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다방 이야기공장/입점 도서 소개

[독립출판물, 일기] 첫 목공 일기, 해작

강다방 2024. 7. 21. 23:14

 

 

 

 

 

 

 

 


돌이킬 수 없는 일들에 대해서는 그저
깨달음을 얻고 사랑스러워하고
다음에 더 잘 하는 수밖에.

 

 

 

 

 

 



이 책은 검증된 "교재"나 "입문서"가 아니다. 나는 이 책에서 어떤 용어의 뜻이나 어떤 공구의 사용 방법론 같은 것을 길게 기술하지는 않았다. 이미 시중에 목공 교재나 입문서들이 꽤 나와 있기도 하고, 사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내가 자전거 타는 법을 글로 배우지 않고 몸으로 배웠듯, 목공 또한 글이 아니라 몸으로 배우는 분야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나의 부정확하고 망각되고 왜곡된 기억을 복기해 붙잡아 두려는 시도, 스스로 복습하기 위한 필기장 또는, 차라리 받아쓰기 공책에 가깝다.

2022년 5월

 

 

 

 

 

 

 

수업 첫 날, 수공구를 잔뜩 받았다. 초보는 무조건 망가뜨린다는 이유에서다.

 

 

 

 

 

 


나무를 자르면 통나무가 된다. 통나무를 자르면 제재목이 되고, 얇게 펴서 겹겹이 쌓으면 합판이 된다. 제제목과 제제목을 붙이면 집성목이 되는데, 집성목끼리 또 스스로 집성 할 수도 있다. 나무 부스러기칩을 뭉친 걸 OSB 합판이라고 부르고, 나무 먼지를 뭉친 건 MDF 합판이라고 부른다.

 

 

 

 

 

 

나무 → 통나무 → 제재목 → 집성목을 또는 집성 스스로 할 수 있...
제재옥 + 제재옥
solid 집성목
핑거 집성목

통나무를 얇게 펴서 겹겹이 = 합판

나무부스러기칩을 뭉침 = OBS 합판

나무먼지를 뭉침 = MDF 합판

 

 

 

 

 

 

 

오케이가 멋대로 엉디빵디라고 불러서 그게 이름이 되었다.

 

 

 

 

 

 


"넌 참 섬세한 사람이야."

"너도 만만치 않아. 근데 갑자기 왜 그런 생각이 들었어?"

"다른 사람들의 감정이 5가지가 있다면 너는 100가지 쯤 있는 것 같아."

"아! 감정을 세세하게 느끼는 게 내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 주는 느낌을, 난 좋아해."

"너한테 필요하기도 하고."

"맞아. 필요하기도 하고. 예를 들어서 봐, 아까 의자에 앉았을 때 튀어나온 아주 작은 모서리 때문에 아팠던 걸 내가 언어화하지 못하거나 뭐 때문인지 모른 채 그냥 기분이 나쁘기만 하다면 내 인생이 얼마나 혼란스럽겠어."

-오케이와 수업 끝나고 집 가는 지하철에서 나눈 대화

 

 

 

 

 

 


톱질을 하다가 별안간 톱날 밑의 나무먼지를 털고싶은 충동에 왼손을 집어넣어서 냅다 손가락을 베었다. 가끔 나는 이렇게 어이없이 다친다.

정확히 자르는 것이나 정확히 재고 그리는 것의 쾌감을 몇 번 느끼고 점점 그 정확함이 어느 순간 손에 달라붙으면, 그 전으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정확함이 더 이상 행운이나 쾌감이 아니게 되고 반복되고 당연함이 되고 있다. 이젠 잘린 걸 자로 재 보지도 않다가 말도 안 되는 오차(이번에는 5mm)가 생기면 그저 얼탱이가 없어지기만 하는 것이다.

<부정확=당연함 + 정확=개짱>에서
<정확=당연함 + 부정확=뭐지 왜지? 말이 안됨>으로의 이행

 

 

 

 

 

 


슬라이딩 쏘를 쓸 때 장갑을 벗고 하는 게 더 안전한 이유는 (낮은 확률이긴 하지만 만에 하나 혹시라도) 쏘에서 다칠 일이 생긴다면 장갑 따위는 아무것도 보호해 주지 못하는데다, 오히려 장갑이 손의 감각을 둔하게 만드는 게 더 사고발생율을 높이기 때문이다. 큰 무거운 목재를 들고 옮기는 일 외의 소목 작업에서는 보통 장갑을 잘 끼지 않는다.

귀마개 밖으로 들리는 일정한 소리, 피부에 느껴지는 공기의 흐름, 손끝에 느껴지는 진동과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저항의 감각, 적당한 차분함과 적당한 긴장감 사이의 마음, 과하게 긴장되지도 이완되지도 않은 몸의 근육들,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 방향성, 경험과 꾸준함, 집중.

