,12번 시내버스, 번호없는 좌석버스)가 수시로 운행되며 강릉시내에서 17km거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강릉에서 승용차로 약 20분이 소요된다.
 

② 등명해변-등명해변은 강동면 정동진1리에 위치한 해변(길이 1,000m, 폭 50m)으로 넓은 백사장과 편리한 주차장, 해송 숲이 우거져 있어 해변 산책로와 야영하기 좋은 곳...

 

 

 

 

 

 

〈표 35> 강동면의 축제 이벤트행사 현황

축제명 / 개최기간 / 축제 이벤트행사 주요내용 / 주최/주관 / 최초 개최년도

정동해돋이축제, 매년 12.31일~1.1, 공연, 모래시계회전식, 불꽃놀이, 민속놀이, 소지추첨, 강릉시 관광개발과, 1999

풍호마을 연꽃축제, 7월말~8월초, 수생식물관찰, 연못·습지생태체험, 창포비누 만들기, 전통고기잡이체험, 파래체험, 노래자랑, 연밥시식 등, 안인진3리 풍호마을 주민, 2009

정동진독립영화제, 매년 8월초, 개막공연, 우수독립영화상영, 감독과의 대화, 영상문화의 저변확대와 진흥, 한국독립영화발전, 강릉시네마떼끄 한국영상자료원, 1999

노란참가자미축제, 7월말~8월초, 어선승선체험, 가자미낚시체험, 가자미시식, 가자미썰기, 노래자랑 및 초청공연, 안인어촌계, 2007

자료 : 강원관광기본계획(2009), 강원도 : 강원일보, 강원도민일보 : 해당축제 홈페이지

 

 

 

 

 

 

강동면 주요 SOC 위치도

 

 

 

 

 


<표46) 시내버스 운행현황 노선번호

노선번호 / 기점 / 경유지 / 종점 / 소요시간 / 횟수 / 운행업체

109, 터미널, 강동면사무소, 안인삼거리, 임곡입구, 정동진(선크루즈) 45분, 동진버스
110, 동부시장, 강동면사무소, 현내(옥계한라아파트), 40분, 14, 동진버스
111, 공단, 강동면사무소, 안인, 통일공원, 정동진, 옥계현내, 75분, 2, 동진버스
111-1, 공단, 강동면사무소, 안인, 통일공원, 정동진,피내, 70분, 2, 동진버스
112 공단, 강동면사무소, 안인, 정동진, 심곡, 금진, 70분, 6, 동진버스
113, 공단, 강동면사무소, 안인, 정동진, 산성우리, 오리동, 65분, 4, 동진버스
114, 공단, 강동면사무소, 안인삼거리, 임곡초교, 임곡, 50분, 7, 동진버스
116, 공단, 강동면사무소, 모전리, 장작골입구, 언별리, 40분, 8, 동진버스
117, 안목, 공군부대입구, 하시동입구, 하시동, 55분, 7, 동진버스
118, 공단, 강동면사무소, 상시동, 덕현리, 40분, 8, 동진버스
119, 공단, 강동면사무소, 프라임솔트, 50분, 3, 동진버스

자료: 시내버스 운행정보, 강릉시청홈페이지


제3절 산업 및 환경시설

1. 영동화력발전처
한국남동발전(주) 영동화력발전처는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안인리 200번지에 있는 화력 발전소로 부지면적 1,381,305m2(417,843평)에 총시설용량 32만5000kW로 급증하는 강원지구의 전력수요에 대비하고 강원지구의 탄전 개발에 기여하기 위하여 영동의 저질 무연탄을 주연료(보조연료는 중유)로 하는 발전소로서 1호기(12만 5000KW)를 1973년 5월에, 2호기 - 1979년 10월에 준공하였다. 1·2호기 모두 일본 이토추상사[伊藤忠商社]와의 건설계약에 의하여 시행되었다.

 

 

 

 

 


2. 광역쓰레기매립장
강릉시에서는 사용중이던 교동매립장이 거의 포화상태에 이르러 장기간 매립할 수 있는 위생매립장 조성이 시급하여 강릉시 강동면 임곡리에 폐기물처리시설을 설치하였다.

(1) 연혁
· 1996.09.02~1996.09.24 후보지 선정 및 타당성 조사
· 1996.09.25 매립장 설치 장소 공고
· 1996.11.01~1997.07.10 환경성검토 및 환경성조사, 기본 및 실시설계용역
· 1997.09.26 폐기물처리시설 승인(도지사)
· 1997.10.13 공공시설 입지승인(협의) 및 고시
·  1997.12.17 반대투쟁위원회 해체 주민대책위원회 구성
· 1997.12.22 매립장 조성공사 착공
· 1998.03.20 광역쓰레기매립장 조성협약체결(주민대책위원회/강릉시)
· 1998.12.21 광역쓰레기매립장 1단계준공
· 1999.12.27 사용신고(수리)
· 2000.01.10 사용개시(쓰레기반입)
· 2003.06.21 위·수탁협약체결(강릉시=환경관리공단)
· 2004.09.03 2단계 매립장 착공
· 2007.03.13 2단계 매립장 사용신고(수리)
· 2007.07.02 2단계 매립장(매립시설부분) 준공
· 2007.10.11 ~ 2008.06.23 접속도로(국도 7호선~ 읍면시도 5호선)공사
· 2008.02.20 ~ 2008. 10. 14 10단 소제방축조

 

 

 

 

 

 


<표 53> 강동면 하천현황(2009년)
하천명 / 총연장(km) / 유로연장(km) / 유역면적(km2) / 개수연장(km) / 기개수연장(km) / 하천지정 근거 및 일자

군선강, 11.00km, 19.81km, 76.23km2, 15.51km, 12.59km, 강원82-146호 (1982.09.29)

임곡천, 7.70km, 14.81km, 27.27km2, 12.40km, 11.60km, 강원82-146호 (1982.09.29)

정동진천, 5.15km, 9.84km, 23.98km2, 7.31km, 6.77km, 강원82-146호 (1982.09.29)

자료 : 강릉시청 건설과 치수계 내부자료

1) 군선강
신라시대에 서라벌에서 온 화랑들(영랑, 술랑, 남석랑, 안상랑)이..

 

 

 

 

 

 


光明江東

발행처 : 江東面, 강동면개칭100주년기념사업회
주소 : 강릉시 강동면 율곡로 2208
연락처 : 033)640-4604
행정 : 임윤승 강동면장, 허동욱 강동면 부면장
발행일 : 2011년 8월

제작 : 강릉문화원
기획 : 심오섭 강릉문화원 사무국장
연구총괄 : 임호민 관동대학교 사학과 강사
진행 : 정운성 강릉문화원 문화콘텐츠팀장
인쇄 : 네오그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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