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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출판물, 에세이] 24계절의 우리, 하니니

강다방 2022. 3. 14. 15:42

 

 

 

24계절의 우리, 하니니

 

 

24계절 간 연애를 하고, 결혼 후 24계절을 겪으며 담아낸 연애·결혼 에세이.


귀여운 부부의 알콩달콩한 이야기가 담겨 있는 책으로, 이 책을 읽고나면 연애나 결혼(?)을 하고 싶어집니다.

 

강다방 이야기공장 오프라인 매장과 온라인 네이버 스마트 스토어에서 <24계절의 우리>를 만나보세요.

 

 

제목 : 24계절의 우리

저자 : 하니니
제본 형식 : 종이책 무선제본
쪽수 : 208쪽
크기 : 128x188mm
가격 : 10,000원
발행일 : 2022년 2월 7일
ISBN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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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출판물, 에세이] 24계절의 우리 : 강다방

[강다방] 강릉의 이야기를 담은 독립서점, 헌책방, 출판사, 기념품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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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럭저럭 살지 않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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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계절의 우리

나의 쓸모를 찾아주는 사람과 산다는 건
나를 포기하지 않는 일. 잃지 않는 일.

 

하니니 지음

 

 

 


글을 쓰며

다시 책을 쓰게 된다면 밝은 글을 쓰고 싶었다. 내게 있어 가장 밝 은 분야는 사랑뿐이라서 내내 나를 들여다봐 주는 한 사람을 위해 평전을 짓기로 했다. 책의 가제를 '한 사람을 위한 평전'으로 정해두고 글을 써내려갔다. 그로 시작하여 그로 마무리를 짓고 나니 진정 으로 평전을 쓰는 기분이었지만, 그건 너무 거창할 것 같아 책 제목 을 '24계절의 우리'로 수정하였다.

그를 만나고 24계절을 보낼 무렵, 프로포즈 목적으로 '24계절의 우리'라는 글을 썼는데, 헤아려보니 지금은 48계절을 겪어내고 있다. 연애와 결혼을 24계절씩 보내었으니 이제 내 깜냥으로는 사랑을 말해도 되겠지.

우리의 사랑이 결코 정답은 못 되겠지만 오답은 아닐 거란 믿음으로 적었는데, 애초에 사랑은 정,오답을 매길 수 없다는 걸 안다. 그렇 기에 읽는 내내 자신의 사랑을 채점하기보다는 나와 다른 사랑을 관 람하는 재미로 읽어주셨으면 한다.

하니니 올림.

 

 

 

 

내가 예전에 알았던 오빠들은 저마다 좋은 사람이었지만 한두 가지의 이유로 마음을 줄 수 없었다. 경제를 연구하던 오빠는 유머코드가 통하지 않았고, 잘생긴 오빠는 성격이 까칠했다. 음악을 하는 오빠는 늘 해가 중천이 되어서야 전화를 받았고, 취향과 멋을 몹시 따지던 오빠는 숨겨둔 애인이 있었다.

남편이 좋았던 이유는 도화지 같아서다. 군더더기와 편견이 없는 사람. 취향을 장막처럼 드리워 본질을 가리거나 하지 않았다. 그는 늘 입버릇처럼 "그래. 너 하고 싶은 거 해."라며 부족한 내게 주도권 을 맡겨주었다. 존중받는 느낌이었다.

'지는 게 이기는 거'라 배웠음에도 그게 말처럼 쉽지 않은 거라는 걸 안다. 현수는 내게 말없이 져주던 사람, 애당초 나와 싸우려 들지 않던 사람. 몇 발짝 떨어진 거리감으로 나를 지켜보면서도 모든 것 은 그의 품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묵묵히 포용하고 포함하는 신비한 사람이다.

취향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다만 취향을 지나치게 내세우거 나 부리지 않아 좋은 것이다.

 

 

 

 

필승법

난 사실 어느 무리에서나 적어도 1, 2등은 꼭 하고 싶었어. 고 등학생 땐 쟤 하나만 이기면 좋겠단 생각을 너무 하니까 칠판 옆에 수행평가 꼬리표가 붙었는데 내 점수보다 친구의 점수를 먼저 확인 하게 되는 거야. 경쟁자가 있으니 확실히 효과는 좋았는데, 친한 친구를 더는 순수한 우정으로 대할 수가 없었어. 쟤가 뭘 하나 자꾸 노 려보게 되더라고. 근데 인생은 절대평가가 아니라 커갈수록 그런 경 쟁심이 쓸모를 잃는 거야. 마음속으로 순위를 매기는 습관만 남아서 '오늘도 허탕쳤구나... 감정을 분실한 기분이 들더라고.