이런 것들이 내가 안전하다는 걸 알게 해 준다.

*주의! 초보는 숙련자의 지도 없이 혼자 (또는 초보끼리) 절대로 잘 모르는 기계를 조작하지 마세요. 매우 위험합니다!

* 작업 중에 안전하지 않다고 느껴지면, 그 직관과 감각은 언제나 옳으므로 즉시 작업을 중단하고 휴식을 취하거나 주위에 도움을 요청하세요.

 

 

 

 

 

 


죽어서 무엇을 남기고싶은지 오케이가 물어봤다. 나는 크게 두 가지 생각이 있다. 첫번째는 '한낱 먼지인 내가 죽으면 다시 먼지가 되고 모든 것이 먼지가 될 뿐이지 뭘 남기냐' 하는 것과, 두번째는 '내가 사랑하는 남겨질 사람들에게 모든 걸 주고싶다.'는 것이다. 나의 물질들, 비물질들, 남은 행운이나 당신이 잘 되길 바라는 마음, 사랑 등 모든 것을. 오케이는 사람들이 살다가 어느 날 어쩌다가 문득 자신을 떠올리고 웃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기억

 

 

 

 

 

 


강릉에서 게르와 오케이와 셋이서 트랙 달리기를 했다. 둘은 원래 마라톤을 좋아하고 나는 단거리 달리기나 풋살을 더 선호한다. 셋 중 내가 가장 근지구력이 약하고 달리기도 오랜만이라, 두 사람이 나를 사이에 끼고 나란히 달리기로 했다. 게르가 내 폰에 가이드 어플을 깔고 힙색을 빌려 주었다. 걷다가 신호음이 들리고 천천히 달리기 시작했다. 또 신호음이 들리고 걸었다. 갑자기 트랙 가운데에서 축구공이 날아와서 나 혼자 트랙을 벗어나 충동적으로 공을 쫓아 전속력으 로 달렸다. 공이 다시 경기장 안으로 들어갔고 나는 드러눕고싶어졌다. 다시 천천히 달렸다. 기분이 좋기도 했다. 별안간 짜증이 나서 빠 르게 달렸다. 어느 순간 가이드 어플이 가볍게 달리라고 해도 걸었다. 게르와 오케이가 나를 가볍게 앞질러 달려 갔다. "괜찮아?" 저만치 앞에 가서 뒤로 돌아 나를 보며 뛰는 게르를 잡아서 데굴데굴 굴려버릴 심산으로 질주했다. "나를 동정하지 마라!!!" 게르가 다시 앞을 보고 "으아아아!!!" 소리지르며 달렸고 나는 따라잡지 못했다. 웃다가 완전히 지쳐서, 운전을 오케이에게 부탁하고 조수석에 널브러졌다.

 

 

 

 

 

 


마음에 뭐가 걸린걸까.

약 먹고 자야지. 내일은 또 작업해야지. 건강한 걸 먹어야지. 어쩌면 점심을 건강한 걸 먹어야지.

이사가고싶다. 인생을 또 싹 갈아 엎고싶다. "이사 가면서 버려지기도 하겠죠." 그 말이 걸려 있다.

앞으로도 얼마나 더 오래 집착할지 모르겠어.

버려질 것이다. 영원한 건 없으니까. 버릴 것이다. 모든 것은 언젠가 버려지고 버리고 사라지고 다른 모든 것들도 다 그렇듯이.

"나를 나보다 더 사랑할 사람은 없다" 는 말.

 

 

 

 

 

 


"주짓수에선 진다는 말이 없어요. 이기거나 배우거나." 주짓수 관장님이 했던 말이다. 반대로 그러면 이기기만 하면 배우지 못하는 건가? 생각하게 되었다. 어릴때, 칭찬을 들으면 가끔 나는 얼어붙었다.

"주짓수 3개월 다니면, 너 스스로 도복을 하나 사 보는 선물을 해줘." "도복이 뭐 특별한 게 있어?" "색깔별로 디자인별로 다양하지! 압구정에 주짓수 도복 엄청 많이 파는 데 있어. 난 3개월 하고 거기서 보라색 도복 샀잖아." "우와!"

네 시쯤 가는 너를 지하철 역까지 배웅하고 몇 주 동안이나 싱숭생숭하던 마음을 가늠 해보고 내가 좋아하는 너의 포옹으로 인사했다. 무게감과 힘이 느껴지는, 직선적인 면이 있는, 따뜻하고 단단하고, 절도있고 또 장난스러운 그런 포옹. 너는 키가 커서 내가 너의 포옹을 따라 하려면 발 끝으로 서야 한다. (혹은 각자의 포옹으로 내 목이 꺾이거나 멀리서부터 달려가 도움닫기 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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