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출판물, 에세이
우비보다 비키니를 택한 사람들, 차은지
구 정반대편, 비행기로 이동해도 24시간이 넘게 걸리는 브라질 이야기. 포르투갈어를 전공한 작가의 브라질 여행·인턴생활기가 담겨있다. 책을 읽는 동안 날씨 좋은 화창한 날의 하늘과 푸른 풀밭이 떠올랐다. 우중충한 장마철이지만, 우비보다 비키니를 입고 빗속으로 뛰어들 수 있는 행복한 7월이 되길!
제목 : 우비보다 비키니를 택한 사람들
저자 : 차은지
펴낸곳 : 행복우물
제본 형식 : 종이책 - 무선제본
쪽수 : 291쪽
크기 : 124x188mm
가격 : 16,500원
발행일 : 2022년 8월 24일
ISBN : 979-11-91384-30-7 (03810)
작가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_monica_cha/
동안 들춰보며 글로 옮겼다. 잊지 않기 위해서. 하지만 나는 조금 게을렀고, 지난날의 여행기보다는 현실의 자소서를 쓰느라 바빴고, 블로그 비공개 글을 공개로 바꾸기엔 용기가 부족했다. 그렇게 내가 사랑했던 브라질은 비슷한 경험이 있던 대학 친구들과 한 번씩 곱씹는 안줏거리가 되곤 하였다. 그냥 딱 그 정도. 그렇게 점점 잊혀가는 추억이 되어버렸다.
문득 인생을 한 번 정리하고 되돌아보는 시기에 단숨에 떠올린 것은 브라질이었다. 거기에 내가 있었기에 그저 그런 여행지로 남겨두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이제는 일기나 가벼운 안줏거리가 아닌 '글'로 다시 써 내려가, 어떤 이에게는 브라질 여행을 꿈꾸게 하고, 또 어떤 누군가에게는 배낭을 메고 걸으며 스스로와 가까워지려는 의지를 심어주고 싶었다. 혹은 이미 지난 과거의 배낭 여행을 다시금 떠올리게 하거나. 물론 포르투갈어를 조금 할 줄 알기에 생기는 에피소드가 있다거나 조금 더 쉽게 길을 찾는다거나 할 수 있지만, 그래도 브라질은 브라질이다. 그곳은 매력적이고...
아침놀
그래도 브라질은 브라질이다... 11
1부.
여행 아닌 일상
살가운 포옹에 대하여_ @Curitiba ... 23
외국어를 배우는 초반에는 아기가 된다 ... 25
매일 길을 잃던 날들 ... 28
커피와 카페 ... 33
뛰거나 걷거나... 37
땅구아 공원 ... 43
여름에 대하여 ... 47
2부.
여행지에서 게으름뱅이가 되는 법
자유를 입은 이파네마 해변 @ Rio De Je
낯선 이의 관심... 60
까리오까와의 삼바! ... 64
파벨라에서 마주친 눈들 ... 71
진짜 여행의 시작, 설렘 @ Jericoacoara
모래 언덕과 지는 해... 87
게으른 자들의 지상낙원... 89
삼바 말고 포호 첫 걸음 떼기... 95
호수 위 해먹에서 낮잠자기 ... 103
우비보다 비키니를 택한 사람들 @ Foz rianópolis
살가운 포옹에 대하여
브라질에서는 하루에도 몇 번씩 남의 품에 안겼다. 처음 보는 이들은 마치 나를 오래전부터 알던 친구처럼 두 팔 벌려 친근함을 표했다. 눈앞의 상대방을 직시하는 깊고 투명한 두 눈을 마주한 뒤, 볼 인사를 하기 위해 목을 길게 빼고 한 쪽 뺨을 들이밀 때면 저마다 특유의 향기, 혹은 화려한 향수 냄새가 무방비 상태에서 콧속으로 훅 밀려들어 왔다. 그다음 뺨과 뺨을 맞대고 '쪽' 하고 뽀뽀하는 소리를 입으로 내는데, 소리뿐인 그 가짜 뽀뽀가 처음에는 조금 웃기기도 했다. 허공에 하는 뽀뽀라니. 그러다가 간혹 볼에다 가 진짜 뽀뽀를 하는 이들을 만날 때면 나를 향한 진득한 애 정도에 깜짝 놀라기도 했다. 립스틱 자국이 볼에 남으면 함께 깔깔 웃었다.
