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다방 이야기공장/입점 도서 소개

[강원도 관련 도서] 동쪽의 밥상, 엄경선

강다방 2022. 10. 26. 15:55

 

 

 

 

동쪽의 밥상, 엄경선
동쪽의 바다, 물고기, 사람에 관한 이야기

 


인스타그램, 블로그 맛집에 지친 사람들을 위한 책. 강원도 영동(영북)지방의 음식과 식재료를 심도있게 다룬 책. 가자미, 식해, 순채, 갯방풍, 도루묵, 명태, 오징어, 도치, 섭 등 동해안에서 나는 지역 식재료와 음식들이 담겨있다. 따끈하고 시원한 해물탕 국물이 생각날 때, 이 책을 읽으면 좋다. 식도락 여행자 외에도 동해안에서 요식업을 하시는 분은 하나씩 챙겨두면 좋은 책 <동쪽의 밥상>.

  
제목 : 동쪽의 밥상
저자 : 엄경선
펴낸곳 : 온다프레스
제본 형식 : 종이책 - 무선제본
쪽수 : 239쪽
크기 : 128x188mm
가격 : 17,000원
발행일 : 2020년 11월 23일
ISBN : 979-11-972372-0-1 (03810)

 

 

온다프레스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onda_press/

 

 

 

 

 


엄경선 嚴局善

 

속초에서 태어나 대학 시절을 제외하곤 줄곧 속초에서 살았다. 지역 주간신문인 『설악신문』 기자 생활을 했고, 이후 외부 필자로 신문에 글을 써왔다. 사람 사는 이야기와 지난 시절 옛이야기라면 귀가 솔깃해 인물과 향토사 관련 책을 몇 권 썼다. 정신없이 변해가는 속초의 풍경에 익숙지 않아 항상 마음 한편에 과거의 기억을 담고 있다. 『설악의 근현대인물사』 『돌아가지 못한 사람들, 실향민의 삶』 『동해안 납북어부의 삶과 진실』(공저) 등을 냈다.

 

 

 

 

 


책을 펴내며
동해의 슬하에서 태어난 것들의 사연

나는 동해안 바닷가에서 나고 자랐다. 명태잡이를 하는 가업 때문에 부둣가에도 자주 나가볼 수 있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먹을 게 많지 않았던 그 시절에 싱싱한 수산물을 맛볼 수 있었다는 건 큰 행운이었다.

이제 동해안에서도 제철 수산물을 맛보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있다.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인한 수온 변화와 무차별 남획, 어장의 황폐화로 바다가 메말라가고 있다. 과거 만선의 기쁨으로 활기가 넘치던 항포구는 찬바람만 날리고, 오랜 흉어로 많은 주민들이 떠나면서 어업 인구도 급격히 감소했다. 국민생선이라 불리던 동해안 명태가 이미 사라졌고, 지난 30년 사이에 오징어는 10분의 1로 줄었다. 예전에는 정말 흔해서 눈길도 주지 않았는데, 이제는 우리 식탁에 올리기에는 귀하디귀한 물고기가 되어버린 것들도 있다.

 

 

 

 


흔했을 때에는 그 가치를 몰랐고, 가치를 알고 나니 찾기가 힘들어진 것이다.

우리 삶은 별 문제없이 과거보다 더 풍요로워진 것이 사실이다. 물고기도 자연산이 없으면, 양식으로 대체해서 먹는다. 그도 아니면 수입산이 빈자리를 메운다. 점점 우리의 미각은 풍요로운 맛을 소비하는 데 익숙해져가고 있다. 그러나 무언가 아쉽다.

물론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음식을 먹는 시절은 이미 지났다. 그러나 음식이란 혀끝의 미각만으로 맛볼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하나의 음식이 식탁에 오르기까지는 참으로 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친다. 즉 음식에는 여러 수고로움이 배어 있고 다채로운 삶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하찮아 보이는 반찬 한 가지조차도 그 나름의 맛과 멋이 있고 사연이 있고 문화를 품고 있다.

이 책은 영동 지역의 향토 음식을 매개로, 오랫동안 쌓여온 이곳 사람들의 삶과 음식 문화를 다뤘다. 그러다 보니 멀리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옛 문헌 속에 나오는 이야기도 찾고, 어린 시절 개인적인 추억도 더듬어봤다. 배를 타고 험한 바다로 나가는 친구의 사연, 새벽같이 시장에 나가 생선을 파는 지인의 이야기를 주워 모으기도 했다.

