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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고등어 : 엄마를 생각하면 마음이 바다처럼 짰다, 고수리

강다방 2023. 9. 23. 11:32

 

 

 

 

 

에세이

고등어 : 엄마를 생각하면 마음이 바다처럼 짰다, 고수리

 

 

할머니와 엄마가 해준 음식에 관한 이야기. 엄마가 해준 따뜻한 집밥이 그리울 때, 너울치는 파도에 휩쓸렸을 때 읽으면 좋은 책. 제주 해녀 출신이었던 작가의 할머니는 강릉 아랫동네, 삼척으로 이사와 생계를 이어 나갔는데 그래서인지 동해안 음식도 책에 곳곳에 등장한다. 눈물샘을 자극하는 책이니 다른 사람들이 없는 곳에서 읽는 걸 추천한다. 앞부분이 특히 더 바다처럼 뭉클뭉클하고 짠하다.

 

 

제목 : 고등어 : 엄마를 생각하면 마음이 바다처럼 짰다
저자 : 고수리
펴낸곳 : 세미콜론
제본 형식 : 종이책 - 무선제본
쪽수 : 175쪽
크기 : 115x180mm
가격 : 11,200원
발행일 : 2020년 11월 17일
ISBN : 979-11-90403-24-5 (03810)

 

 

작가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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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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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어쩌다 엄마를 걱정하는 자식들은 평생 그만 큼의 간극을 좁히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엄마를 생각 하면 짜고 울컥한 것이 눈가를 스칩니다.

여기 고수리 작가의 유년 시절은 짠맛 가득한 바다의 기억이 9할입니다. 제주 해녀였던 할머니는 4.3사건의 비극을 온몸으로 관통하며 삶의 터전을 강원도 삼척으로 옮겼고, 그곳에서 태어난 넷째 딸 그러니까 작가의 엄마에게 바다는 숙명이자 삶 그 자체였습니다. 어린 엄마는 할머니가 차디찬 물속에서 건져 올린 몰캉한 것들을 장난감 삼아 자랐고, 어린 작가 역시 엄마의 억척스러운 바다 생활을 대물림하듯 지켜 보며 살아온 것이죠.

할머니와 엄마. 고단한 삶 속에서도 가족을 그리고 한 가정을 굳건히 지켜낸 두 사람입니다.

 

 

 

 

 


나는 할머니의 바다로부터 태어났다.

깊고 푸른 바다를 들여다본다.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물아래를 상상하다가 손가락으로 바닷물을 찍어 맛본다. 짜다. 아마도 내가 생애 처음 배운 맛은 짠맛이었을 것이다. 미역과 톳과 오징어와 고등어를 먹으며 나는 자랐다. 짠맛과 비린내와 할머니와 엄마의 살냄새가 배어 있는 음식을 먹으며 나는 피가 돌고, 살이 찌고, 키가 쑥쑥 컸다.

할머니가 폭 삶아 목걸이처럼 꿰어준 전복치발기를 질겅질겅 씹으며 쌀알 같은 이가 돋아난 나. 엄마가 새벽 어판장서 가져온 생선들을 뼈째 고아 만든 어죽을 넙죽넙죽 잘도 받아먹던 나. 생선 손질하는 두 사람 옆에 쪼그려 앉아 톡톡 부레를 터트리며 놀던 나. 생선 굽는 날이면 눈알이 사람 눈에 좋다면서 죄다 내 밥그릇에 올려주던 할머니와 그걸 꿀떡...

 

 

 

 

 

 


오징어젓갈 꽁치젓갈 오독오독 씹어 먹고, 성게 멍게 전복 초장에 폭폭 잘도 찍어 먹던 나. 고등어를 하두 좋아해서 내 이름 고수리보다 고등어를 노래처럼 불렀던, 어린 나

나는 기억하지 못하는 나의 모든 시간에 할머니와 엄마가 지어준 밥이 있었다는 걸, 나도 엄마가 되고서야 깨달았다. 내 새끼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은 따뜻하고 좋은 것들이었으면 하는 마음, 맛있는 거 있으면 한입이라도 더 떼어주고 싶은 마음, 조그만 입으로 밥 들어갈 때마다 배부른 마음이 사랑이었다. 사는 일일랑 언제나 뻑적지근하고 어두컴컴했지만 매일 동그랗게 둘러앉은 작은 상에서 우리는 짭짜름한 바다 것들을 먹으며 웃고 울고 떠들고 힘을 냈다.

내가 스물일곱 되던 해 할머니는 돌아가셨다...