어떤 외국어든 처음 배울 때는 원초적이고 쉬운 단어들을 익히고, 직설적으로 말한다.
"배고파."
"나는 추운 것을 싫어해."
"가장 좋아하는 색은 노란색이야.”
“오늘은 날씨가 좋아서 기분이 좋아!"
부족한 어휘 덕분에 에둘러 말하는 법이 없었고, 슬픔과 행복, 싫고 좋고의 감정 표현이 꾸밈없이 입 밖으로 나왔다. 생각을 하고 그걸 말로 뱉는 게 순서인데, 복잡하게 생각을 해봤자 그걸 그대로 외국어로 표현할 수가 없어서 말도 단순해지고, 생각과 감정도 단순해졌다. 그래서일까. 그 시절의 나는 가장 감정에 솔직했고 표현에 군더더기가 없었으...
포르투갈어로 커피(coffee)는 카페(café)라고 발음한다. 우리나라 마트나 동네 카페, 온라인상 어디서든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는 브라질 수입 커피. 그렇게 유명하고 맛있다는 브라질 커피를 나는 막상 브라질에서는 즐기지 못했다. 하숙집 어머니가 아침마다 내려 주시던 커피는 너무 쓰고 카페인이 강해 심장을 하루 종일 벌렁이게 했으며, 시내에는 마땅히 갈만한 카페가 없었다. 카페는 있으나 공간을 즐길만한 마음에 드는 분위기를 가진 곳이 없다는 뜻이다. 서울만큼 많고 다양한 컨셉의 카페가 있는, 심지어 유명한 카페들로 인해 OOO 길이 생기는 도시는 없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아마도 우리나라에 공원이 없기 때문이라고 브라질 생활 끝 무렵에 마음대로 결론 내렸다. 브라질에서는...
날이 좋으면 수업을 빼먹고 조깅을 하러 나가기도 했는데, 그게 당시의 나에게는 더 중요한 일이었다고 변명하고 싶다. 뛰고 걷는 순간에는 스스로가 살아있는 것이 아주 잘 느껴졌기 때문이다. 눈앞에 보이는 것이, 양 볼에 닿는 바람의 감촉이, 그리고 그걸 좋다고 여기는 생각이 '나'를 느끼게 했다. 오히려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보다 내 존재가 분명해졌다. 머릿속에는 끊임없이 잡념이 물고 늘어지는 걷기였지만 꼭 필요한 시간이었다. 그 잡념은 현실의 고민보다는 이로운 상상이었다. 일종의 판타지스러운. 그 당시 나는 상상으로 현실의 걱정을 잠시 잠재울 수 있었다. 걸을 때면 마음껏 상상하며 고민을 삭혔다.
약간의 땀을 훔치며 집 열쇠를 열쇠 구멍에 꽂고 방으로 올라가는 때는 나갈 때와는 다른 건강해진 몸과 마음이 된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했다. 단순히 칼로리 소모나 개운함...
습하지 않은 쨍한 여름. 오래 걸어도 땀이 나지 않는 더운 날씨. 있을 수 없는 유니콘 같은 상상 속의 날씨를 브라질에서 매일 경험했다. 아침에 조금 서늘하여 입고 나갔던 카디건은 한낮이 되자, 대충 허리에 둘러매거나 팔목에 걸쳐 들고 다니곤 했다. 쪼리와 발바닥 사이에 기분 나쁜 땀이 없어 쩍쩍거리지 않고 산뜻하게 걷는 것이 가능한 여름. 창문을 활짝 열고 바깥공기를 안으로 빨아들여도 방 안과 밖이 동일한, 보송한 여름 공기.