나는 여행을 많이 다녀보지 못해 다른 지역 음식을 먹어본 경험이 그다지 많지 않다. 하물며 물 건너 다른 나라 음식은 구경조차 못 한 것 투성이다. 음식 관련 일에 종사해본 적도 없다. 그저 지역에서 글을 쓰다 보니 지난 시절 이 고장의 '집단기억'을 더듬어 정리하는 데에 관심을 갖고 매달렸을 뿐이다.

음식에 대한 소견으로 치면 참 부족한 내가 감히 우리 지역의 밥상...

 

 

 

 

 

 


목차

책을 펴내며 4

제1장
그 향이 사흘이 지나도 가시지 않았다더라

가자미 1 - 흰밥과 가재미와 나는 13
가자미 2 -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가자미는 17
순채 - 가늘고 가벼워 은실 같구나 21
갯방풍 - 그 향이 사흘이 지나도 가시지 않았다더라 28
멸치 - 때는 마침 멸치 때니 후리꾼아 나오너라 34
양미리 - 늦가을 양미리 구워 먹는 맛 39
도루묵 1 - 도루묵의 추억 43
도루묵 2 - 이름 때문에 억울한 도루묵 49 
대구 - 귀하디귀했던 생선, 대구 54
표범 태반 -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사라진 요리 62
도문대작 - 허균이 말한 동해안의 먹을거리들 65

 

 

 

 


제2장
랭면을 맛보고 애걸하거늘

젓갈 - 간이 잘 맞게 담가서 진상하라 75
식해 1 - 들큰새콤 삭아 있던 밥식해 81
식해 2 - 내가 죽게 되거든 옥에 식해를 넣어 알려달라 87
명태 1 - 여진의 살 냄새, 신라 백성의 그리움 93
명태 2 - 내 이름은 백가지가 넘소 98
명태 3 - 통심이 쪄 먹으러 가자 106
소금 - 이곳은 본래 소금버덩의 고장 111
소금과 배 - 낙산사의 금표는 1백보에 불과하고 바다는 지극히 넓은데 116
정어리 - 일본을 망하게 한 물고기 122
함흥냉면 - 랭면을 맛보고 애걸하거늘 126
털게 - 맥고모자를 쓰고 털게 청포채를 안주로 맥주를 마신다 133

 

 

 

 


제3장
바다와 함께 울고 웃다

임연수어 - 강릉 부자가 그 껍질을 먹다가 망했다더라 143
오징어 1 - 산오징어의 잊히지 않는 맛 148
오징어 2 - 그 맛이 각별했다 153
오징어 3 - 오징어서약은 거짓서약이라지만 161
도치와 물곰 - 심통난 얼굴이어서 심퉁이래요 169
청어 - 산더미 같은 흰 물결이 하늘을 치는 곳에 176
황어와 탁주 - 양양부사도 그 맛에 눈물을 흘렸다더라 180
홍게 - 박달대게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185
아바이순대 - 고향 잔칫날 먹던 그리운 음식, 아바이순대 191
섭죽 - 천하에 이 진품기물을 먹어본 자 몇몇이나 되는고 197
해난사고 - 바다와 함께 울고 웃다 204
실향민 음식 문화 1 - 음식 하면 남쪽은 전라도, 북쪽은 함경도 210
실향민 음식 문화 2 - 팥죽을 먹을 때 오그랑 넣지요 218
실향민 음식 문화 3 - 농촌의 보릿고개가 어촌에도 있었다 224

책을 맺으며 230
추천의 말 233
미주 235

 

 

 

 

 

제1장

그 향이 사흘이 지나도 가시지 않았다더라

 

 

 

 

 


회무침의 문화는 궁핍의 산물이다. 일단 활어로 연근해 물고리를 살려 가져오기 시작한 게 1980년대 중반이다. 그 이전에는 대부분 선어(잡은 뒤에 피를 빼고 얼마간 숙성시킨 생선)로 먹었으며, 생선회를 먹는다고 해도 항상 탈이 날 걸 걱정해야 했다. 선어라고 해도 싱싱하고 값비싼 횟감은 내다 팔아야 하기에 감히 집에서 회로 요리해 먹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래서 회무침을 만들 때 자칫 탈이 날까 식초를 제법 넉넉히 넣어 무쳤다. 특히 멸치나 청어는 기름기가 많아 빨리 상하기도 하고 소화가 잘 안 되어 곧잘 체하기도 한 터라, 날회로 먹지 않고 회무침으로 먹었다. 요즘에는 멸치나 청어가 아닌 가자미 회무침이 주로 눈 에 띈다.