 

 

 

 

 

 


누가 손바닥으로 나를 좀 만져주었으면 싶은 날이 있다. 속이 아프거나 마음에 찬바람이 불 때 어김 없이 배와 등을 쓸어주던 납작하고 여윈 손바닥들이 그리워진다.

욕심껏 먹다가 체한 날에 할머니는 반짇고리를 꺼내 왔다. 두툼한 무명실을 이빨로 툭 끊어두고, 라이터 불로 바늘 끝을 구워 소독하고는 사뭇 진지한 얼굴로 내 앞에 앉았다.

"자, 팔 내봐라.”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할머니는 내 팔을 쑤욱 빼들더니 우악스럽게 쓸어내렸다....

 

 

 

 

 

 

처음으로 보리토시를 내 손으로 직접 무쳐 먹어볼 요량으로 시장엘 갔다.

"보리토시 있어요?"
"보리토시?"
"보리토시 없어요? 바다서 따다 먹는 건데, 미역도 아니고 파래도 아니고 통통한 거. 꽃줄기 같이 생긴 거 있어요. 아, 저기 있다. 보리토시."
"아이고 아가씨야. 톳이네 톳."

 

 

 

 

 

 

톳은 미역처럼 내다 팔지도 않고 먹을 만치만 조금씩 따다가 이웃과 나눠 먹었다.

"욕심일랑 부리면 안 돼. 우리 먹을 만치만 따다가 다음에 또 따러 가야지."

엄마는 고사리가 산(山) 것이라고 했고, 할머니는 보리토시가 바다 것이라고 했다. 나는 고사리랑 보리토시가 봄 것이라고 생각했다. 봄이 지나 빳빳이 검게 말린 나물들은 죽은 것처럼 쓸쓸해...

 

 

 

 

 

 


"엄마, 근데 우리 너무 짜게 먹는 거 아니야?"

이제 그 시절 할머니만큼 나이가 든 엄마는 손이 더 짜졌다. 도시에 오래 산 나는 입이 싱거워졌고. 엄마가 해준 음식들이 짜게 느껴져 슬그머니 물어본 말에 엄마는 짠 나물이며 생선이며 찌개 같은 것들을 짭짭 소리 내어 먹으면서 심드렁하게 말한다.

"얘는. 우리가 샐러드 먹는 집은 아니잖니."

그렇지. 나는 아삭한 샐러드 말고, 흙냄새 바다 냄새 풀풀 나는 것들을 된장에 젓갈에 뭉쳐서 짜갑게 먹었지. 할머니의 "짜구워.”와 엄마의 "짜갑다."는 말은 “맛있다."는 말이었다.

 

 

 

 

 

 

 

할머니의 바다는 어떤 색깔이었을까

프리마 우유

 

 

 

 

 

 


모든 걸 빼앗기고도 꾸역꾸역 살아남아야 했던 할머니의 삶 자체였다. 거대한 파도가 밀려 올 때마다 할머니는 졌고 슬펐고 울었다. 구슬피 울다가도 파도에 눈물 씻어내고 다시 바다로 들어가 물질하고 키우고 살아냈다.

그러다가 아주 가끔씩, 할머니는 담배를 태우며 잠시 먼 곳으로 다녀왔다. 멀거니 바다를 바라보며 할머니는 제주 바닷속을 헤엄치고 왔을지도. 동생의 앙상한 등을 쓸어주다가, 아이의 동그란 머리통을 매만지다가, 핏덩이를 뜨겁게 껴안다가 왔을지도 모르겠다. 그때 나는 할머니의 그 모든 이야기를 몰랐지만 어린 마음에도 눈물이 날 것 같은 이상한 기분에 덩달아 슬퍼졌다. 아무 말도 해줄 수 없기에 그저 할머니 곁에 자주 있어줄 뿐이었다.

 

 

 

 

 

 


나는 바다를 떠올리면 무언가 나를 껴안아주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불었던 바람 같은 이야기가 여기까지 불어와 살포시 이마를 짚어주는 기분이랄까. 바다, 바람, 비, 해녀, 엄마, 이야기. 내가 이런 것들을 좋아하는 이유가 어쩌면...

 

 

 

 

 


엄마가 그랬다. 그맘때 정말 먹고 싶었던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그 기억이 평생을 간다고. 엄마에겐 그게 보리 미숫가루였고, 나에겐 시금치된장국이었다. 아랫집 언니에겐 김치였으면 좋겠다.

