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출판물, 에세이
일희희일비비, 용진
무던하고 의연한 사람이 되고 싶은, 남이 아닌 나로 사는, 나를 잃지 않는 삶을 살고자 하는 작가의 다짐이 담긴 책. 홀로 강릉을 여행하며 바다에 가고, 커피를 마시고, 책방에 방문한 내용이 있는데 그 풍경이 상상되며 웃음이 나왔다. 고향을 떠나 서울에 머물다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는 과정의 고민이 적혀있어 서울살이 하고 있는 지방러나 고향으로 돌아온 이들이 보면 더욱 공감할 수 있다.
제목 : 일희희일비비
저자 : 용진
펴낸곳 : 어바아웃북스
제본 형식 : 종이책 - 무선제본
쪽수 : 223쪽
크기 : 110x160mm
가격 : 13,000원
발행일 : 2024년 7월 3일
ISBN : 979-11-972111-5-7 (02810)
작가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victor_yongjin/
어쩌면 젊음과 방황은 같은 단어일지 모른다. 모양새와 소리는 다르지만 뜻은 같은 두 단어. 젊음을 푸르다 하고 푸르니 청춘이라 한다. 젊음의 색은 푸를지 모르나, 모양은 각지고 소리는 뭉개진다. 때로는 나를 찌르고 때로는 남을 찌르다 무뎌져 모난 각을 잃을 때. 그제야 나와 당신은 무던해질 뿐이다. 무던하 기까지 얼마나 깎이고 또 깎여야 할까. 이리저리 헤매어 돌아다닌다는 뜻의 방황은 이리저리 헤매야 비로
카페에 앉아 책 읽는 시간을 좋아한다. 책이 좋고 커피가 좋고 그것 모두를 즐길 수 있는 카페가 좋다. 카페는 사람이 모여야 비로소 완전해진다. 군중 속의 한 명이 되는 순간 나도 존재함을 느낀다. 그들을 바라본다. 저마다의 표정과 말소리가 공간을 메운다. 때론 소란하고, 때론 적막하다. 그들의 소리를 배경 삼아 글을 읽고, 글을 쓴다.
행복한 사람이 있어 행복한 곳이 되는지
행복한 곳에 있어 행복한 사람이 되는지 모르겠다.
밝은 조명과 더 밝은 햇빛 아래
행복한 곳에 행복한 사람이 한가득이다.
다행히 나도 이곳에 있다.
일이라도 날 것처럼. 매일같이 일찍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해가 질 무렵 집에 들어와 다시 내일 울릴 알람을 맞췄다.
쉰다고 했지만, 정말 내가 '잘' 쉬고 있던 게 맞나 고민한다. 이런 고민을 할 수 있게 되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만약 이번에도 모르고 지나갔더라면, 또 다른 쉬는 날에도 알람을 맞추고 오늘은 얼마나 알차게 보낼까 생각할 게 뻔하다. 한 번 아파보니 알겠다. '잘' 쉬는 건 정말 중요하다.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며 쉬는 게 아니라, 아무것도 안 하는 쉼이 필요하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고, 잘 쉬는 것. 잘 살기 위해 꼭 필요한 순간들이다. 낭비라 치부했던 것들이 실은 꼭...
책. 특히 수필을 읽을 때 저자의 모습이 그려지는 경우가 더러 있다. '이분은 이런 성정을 지녔겠구나.', '수더분한 분이려나? 아니면 무던하실까?' 곳곳에 묻어난 저자의 모습을 그리며 글을 읽다 보면, 어느새 책의 끄트머리에 다다른다. 못내 아쉽다. 더 이야기하고 싶은데. 당신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은데, 벌써 끝인가 싶다. 책을 가운데 두고 나누는 저자와의 소리 없는 대화는 검정과 흰색이 가득한 책을 다채로운 색...