시인 백석이 함흥에서 교사 생활을 하면서 쓴 연작시 중 「선우사」(膳友辭)가 있다. 선우(膳友)는 번역하자면 '반찬 친구'이니 '반찬 친구에게 하는 이야기'인 셈이다. 이 시에 가자미가 나온다. “낡은 나조반에 흰밥도 가재미도 나도 나와 앉아서 / 쓸쓸한 저녁을 맞는다 // 흰밥과 가재미와 나는 / 우리들은 그 무슨 이야기라도 다 할 것 같다 / 우리들은 서로 미덥고 정답고 그리고 서로 좋구나 (...) 우리들은 모두 욕심이 없어 희여졌다 / 착하디착해서 세괏은(억센) 가시 하나 손아귀 하나없다 / 너무나 정갈해서 이렇게 파리했다 // 우리들은 가난해도 서럽지않다 / 우리들은 외로워할 까닭도 없다 / 그리고 누구 하나나 부럽지도 않다 // 흰밥과 가재미와 나는 / 우리들이 같이 있으면 / 세상 같은 건 밖에 나도 좋을 것 같다”

 

 

 

 

 


가자미1
흰밥과 가재미와 나는

"동해 가까운 거리로 와서 나는 가재미와 가장 친하다. (...) 그저 한없이 착하고 정다운 가재미만이 흰밥과 빨간 고추장과 함께 가난하고 쓸쓸한 내 상에 한끼도 빠지지 않고 오른다.” (백석, 「가재미 나귀」 중 일부)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면, 이 지역의 대다수 가정에서는 생선회를 먹어도 날회가 아닌 회무침으로 먹었다. 가자미회만이 아니었다. 오징어, 청어, 멸치도 마찬가지였다. 오징어도 활어로 잡기 시작해 산오징어회가 항포구에서 일반화되기 전까지 여염집에서는 거의 날회를 먹지 않았다. 죽은 오징어 중에서도 싱싱한 걸 썰어서 배 또는 무, 식초, 고추장 등의 양념을 함께 넣어 버무려 먹었다. 생선회를 썰어서 날것으로 초장이나 간장을 찍어 먹는 날회 문화는 1980년대 이후 횟집에서...

 

 

 

 

 


순채
가늘고 가벼워 은실 같구나

순채는 수련과에 속하는 다년생 수초로, 잎과 줄기를 맑고 투명한 우무질이 두텁게 감싸고 있으며 호수 표면에 뜬 잎의 모양새가 연잎과 비슷하다. 순채는 우리나라 연못에서 자생해왔다. 옛 문헌을 보면 전국 곳곳의 연못에서 순채가 자생했음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매해 전량이 일본으로 반출되었으며, 해방 후에는 서식 환경이 나빠지면서 대부분 사라지고 말았다. 지금은 멸종위기 식물 2급으로 지정되어 보호될 정도로 희귀식물이 되어버렸다.

순채는 농약으로 오염되었거나 더러운 물에는 살 수 없다. 순채의 멸종위기는 우리의 자연환경이 심각하게 오염되었음을 보여준다. 지금 제주도 말고는 내륙에서 유일하게 강원도 고성군 천진호 등 석호에 자생하고 있으니, 순채야말로 동해안 석호의 보물이다.

1994년부터 고성군 천진호에서는 자생하는 순채를 관리, 채취해...

 

 

 

 

 

 

고성 천진호에서 찍은 순채 ⓒ 김안나

 

 

 

 


다행히 순채 복원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많이 높아져 언젠가는 쉽게 순챗국을 먹어볼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강릉의 순포호는 그 이름이 순채에서 비롯되었는데, 호수 자체가 사라질 위기에서 벗어나 예전 모습을 되찾는 복원 사업이 완료되었다. 하지만 옛 문헌에 순채로 뒤덮혀 장관을 이뤘다고 하는 고성군의 선유담이나 지금 거의 유일한 순채 서식지로 알려진 천진호의 보존과 복원 소식은 뚜렷하게 진행되는 게 없다.