너 손오공과 베지터의 차이가 뭔지 알아?


뭔데?

 

손오공은 지지 않으려고 싸우지만, 베지터는 항상 이기려고 싸워. 근데 베지터는 한 번도 손오공을 이긴 적이 없어. 누군가를 이기려고 하거나 더 잘 나지 않아도 돼. 일등 그까짓 거 안 해도 되니까 순위에서 밀렸다고 스스로 초라한 기분을 만들어 내지마. 깃발 같은 거 안 꽂으면 어떠니. 우리 둘의 울타리 안에서 만족하면 그걸로 됐어.

 

 

 

 


“참나무는 제멋대로 굵고 높게 자라는데, 그에 비해 국수나무는 아주 작고 여리게 자랍니다. 설리설리 자라는 것 같아도 태풍 같은 풍파에 큰 나무들이 속수무책으로 쓰러질 때, 오히려 작고 보잘것없게 생긴 국수나무는 끄떡없습니다. 그러니 크고 높은 것들이 다 좋은게 아니고 오히려 작은 삶이 더 좋을 수 있습니다.”


설리설리 자란다는 표현이 좋았다. 설리설리 자라는 듯해도 결정 적인 고비 앞에 아무런 타격도 없이 견뎌낸다는게 통쾌하고 멋지 다. 나는 왜 높고 굵게 올라가려고만 했을까.


도시는 새로운 것들로 빠르게 생겨났다가도 금세 소멸한다. 허나 숲은 허무하게 사라지지도 하루아침에 생성되지도 않는다. 진득하 게 사계를 겪고 모진 기후를 견디어야지만 숲의 시간이 비로소 완성 된다. 조급함이 없는 숲처럼 나는 나를 기다려보기로 했다. 얕게 자주 흔들리더라도 드센 바람 앞에서 외려 꺾이지 않는 국수나무 같은 삶을 찬미하겠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 대사가 있어. 매일 비슷한 일을 반복하며 제자리를 걷는 것 같아도, 실은 나선형을 그리며 조금씩 상승하고 있다. 우리는 매일 비슷한 곳을 걷는 것 같아도 조금씩 나아가고 있어. 걷는 힘이 붙어 걸음은 늘고 후회는 줄었지. 우리가 잠든 순간에 도 머리카락과 손톱이 자라나듯 작은 일상에 성장이 숨어있어. 남들은 몰라줘도 나는 당신 알아봐 줄게. 내가 얼마나 존경하는데...


너의 말들이 마음을 다잡는 데에 도움이 돼. 가끔은 평범한 인생을 사는 것에 만족해. 하루하루 평범할 수 있다는 것이 실은 아주 어렵거든.

 

 

 

 

깡패

야다, 버즈... 옛날 록발라드 뮤직비디오에는 주인공들이 왜 그런게들 두들겨 맞거나 죽는지 모르겠다. 폭력배랑 패싸움하고... 실제로 우리 같은 일반인들은 살면서 폭력배 만날 일은 거의 없는데. 기억 을 더듬어보니 살면서 한 번도 못 만나봤네.

"깡패보다 무서운 건 세금이지. 매달 몽둥이 들고 쫓아오는 세금, 공과금, 보험료..."

 

 

 

 

같은 냄새 나는 사람


너의 냄새가 좋다. 같은 샴푸를 쓰고 같은 로션을 발라도 당신만큼 향기롭지가 않다. 자고 일어나면 머리에서 햄스터처럼 꼬순내가 나서 뒤돌면 자꾸 맡고 싶고, 출근할 땐 시원한 향수를 착착 뿌려 도시인처럼 근사하고, 집에 돌아오면 종일 무언가에 몰두한 고단한 존경 의 냄새가 난다. 잠들 무렵 느껴지는 비누냄새와 로션 냄새는 자꾸 파고들게 한다.


'우리가 함께 산다면 같은 냄새가 나겠지. 누군가 맡았을 때 같은 사람인가 하겠지.' 오 년 전엔 이런 꿈을 꾸었는데, 오늘 미용실 선생 님께서 그러셨다.


"혜린씨 향기는 참 좋아요. 현수씨랑 같은 냄새가 나요.”

 

"그럼요. 부부인데요...”


당연하다는 듯 받아치면서도 입꼬리와 발끝이 정신없이 들썩였다. 나 드디어 당신이랑 같은 냄새 난다!