날씨 좋은 소리 같은 게 있다. 아파트 살 때는 알 수 없는, 어느 여름날 2층 방 방충망 없는 창문을 열어놓고 일기 쓸 때 자연스레 귀에 들려오는 소리. 가끔씩 동네를 관통하는 자동차 소리, 3층 높이의 커다란 나무의 가지를 이리저리...
한, 그리고 그 멋진 몸을 드러내야 마땅하다는 듯 좁디좁은 폭의 팬티 수영복과 눈이 어지러울 정도로 화려한 비키니에 비하면 내 것은 오로지 스포츠로서의 수영을 하기 위한 유니폼인 듯 보였다. 그 수영복을 꺼내 입는 순간, 아름다운 이파네마 해변의 거슬리는 검은 점처럼 눈에 띌 것임이 분명했다.
몸매가 좋든 아니든, 나이가 어리든 많든 브라질 사람들은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그저 자기가 좋아하는, 본인 눈에 예쁘다고 생각하는 저마다의 수영복을 입고 눈부신 바다에 뛰어들었다. 마치 몸은 드러낼수록 아름답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들에겐 남을 신경 쓰거나 눈치 볼 쓸데없는 여유와 시간이 없었다.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키와 몸무게가 있고, 서로의 다리길이를 비교하고, 출렁이는 팔뚝살을 부끄러워하며 가리기 급급했던 분위기 속에서 자란 나에게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오히려 브라질 사람들의 너무나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고 동공을 흐리고 있던 내가 가장 부자연스럽게 돋보였을 것이다. 사실 여자인 나도 감히 직시하기 힘들었다. 오죽하면 비키니 팬티에 치실이라는 별명이 붙었을까. 우리가 아는 그 치실이 맞다.
얼른 나의 칙칙하고 얌전한 수영복을 가리기 위해...
언젠가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기에 여행에서 느낀 수많은 감정을 보통날의 일상으로 끌어들이고 싶었다. 여느 때처럼 행복의 정의와 여행 이후의 삶을 상상하는 그때 사무엘과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물었다.
"사무엘, 넌 네 삶이 좋아?"
사무엘은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
"응, 엄청."
아무 기대 없이 물어본 것이기에 너무 쉽게 확신에 차 돌아온 그의 대답에 조금 마음이 떨렸다. 사무엘은 현재 자신의 일과 놀이에 만족감을 느낀다고 했다. 물론 나도 현재는 행복한 삶을 살고 있지만, 이전에는 그렇지 않았던 적이 꽤나 있었고, 그동안 여행하면서 만난 한국인의 대다수는 자신의 삶이 좋다기는커녕, 이 여행이 행복하다고도 바로 답하지 못했다. 오히려 힘이 든다. 계획대로 되지 않아 여행을 완전히 망쳤다 등 불평 먼저 하는 것을 보고 놀란 적이 많았다. 혹은 행복에 대해 고민하고 생각하는 게 이상하고 어색하다는 표정이 돌아오기도 했다. 사실 알고 있었다. 행복에...
하지만 내가 그들을 좋아하게 된 건 비단 나를 웃겨서가 아니라, 나를 탕비실로 매번 불렀기 때문이 아니라, 일하는 방식 때문이었다. 상사와 생각이 다를 때는 자신의 의견을 당당히 어필할 줄 알고, 부장님한테 혼이 나더라도 금방 털어내고 그 감정의 곁가지를 주위 사람에게 풀지 않았다. 그들의 그런 당당하고 긍정적인 에너지가 부러웠다.
어느 날에는 엑셀에 한국어 발음을 포르투갈어로 정리한 표를 보여주었는데, '배고파요' '왜 불러요?' '갑시다' '피곤해요' 같은 간단하고, 귀엽고, 실용적인 문장들이 적혀 있었다. 물론 상사분들이 자주 쓰는 험한 말들도 들어있었다. 일이 잘 안 풀리지만 분위기를 험악하게 만들고 싶지 않을 때 그들은 모니터를 향해 야무지게 외운 한국 욕을 귀엽게 해댔다. 업무시간이 심각해질 틈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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