옛 선비들이 꿈꾸었던 안빈낙도의 삶. 그 소박한 희망을 담은 한 그릇의 순챗국을 언제쯤이나 맛볼 수 있을까?

 

 

 

 

 


갯방풍
그 향이 사흘이 지나도 가시지 않았다더라

『도문대작』(屠門大嚼)은 우리나라 최초의 음식평론서로 손꼽힌다. 1611년 광해군 3년 허균이 바닷가로 귀양을 가서 팔도의 특산과 음식에 대해 기록한 책이다. 당시 허균은 쌀겨마저도 부족해 상한 생선이나 감자, 들미나리를 먹거나, 어떤 때는 그것조차 없어 굶주린 배로 밤을 지새울 때가 많았다. 그리하여 먹는 것에 사치하는 이들에게 부귀영화는 무상할 뿐이라는 것을 일깨우고 배고픈 자신을 스스로 위로하고자 자신이 귀양 전에 먹어보았던 음식의 맛을 적어놓았다. 그것이 바로 이 책이다.

'도문대작'(屠門大嚼)의 뜻은 ‘푸줏간 앞을 지나가면서 입맛을 다신다'로, 실제로는 먹지 못하고 먹는 흉내만 내며 자족함을 가리킨다. 이 책에서 허균은 자신의 고향인 강릉뿐만 아니라 인근 지역의 대해서도 상세히 거론했다. 그리고 이 책 첫머리에 최고의 진미로 소개...

 

 

 

 

 

 

“나의 외가는 강릉이다. 그곳에는 방풍이 많이 난다. 2월이면 그곳 사람들은 해가 뜨기 전에 이슬을 맞으며 처음 돋아난 싹을 딴다. 곱게 찧은 쌀로 죽을 끓이는데, 반쯤 익었을 때 방풍 싹을 넣는다. 다 끓으면 차가운 사기 그릇에 담아 뜨뜻할 때 먹는데 달콤한 향기가 입에 가득하여 사흘 동안 가시지 않는다. 세속에서는 참으로 상품의 진미다. 나중에 요산(현재 황해북도 수안군)에 있을 때 시험 삼아 한번 끓여 먹어보았더니 강릉에서 먹던 맛에는 어림도 없었다."

얼마나 맛있으면 입안에서 향이 사흘이 지나도 가시지 않는다고 했을까? 여기서 말하는 방풍은 갯방풍이다. 허균이 태어난 외가는 강릉 사천, 친가는 경포호 인근 초당이다. 두 곳 모두 바닷가와 가까운 곳으로 예로부터 갯방풍이 나는 곳이다.

갯방풍은 주로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자생하는 다년생 식물로 줄기의 길이가 20센티미터 정도이고 뿌리는 10~20센티미터에 이른다. 잎 가장자리가 톱니 모양으로 뾰족한 게 특징이다. 고혈압에 좋고 풍을 다스려, 예부터 풍을 치료한다고 해서 방풍(防風)이라고 이름이 붙었다.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자생하기에 갯방풍 또는 해방풍(海防風)이라고 한다. 어린잎은 맛과 향기가 좋아 죽에 섞어 먹었고, 뿌리는 한방에서 해열진통제로 쓰여왔다.

같은 방풍으로 불리지만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방풍나물은...

 

 

 

 

 

 

2015년에는 고성군 대진리에 도루묵 알이 밀려 들어와 온통 백사장을 뒤덮었다 ⓒ 전태극

 

 

 

 

 


허균이 말한, 동해안의 먹을거리들

다음은 허균의 『도문대작』에서 거론된 물고기 중에서 동해안에서 나는 것만 추려서 정리한 것이다.

붕어(魚)
어느 곳에나 있지만 강릉의 경포가 바닷물과 통하기 때문에 흙냄새가 안 나고 가장 맛있다.