 

 

 

 

다람쥐 신령

 

남편은 숲을 거닐다 말고 다람쥐를 만나면 최고의 행운이라며 다람쥐에게 고개 숙여 소원을 빈다. 별걸 다 기원하는 게 귀여워서 "나뭇가지 떨어진다! 어서 소원 빌어야 해!"라고 장난을 쳤는데, 그 후로 탈락하는 모든 낙엽과 꽃잎을 '착!' 손바닥으로 잡고 합장하여 깊이 빈다.

 

걷다 말고 보름달 아래에 멈추어 서서 소원을 빌고, 냇가에 반질반 질한 자갈돌을 주워 물수제비를 뜨면서도 소원을 빈다. 당신은 뭐가 그리 간절한 걸까.

 

다람쥐에게 빌었던 소원 제목을 물으니 세 가지 소원 중 두 개는 나를 위한 것이었다. 그 귀한 비중을 나에게 할애해 주어 고맙다.

 

오늘 밤은 다람쥐 정령이 나를 아주 좋은 곳으로 통통통 데려다 줄 것 같다. 부드럽고 따듯한 다람쥐 등에 어부바하고 숲을 누비는 꿈을 꾸고 싶다.

 

 

 

 

겨우 얻어진 한 토막


한 치 앞을 예상할 수 없는 청춘이 싫어서 '자고 일어나면 지혜가 가득한 오십 대였으면 좋겠다'고 줄곧 소망했다. 살아온 만큼 경험치가 쌓이면 어떤 일이 일어나도 담대하게 받아들일 것 같았다. 사무실 청소를 도와주셨던 여사님은 꼭 그런 모습이었다. 스스로 일군 지혜가 알알이 여물어 윤곽이 빛나는 분이었다.


본래 성품이 좋았던 사람은 중년 무렵부터 감출 수 없는 기품과 성숙함을 자아낸다. 한평생 곱게 마음을 썼다는 상훈이 품새에서 묻어 나는 것이다. 고급스러운 맞춤복을 입어 만들어낸 부티와는 다른 차원의 귀함이다. 여사님은 함께했던 모든 시간 동안 특유의 긍정성으로 주변을 편한 공기로 바꾸어주셨다.

 

“나는 일찍이 죽음을 목전에 두었잖아요. 지금도 완치된 건 아니에요. 인공신장을 달고 있어서 보통 사람들과는 이미 달라요. 계절이 바뀔 때마다 옷장 정리를 하며 생각해요. 이 옷을 내가 다음에 못 입을 수도 있겠구나. 내가 죽고 누군가 옷장을 보게 될 텐데 난장판이면 부끄러우니 정성을 다해 개어놔요.

 

 

 

 

로그아웃

신문에서 읽었는데 분주함은 존재증명이 아니래. 자존과 자부의 표시도 아니고, 사람들은 으레 쉬는 것을 게으른 것이라고 치부하잖아. 그게 아니란 거지.

그래도 마냥 쉬는 것이 익숙하지 않아.

혜린 : 사회인에게 필요한 휴식 열 가지를 말해 볼게. 〈독서, 자연체 험, 혼자 있기, 음악 듣기, 빈둥대기, 산책, 목욕, 몽상, 티브이 시청, 이해다가 명상하기> 그니까 우리는 지금 산책과 자연체험을 동시에 하는 거지. 어때? 조금 달라지는 것 같아?

글쎄. 극적으로 스트레스 지수가 0이 되거나 하지는 않는데.

숲을 걸을 때 자꾸 하품 나오잖아. 그건 심신이 편안한 상태로 접어들었다는 뜻이야. 한 주 동안 고생 많았어.

도시에서 돈을 버는 동안 쫓기고 푸석해진 심신을 자연에서 풀어 놓는다. 비어있어야 무한한 법. 모든 스트레스로부터 해방되기란 쉽지 않지만 일에서 벗어나는 순간 로그아웃은 잊지 말아야겠다. 안 행복할 때 갔던 유럽보다 행복할 때 간 옆 동네가 더 좋다는 진리를 깨달은 후로 나는 행복한 마음이 들 때마다 옆 동네로 향한다.

 

 

 


한데 물리적인 거리와 시간만큼 정직한 게 없더라고요. 멀리하는 만큼 멀어지는 순간이 와요. 생활 같던 사람이 생활에서 배제된 후 부터는 차근차근 정리되는 믿기지 않는 순간이요. 이별 앞에 초연하기란 늘 어려우니 그런 날이 올 때까지 실컷 슬퍼하세요.


그리고 정리가 되면 〈2016~2020년>이라고 이름 붙여 파일링을 해두는 거지요. 이 사람은 좋은 책을 고르는 법과 물회를 맛있게 먹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이런 식으로 갈무리해두는 것이지요. 분명 좋은 점과 배울 점이 있었을 테니까요. 그 시절 나와 제일 친했던 친구로 기록해 책꽂이에 꽂아두는 거예요.