살면서 한 번이라도 이런 음식을 만나본 사람은 알 것이다. 특별할 것 없는 음식이 평생 기억에 남은 이유가 단순히 맛 때문만은 아니라는 걸. 어떤 음식은 손으로 만드는 위로 같다. 재료를 구하고 씻고 다듬고 만들어 전하는 수고로움과 누군가를 걱정하고...


 

 

 

 

 


아끼는 마음이 한데 섞인 맛깔스러운 위로. 그런 음식을 입으로 넘겼을 때 나는 처음으로 미음을 먹어 본 아기처럼 살아갈 힘을 얻었다. 그저 고맙습니다. 인사하며 울 것 같은 마음으로 그릇을 깨끗이 비웠다. 세상에는 이런 음식도, 이런 위로도 있다.

"새댁한테 김치 갖다줘. 김치통에 나눠 담을 때, 김칫소가 접힌 부분을 위로 두어야 해. 괜히 휘적거리다가 거꾸로 담아버리면 맛이 없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 요즘 배추가 별로라서 맛은 없다만, 그냥 푹 삭혀서 맘껏 먹으라고 하렴."

 

 

 

 

 

 


가자미식해는 동해안에서만 맛볼 수 있는 특별한 음식, '식해'는 토막 친 생선에 소금과 밥을 섞어 발효시킨 음식이다. 비슷한 것 같아도 '젓갈'과는 또 다르다. 염전이 발달한 서해안에서 소금에 듬뿍 염장해서 만든 발효음식이 젓갈이라면, 소금이 귀한 동해안에서는 밥과 약간의 소금을 섞어 식해를 만들어 먹었다.

내장과 머리를 뗀 가자미를 숭덩숭덩 잘라 조밥, 소금, 고춧가루, 엿기름을 넣어 푹 삭히고 무채를 넣어 가자미식해를 담근다. 나는 고추도 초장에...


 

 

 

 


엄마는 홀로서기를 하면서 머리를 싹둑 잘라버렸다. 어깨춤에 찰랑거리던 중단발을 쇼트커트로 자른 건 처음이었다. 엄마는 머리를 자르고 평소에는 바르지도 않던 빨간 루주를 바르고 바닷가에서 사진을 찍었다.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그 사진이 나는 아직도 눈에 선하다.

나는 그 사진을 아주 좋아했다. 왜냐하면 바닷 바람을 맞으며 어깨를 꼿꼿이 편 엄마가, 슬픔이 그렁한 눈으로도 씩씩하게 웃고 있는 엄마가 아주 당차고 멋지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 사진을 찍은 후 로 엄마의 삶에는 더 힘들고 더 가파른 일들이 파도처럼 들이닥쳤다. 엄마는 피하지 않고 그걸 다 맞닥뜨렸다. 대부분은 지고 가끔은 이기면서 엄마는 나이 들어갔다. 지금도 엄마는 씩씩하고 자유로운 혼자. 나는 그런 엄마가 여전히 멋지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살면서 한 번쯤 홀로 서야 한다. 사 먹고 시켜 먹는 음식들에 질리면 오래된 나의 맛을 찾게된다. 알아서 혼자 밥을 지어 먹게 된다. 엄마가 일일이 가르쳐준 적 없어도 나의 혀가 기억하는 그 맛을 찾아낸다. 내 간에 딱 맞는, 먹어본 그리운 음식들. 집밥을 지어 먹는 일은 시간과 정성이 드는 일. 밥상을 차리면서 나를 먹여 살린 누군가의 노고를 깨닫는다. 누가 차려준 밥상을 편히 받아들고 투정 부리던 내가 부끄러워진다. 내가 먹을 밥 정도는 스스로 '맛있게' 지어 먹고 살아간다는 자부심을 갖게 된다. 하루 세끼 먹고 사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는 나이가 되면, 내가 지어 내가 먹는 집밥이 커다란 유산임을 알게 될 것이다. 수백 번 수천 번 우리에게 밥을 지어 먹인 엄마가 전해준 것이었다.

 

 

 

 

 

밖에는 그사이 벚꽃이 피어 있었다. 선배는 좋아하는 식당이라며 '뒤푸리'에 나를 데리고 갔다. 대구탕 두 그릇이 나오고 나는 맥없이 숟가락질을 했다. 뜨거운 국물을 후후 불면서 선배가 말했다.

“네가 열심히 했다는 거 알아. 근데 너무 무리하지는 마. 네 젊은 날도 다시는 돌아오지 않아.”

그 말이 아직까지도 참 고맙다.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목구멍이 꽉 막혀서 밥 먹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울지 않고 대구탕을 깨끗이 비웠다.

 

 

 

 

 

 

강다방 이야기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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