청어(靑魚
네 종류가 있다. 북도에서 나는 것은 크고 배가 희고, 경상도에서 잡히는 것은 등이 검고 배가 붉다. 호남에서 잡히는 것은 조금 작고 해주에서는 2월에 잡히는데 매우 맛이 좋다. 옛날에는 매우 흔했으나 고려 말에는 쌀 한 되에 마흔 마리밖에 주지 않았으므로 목로(牧老, 고려시대의 문장가 목은 이색을 가리킴)가 시를 지어 그를 한탄하였는바, 난리가 나고 나라가 황폐해져서 모든 물건이 부족하기 때문에 청어도 귀해진 것을 탄식한 것이다. 명종 이전만...

 

 

 

 

 


명태 2
내 이름은 백 가지가 넘소

명태는 그것을 부르는 이름이 백 가지가 넘는다. 조업 방식에 따라 그물로 잡으면 망선태나 그물태 혹은 망태, 낚시로 잡으면 낚시태 또는 조태, 어획 시기에 따라 이른 봄에 잡으면 춘태, 동짓달 추운 겨울에 잡으면 동지태 또는 동지바지, 섣달에 잡으면 섣달바지, 겨울에 잡으면 동태(冬太)로 부른다. 어획 지역에 따라 연근해에서 잡은 건 지방태, 원양조업으로 잡은 건 원양태로 부른다.

건조와 가공에 따라 갓 잡아 온 싱싱한 건 생태, 알이 차 있는 건 알태, 얼린 건 동태(東太), 말린 건 북어 또는 건태, 얼고 마르기를 반복해 살이 노랗게 된 건 황태 또는 노랑태, 더덕같이 살이 잘 부푼 황태는 더덕북어, 검은 빛으로 마르면 먹태, 하얗게 마르면 백태, 딱딱하게 마르면 깡태, 머리를 떼고 말리면 무두태, 배를 갈라 펴서 말리면 짝태, 적당히 말려 끈으로 입을 꿰어 묶으면 코다리, 싸리가지로 꿰어놓는 건...

 

 

 

 

 

 

 

여기서 주목할 만한 것은, 『세종실록지리지』에서는 강원도 동해안 고을마다 모두 소금가마의 개수를 기록했다는 사실이다. 지금은 소금이라면 서해안 천일염전에서만 나오는 걸로 알고들 있다. 그러나 조선시대에는 서해안뿐만 아니라 동해안 바닷가에서도 많은 양의 소금이 생산되었다. 당시 동해안 일대에서는 바닷물을 끓여 소금을 만드는 소금가마가 다수 자리 잡고 있었다. 이 숫자는 동해안에 인접한 인근 함경도와 경상도의 숫자보다 월등하게 많은 것이었다. 즉 조선시대 이 지역에서는 소금 생산이 주력산업이었다고 볼 수 있다.

세종 때 영동 지역의 소금가마 개수를 보면, 강릉도호부 스물세 곳, 연곡현 다섯 곳, 우계현 스무 곳, 양양도호부 스물두 곳, 동산현 열여덟 곳, 삼척도호부 마흔 곳, 평해군 마흔여섯 곳, 울진현 예순한 곳, 간성군 열일곱 곳, 열산현 여섯 곳, 고성군 여섯 곳, 안창현 열한 곳, 통천군 서른여섯 곳, 흡곡현 세 곳이다.

이에 반해 서해안의 경우 소금생산지(鹽所)와 소금창고(鹽)를 기록했다. 전라도 부안의 경우, 소금생산지와 소금창고가 각각 한 곳이라고 기록했으며, 소금생산자가 103명, 봄과 가을에 바치는 소금이 1,127석 남짓하다고 적었다.

소금가마에 부과하는 염세(鹽稅)는 나라의 중요한 세금 수입원이...

 

 

 

 

 

 


온유비공장이 노다지 산업으로 알려지는 바라. 돈푼깨나 있다는 사람들은 너나없이 사업에 뛰어들었고 어떤 은 그냥 앉아서 두 배의 이윤을 남겼다고도 한다.

일본은 2차 세계대전 중에 미국을 선제공격하면서 태평양까지 전쟁을 확대시켰다. 그러다 보니 기름이 부족해졌고, 그리하여 군수용 기름의 50퍼센트를 정어리 기름으로 충당하려 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1940년 이후부터는 정어리 어획이 급감하면서 해방 전후에는 동해안 일대에서 그 많던 정어리를 아예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은 정어리가 일본을 망하게 했다고 하여 정어리를 '일망(日亡)치'라고 불렀다고 한다.