사람은 대개 실패를 통해 성장해요. 바닥을 굴러본 후에야 넘어지 지 않는 법을 체득하고, 지갑을 잃어버리고 재발급의 귀찮음을 겪어 봐야 지갑 소중한 줄을 알아요.


이별을 통해 자라는 부분이 있을거예요. 내가 어떤 사람을 만나야 편안함을 느끼는지, 어떤 타입을 질색하는지, 이성을 만나는 눈을 기르는 법부터 내 본심은 무얼 원하는지를 세밀히 성찰하겠죠. 모든 문제에는 수정이 필요해요. 그리고 그 과정을 거쳐 당신은 나아질 것이고 좋은 사람이 되리라 확신해요.

 

 

 


꽃 사진


친구들이 부모님의 메신저 프로필 사진은 항상 자연 친화적이라며 웃었다. 단톡방에 각자 자기 부모님 프로필 사진을 올리며 누구 동네가 가장 꽃이 예쁜가 대결을 했다.


우리 부모님의 프로필을 보았다. 엄마는 아빠와 함께 찍은 사진을, 아빠는 한복을 입은 엄마의 사진을 게시해놓았다. 두 분에겐 서로가 꽃이었을까.


나도 부모님 나이가 되었을 무렵엔 줄곧 당신을 피사체로 삼고 프로필 사진으로도 설정해두고 싶다. 내게도 꽃 같은 존재가 당신이라

 

 

 

 

그래도 아빠는 나를 무릎에 앉히고 매일 시간을 보냈다. 횟집에는 장난감이 없었지만 모든 것이 장난감이 될 수 있었다. 매일 새 물고기가 채워지는 나만의 아쿠아리움도 있다. 어항 속 광어와 역돔의 기분을 살피거나 초장 만드는 과정을 바라보고, 동화책 대신 신문을 있으며 처음 보는 세상을 배웠다. 매일 얻어 마시는 밀크커피 한 모금. 아빠가 먹는 모든 한 입을 양보받을 때마다 사랑을 맛보기 한 것 같았다.

나는 부모님께서 우리 자매에게 극성스럽지 않은 게 좋았다. 두 분 의 우선순위는 늘 서로였다. 고기든 과일이든 엄마는 자녀보다 남편을 우선 챙겼고, 우리가 어느 정도 자란 중학생 때는 돈과 반찬을 두고 둘만의 여행을 훌쩍 떠나곤 하셨다. 나는 부부의 지붕 아래에 임시로 얹혀사는 객식구였을 뿐. 아무리 더듬어 봐도 딸 중심의 세계는 아니었다.

우리가 보는 앞에서 뽀뽀하거나 발을 씻겨주고 창문에 보드마카로 편지를 써두는 둘만의 사랑 어린 삶이 좋았다. 결혼을 해보니 내리 사랑 아닌 둘의 세계가 지켜지는 모습을 보며 자란 것이 그 어떤 유산보다 위대하게 다가온다. 부모가 자녀를 위해 사는 것보다 본인의 사랑과 행복을 우선적으로 확보하는 모습이 근사했다. 사랑에 빠진 여자와 남자가 그토록 아름답게 반짝였다.

 

 

 

아빠는 엄마가 없는 곳에서도 늘 엄마 이야기를 한다. 엄마는 그런 아빠를 맹목적으로 추종한다. 한 번도 내게 ABCD 공부를 봐준 적은 없었지만 내게 해준 가장 큰 산교육 아니었을까. 나는 부모의 사랑을 선행학습 하며 나도 꼭 그렇게 살 거라고 매일 작은 마음을 외웠다.


내가 먹는 것보다 남편 입에 들어가는 한 입이 더 배부르다는 느낌을 안다. 동료에게 받은 젤리를 모아 주말 데이트마다 갖다 주던 습관은 결혼 후에도 여전하다. 회사에서 옥수수를 몇 입 먹다 말고 당신 생각이 나서 고물고물 싸왔다. 맛있는 건 결코 혼자만 먹을 수 없는 운명이 되었다. 내 몫의 반은 늘 남편의 것이다.


소탈함을 보여주려다 '비 맞고 다니고, 잡초처럼 막 자랐다'는 말을 푼수 같이 떠든 적이 있다. 이제 와 수정한다. 나는 막 자란 잡초가 아니라 부모의 사랑과 은은한 관심 안에 자생적으로 자라난 들꽃이다. 나 또한 누군가의 사랑을 돕는 참고서이자 양분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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