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다방 이야기공장/입점 도서 소개

[독립출판물, 에세이] 얼마나 사랑하는지 묻는다면, 이건희

강다방 2023. 3. 6. 18:49



 

 

독립출판물, 에세이

얼마나 사랑하는지 묻는다면

 

 

이 작가의 직업은 벌을 키우는 양봉업자가 아닐까 싶다. 강다방에 입점된 도서 중 아마도 가장 로맨틱한(염장지르는) 책. 이 책을 읽고 나면 연애 세포가 죽은 이들도 마음 속 무언가 간지럽고 일렁이는 느낌을 받게 된다. 꽃밭에 앉아 이 책을 읽으면 꿀벌들이 몰려 올 수 있으니 조심할 것!

 

 

제목 : 얼마나 사랑하는지 묻는다면
저자 : 이건희
펴낸곳 : Palladang
제본 형식 : 종이책 - 무선제본
쪽수 : 74쪽
크기 : 115x180mm
가격 : 8,000원
발행일 : 2020년 10월 5일
ISBN : 979-11-971894-2-5 (03810)

 

 

 

작가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thisis.hee/

 

 

 

 


프롤로그

"사랑해."
"얼마나 사랑해?"

사랑한다고 말하면 얼마나 사랑하냐는 물음이 돌아왔다.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난감하고 조심스러웠다. 부풀려서 말하고 싶지 않았고, 대충 얼버무리고 싶지도 않았다. 네가 귀담아들을 만한, 내가 스스로 만족할 만한, 그런 대답이 필요했다.

사랑을 있는 그대로 내보이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사랑이 이만큼 크다고 해 봤자 그 크기는 가늠되지 않았다. 이만큼 깊다고 해도 그 깊이가 들여다보이지 않았고, 이만큼 무겁다고 해도 그 무게를 재어볼 수 없었다.

너의 흔적을 구체적인 언어로 기록하는 것. 그것이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보여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울렁거리는 마음으로, 떨리는 손으로, 그렇게 나는 응답으로서의 사랑을 만들었다.

 

 

 

 

차례

프롤로그 · 4
축제, 그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 9
오월 · 12
153번 버스 · 14
짜장면과 부먹 · 16
눈 오는 아침 · 18
파랑새 · 20
Be My Baby · 22
알딸딸 · 25
음미하자 · 27
메뉴는 파스타 한 가지입니다 · 31
여름방학 · 33
알레르기 시그널 · 34
어떤 마음 · 36
가을애 · 39

 

 

 

 

상상극장 · 41
어설픈 위로 · 43
Round and Round · 45
어렵게 꺼내 놓아야 하는 말 · 47
오 나의 여신님 · 50
꿈 깥은 사랑 · 54
파파라치 · 56
우리가 만든 바다 · 58
기차는 만남을 싣고 · 61
따로 또 같이 · 64
촉촉하고 말랑거리는 사람 · 66
택시의 낭만 · 68
낮잠 시간 · 71
오늘도 당연하지 않게 내 앞에 나타나는 너에게 · 72

 

 

 

 

 

야외에 마련된 탁자에 앉아 그녀를 빤히 건너다보았다. 그녀와 다정하게 얼굴을 맞대고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풍성한 행복감에 가슴이 뭉클했다. 이 정도는 되어야 기분에 행복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겠다고, 나는 생각했다.

식사를 마치고는 연남동의 경의선숲길을 걸었다. 봄이 여름으로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잔디밭에 돗자리를 펴고 앉아 있는 사람들, 맥주 캔을 손에 쥐고 버스킹을 감상하는 이들이 여기저기 보였다. 이 계절에 어울리는 훈훈한 풍경이었다.

나는 입속에 줄곧 머금고 있던 말을 불쑥 꺼냈다. 저기, 좀 더 기다려보려고 했는데 안 되겠어요. 우리 만나봐요. 내 말을 들은 그녀도 대답을 망설이지 않았 다. 서투른 나의 고백을 당돌한 질문으로 맞받았다. 튕길 만한 이유가 있나요?

우리는 더 가까이 붙어서 걸었다. 그리고 그날부로 아기자기한 연인이 되었다. 모든 것이 술술 풀리던 오월이었다.

 

 

 

 

 

내가 너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네가 낫고 나니 미안한 마음이 더 커졌다.

서울행 고속버스 맨 뒷자리에서 너는 내 어깨에 기대어 새벽 동안 못다 잔 잠을 자고 있었다. 밤에도 낮에도 나 하나만을 의지하고 있는 너였다. 버스 안의 더운 공기 때문에 등줄기를 타고 줄줄 땀이 흘렀다. 그리고 내 안에서도 무언가가 뚝뚝 흘러내리기 시작 했다.

너를 아기처럼 여겨야겠구나. 미워해서도, 울게 내 버려둬서도 안 되는 아기. 내가 더 든든한 보호자가 돼 주어야지. 너를 더 세심하게 돌보아야지. 잃고 싶지 않은 나의 아기. 듬뿍 사랑해 줘야지.

 

 

 

 


황당하다고 해야 할까. 그렇지만 고양이라는 게 워낙 묘한 동물이잖아. 생김새나 눈빛이 위협적인 것도 아니니까 지켜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지. 그런데 이 고양이가 별안간 침대의 턱을 훌쩍 뛰어넘더니 그대 로 네 품을 파고드는 거야.

구름을 끌어안은 건가 싶을 정도로 가슴이 포근해질 거야. 어느새 너의 몸에는 온기가 감돌고 우울했던 기분도 싹 가셨어. 작은 고양이가 벌인 짓이 기특하지. 피부에 닿는 털의 촉감은 또 어찌나 보드라운지. 쓰다듬고 있으면 새근새근 잠이 올 정도야. 왠지 향긋한 단내도 폴폴 풍기는 것 같아.

어때? 멋지지 않아?
난 그 정도로 네가 좋아.

 

 

 

 

 

어느 모로 보나 나의 얄팍한 수보다 훨씬 명쾌하고 바람직했다.

나는 지혜의 여신을 섬긴다. 누가 뭐라고 해도 그녀는 나의 지혜의 여신님이다. 벽에 가로막혀 주저앉고 싶어질 때, 스스로 판단이 서지 않을 때, 나는 지체 없이 그녀에게 달려가 신탁을 구한다. 오 나의 여신님. 제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택시의 낭만

기껏 따 놓은 운전면허증을 장롱에다 처박아 둔 우리는 택시를 타고 여행하는 날이 많았다. 강릉에서도 그랬다. 택시는 우리를 떠들썩한 안목 해변에도, 조용한 사근진 해변에도 내려주었다. 택시를 타고 곳곳을 누비다 배가 고파지면 기사님이 추천해주시는 식당을 찾아가 야무지게 한 끼를 해결했다.

강릉에서의 마지막 날에는 중앙시장 지하의 어시장을 구경했다. 납작 엎드려 있는 얘네들은 광어고, 내가 알기로 저 빨간 놈이 도미일 거야. 저기 줄무늬가 있는 건 돌돔이구나. 요것들은 순서대로 멍게, 개불, 해삼, 그 위 칸에 있는 건 가리비랑 전복, 아하, 숭 어는 추운 겨울이 제철이군요. 몰랐어요.

한쪽에서는 수십 마리 오징어가 수조를 유영하고 있었다. 총알처럼 헤엄치는 오징어는 불빛에 반응한다. 오징어를 유인하는 어선에는 그래서 석유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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