1930년대 동해안 바닷가 주민들은 정어리로 먹고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항구마다 정어리 대풍으로 전국에서 사람들이 모여 들었고, 공장이 들어섰으며 도시가 형성되었다. 함북 청진항, 함남 흥남항, 신포항과 원산항, 강원도 장전항과 속초항, 대포항, 주문진항을 거쳐 남해안까지 정어리 어획이 넘쳐났다. 일본의 식민지 수탈의 대표적인 사례인 온유비공장의 경우 일본을 대표하는 대자본이 주도하여 대규모 공장을 세우고 유통을 독점했으며, 이에 조선인들도 제조공장 운영에 함께 뛰어들었다.

속초에는 당시 일본 최고의 재벌이던 미쓰이(三井)그룹이 설립한 종연조선수산의 직영공장을 비롯해 일본 대자본의 온유비공장이 다수있었다. 1937년 9월 8일자 『동아일보』에 따르면, 대포수산조합 관할만 하더라도 정어리를 가공하여 기름을 짜는 온유비공장이 80여 개가...

 

 

 

 

 


흉어와 해난사고, 납북
바다와 함께 울고 웃다.

동해안 지역에서 한때 수산업이 활황기를 누리면서 소수의 사람들이 부를 거머쥐기도 했으나, 대부분의 어민들은 삼중고에 시달리는 고달픈 생활을 해야 했다.

첫 번째 고통은 변덕이 심한 어황으로 인한 궁핍이었다. 지난해 풍획을 했다고 해서 다시 올해도 많이 잡는다는 보장이 없는 게 어황이다. 한때는 단일 어종으로 최고의 어획량을 기록했던 정어리가 한순간에 동해안에서 사라지기도 했을 정도다. 물론 농사일도 천기에 따라 풍흉이 갈리기는 하지만 바다와 같이 변덕스럽지만은 않다. 명태와 오징어의 어황도 해에 따라 풍흉이 크게 엇갈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어민들은 그때마다 울고 웃어야 했다. 흉어 때는 때꺼리(끼닛거리)가 없어 고통받았으며, 풍어 때는 어가 하락으로 한숨지어야 했다. 연근해에서 고기가 잡히지 않게 되면서 멀리 대화퇴 어장과 동중국해까지...

 

 

 

 

 


두 번째 고통은 해난사고의 위험이었다. 기상관측 기술이 발달한 요즘에도 바다에서는 돌발적인 사태가 자주 발생한다. 하물며 변변한 기상예보도 쉽지 않았던 시기에 바다에 나가서ㅏ 조업을 한다는 것은 항상 생명을 내놓는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망망대해 배의 밑판 널빤지 한 장 사이로 이승과 저승이 엇갈리는 어부들의 세계에서는 초자연적인 힘에라도 의지해야겠다는 심사로 무속신앙에 의존하는 문화가 널리퍼져 있었다. 그래서 지금도 이 지역 바닷가 마을에는 대나무를 대문 옆에 높이 세운 무당집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주요 해난사고를 살펴보면, 1930년 7월 18일 초유의 태풍으로 당시 양양군과 고성군 일대에서 해난사고가 일어나 1천 명 이상 사망했다. 1962년 1월 2일 갑작스런 돌풍으로 속초항 바로 앞에서 어선들이 전복되어 스물네 명의 어부가 목숨을 잃었다. 1968년 68해일 때에는 수 백 척의 어선들이 파손되어 인명사고까지 발생했다. 1976년 10월 28일에는 울릉도 동북쪽 250마일에 위치한 대화퇴 어장에 우박이 쏟아지고 폭우까지 몰아치며 파고 10미터가 넘을 듯한 삼각파도가 일었다. 속초 비롯한 동해안 항포구 소속 열네 척의 오징어잡이 선박에 탔던 325명의 선원들이 망망대해 바다에서 폭풍우를 ㄹ맞아 아무 도움도 받지 못하고 불귀의 혼이 되고 말았다. 1977년에는 울릉도 근해에서 속초항 소속 제11강원호가 침몰되어 스물여섯 명의 선원이 익사하고 다섯 명은 3일동안 표류하다기 기적적으로 구조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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