KTX 기차표를 끊었다. 큰 고민을 하진 않았다. 바다가 보고 싶었고, 생경한 바다보단 익숙한 바다가 그리웠다. 같은 강원도지만, 강릉과 원주는 꽤 먼 곳이다. 그래도 해마다 여름이면 강릉 앞바다를, 새해의 첫해가 떠오를 때면 양양 앞바다를 찾았던 나에게 강원도의 동해안은 어느 바다보다 익숙한 곳이다. 그래서 가고 싶었다. 아무런 조건 없이 그저 그 자리에서 나를 바라봐 줄 것만 같은 곳에 가고 싶었고, 가장 먼저 생각난 곳은 강원도, 그중에서도 강릉이었다.
그런데 예매한 지 한 시간 여도 채 되지 않아 취소했다. 깊은 새벽, 이불을 걷어차고 일어나 새하얀 전등을 밝히고 주섬주섬 짐을 싼지 얼마 되지도 않았 는데 말이다. 예전의 나였다면 취소는커녕, 새벽 내내 바다를...
강릉에 왔다. 며칠 전 늘어놓던 푸념이 무색할 정도로 행복한 지금이다. 다시 돌아갈 걱정 따위는 하지 않는다. 이렇게 좋아할 거면서. 왜 지레 겁먹고 오지 않았을까. 망설였던 시간과 그 시간을 채운 고민이 아쉽지만, 지금은 강릉이니 괜찮다. 아무런 계획 없이 찾은 강릉은 익숙하고도 새롭다. 항상 가족들, 친구들과 함께 왔던 강릉에 혼자 온 건 처음이다. 처음이라니. 쓰고 보니 정말 홀로 온 강릉은 오늘이 처음이다.
얼굴엔 울음보단 웃음이 가득하다. 덕분에 쓸쓸하지만은 않은 겨울 바다의 모습을 기억한다.
강릉은 생각보다 귀엽다. 뭐랄까, 오밀조밀한 느낌이랄까. 강릉엔 두부 마을도 있고, 커피 마을도 있고, 옹심이 마을도 있다. 옹기종기 친한 친구끼리 모여 사는 느낌이다. 그들은 멀리서 온 이방인들을 누구 보다 환대한다. 당연히 이방인인 나도 다르지 않다. 두부 마을에서 빨간 짬뽕 순두부를 먹고, 커피 마을에서 고소한 커피 한 잔, 옹심이 마을에서 진짜 강원도...
바다는 기쁠 때보다 슬플 때 찾는다. 어딘가 헛헛하고 막막할 때. 인공적인 소음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을 때. 사람에게 질릴 때. 그럴 때 바다를 찾는다. 변함없이 그 자리에서 파도치는 바다. 항상 움직이지만, 항상 제자리인 바다. 바다에 일상을 짓누르던 고민과 걱정을 토해낸다. 토해낸 고민과 걱정 위로 어느새 파도는 치고, 포말은 인다. 하얗게 부서지는 거품처럼 고민과 걱정도 함께 부서지길 바라며, 또 바다에 온다. 오늘은 일상이 아니다. 오늘이 지나고 내일이 오면 일상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내일의 일상엔 어제의 고민과 걱정이 끈적하게 붙어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오늘에 있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수많은 것들은 내일의, 내일모레의 나에게 맡긴다. 무책임하다 욕할 사람도 없다. 어차피 오늘의 나도 나고, 내일의 나도, 내일모레의 나도 나니까.
서울에 가면 뭐라도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오늘도 나는 '북적이는 세상 속 한 사람'일 뿐이고, '하루는 버겁다'. 발 디디고 있는 장소만 바뀌었을 뿐 '학생 1' 에서 '서울 사람 1'이 된 셈이다. 매일 같이 사람에게 치이고 또 치이며 하루를 시작하고 끝낸다. 시끄러운 세상 속 나만의 조용한 섬을 찾는다. 들어가기도, 나오기도 어려운 섬. 그 섬 속에서 나만의 하루를 보낸다. 버거운 하루를 토해내고, 벅찬 숨을 내쉰다. 그리고 날이 밝으면 다시 세상 속으로 나아간다. 몇 년 전의 나도. 오늘의 나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이곳저곳에 발 디디며 몇 해를 보냈다.' 큰 이유는 없다. 익숙한 곳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낯선 곳에 서 겪는 예상 밖의 일들에 나를 던졌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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