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하지 말라>, 송길영
개에 대한 서로 다른 이야기
과거에 ‘개 좋아하세요?' 하는 문장은 어떤 분들에겐 점심 메뉴를 묻는 표현으로도 쓰였습니다. 지금 그렇게 물어본다면 상대방의 공감을 얻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예전 유럽의 여배우 한 분이 한국의 강아지 먹는 문화를 비난했을 때 한국인들은 분노했어요. 서양인이 함부로 우리 문화를 모욕한다고요. 그런데 지금 그런 일이 일어나면 반응이 사뭇 다를 것 같지 않습니까?
책을 읽는 어떤 분들은 이게 도대체 언제 적 얘기냐고 놀라실 텐데, 이런 변화가 사실 얼마 안 된 것입니다. 누군가에게는 10여 년 전에 끝난 이야기겠지만, 누군가는 불과 몇 년 전의 기억일 수 도 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지금도 일어나는 일일 테고요. | 우리가 당연하게 마시는 생수도 1995년 이전에는 판매금지 품목이었습니다. 공기나 다름없는 물을 누구는 더 특별히 관리해서 먹는 행위가 계층 간 위화감을 조장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죠. 이처럼 그때는 틀렸고 지금은 맞는 것이 얼마나 많을지 생각해봅니다. 더 확장하면 지금 보기엔 당연한데 나중에는 당연하지 않을 것이 얼마나 많을지도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이렇게 팬데믹을 겪는 우리의 분투를 돌아보았습니다.
엄마는 파김치.
고3은 초불안.
김 대리는 생산성 집착.
코로나가 일으킨 변화를 돌아봄으로써 알게 된 건, 역설적이게도 이들 문제가 처음 튀어나온 게 아니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코로나19 때문에 생긴 변화가 아니라는 거예요.
엄마가 힘든 이유는 보육과 가사, 나아가 커리어 희생을 강요하는 한국사회의 여러 난맥상 때문입니다. 고3은 지금의 작은 뒤처짐 때문에 평생의 무한경쟁에서 탈락하게 될까 봐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김 대리는 저성장과 고용불안이라는 악재 속에
삶을 보장받고자 노력하는 것이고요.
가사노동, 무한경쟁, 저성장과 고용불안, 이 모두 우리 사회의 오래된 문제들입니다. 마치 장마에 땅 속에 묻혀 있던 쓰레기가 쓸려나오듯 이번 위기에 선명하게 노출됐을 뿐, 존재하지 않던 문제가 아니라는 거죠.
그렇다면 이참에 이 오래된 문제를 근원적으로 손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많은 교사들이 앞으로 온라인 교육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겠다고 합니다. 나아가 이번 기회에 학교에 가지 않는 다른 형태의 교육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겠죠. 온라인으로 교육의 질을 높이는 방안을 강구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가정과 학교가 나눠 지고 있던 보육의 역할은 어 떻게 해야 할까요? 이미 높은 가정의 보육 역할을 더 늘리기보다는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지원이 바람직하겠죠. 개인의 책임감이나 끈끈함에 기대는 것은 올바른 방향이 아닌 것 같아요.
‘K-도터'라는 말 들어보셨나요? 한국의 딸들이 맛있는 걸 먹거나 좋은 걸 보면서 미안해하는 글이 올라옵니다. 엄마는 이 좋은 걸 누리지 못했으니까요. 엄마에 대한 원죄의식과 함께 엄마가 가부장제의 희생양임을 새삼 느끼는 것입니다. 슬픈 현상입니다. 딸이 어엿한 어른으로 자라는 데 엄마의 희생이 기본 가정으로 깔려 있다니요. 그 때문에 누려 마땅한 즐거움조차 억누르게 되는
일본의 한 보험 회사가 2017년에 보험료 계산이 가능한 AI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34명을 해고했는데, 시스템에 투자한 비용이 그해에 절감된 인건비와 같았다고 합니다. ROI가 1년이에요. 1년만 있으면 투자비용이 회수되는데 누가 이걸 하지 않을까요? 한국의 금융권도 빠르게 RPA를 도입하는 중입니다. 단순한 형태 또는 반복되는 문서 작업 같은 것부터 자동화되겠죠.
이렇게 되는 순간 인간에게 요구되는 덕목도 바뀔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성실히, 꾸준히, 열심히 하는 자세를 높이 샀어요. 지금도 그런 면이 있죠. 그런데 로봇 R대리는 잠을 안 잡니다. 밥도 안 먹고 3교대도 필요 없어요. 월급을 올려달라는 말도 안 하고, 결정적으로 R대리는 오류를 내지 않습니다. 이렇게 동일한 업무를 꾸준히 하는 분야는 로봇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지금까지 농업적 근면성으로 열심히 일했던 이들의 꾸준함은 더이상 덕목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생각 없는 근면성은 조만간 주인의 발목을 잡을 것입니다. 혹여나 여러분도 좋은 직장에 들어가서 시키는 일 열심히 하겠다는 생각은 접으시기 바랍니다. 그런 일자리는 곧 없어질 확률이 높으니까요.
다만 초반에는 이 질문이 변화의 신호인지 단순한 소음인지 알기 어려울 수는 있습니다. 그때의 방법은, 많이 읽는 겁니다. 책이든 뭐든 꾸준히 많이요. 읽다 보면 패턴이 반복되는 게 보입니다. 신호가 증폭되는 게 있고 감소하는 게 있는데, 그걸 보면 됩니다. 구글트렌드 등 검색엔진의 키워드 분석 툴이 이런 역할을 하기도하고요.
누군가에게는 원하는 대답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당장 미국 주식을 살지 말지 누가 찍어주면 좋겠다는 사람에게 몇 년 동안 책 읽으라 하면 좋아할까요? 그러니 급한 대로 '1000권 읽고 깨달은 것들' 같은 다이제스트 책을 읽습니다. 그러나 성취란 다이제 스트로 얻어지는 게 아닙니다. 1000권을 읽는 와중에 그 노력을 통해 각성하는 거지, 1000권에 담긴 정보가 저절로 각성을 주지는 않습니다. 성취란 목표가 아니라 과정에서 얻어지는 훈장임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여기에 한 가지 더하고 싶은 얘기는, 무조건 열심히만 하는 게 답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잘못된 방향으로 열심히 하면 소진됩니다. 한 신문사의 기사에 따르면 2002년에는 텔레마케터가 유망 직업이었습니다. 그러나 2015년에는 없어질 직업 1위로 지목됐습니다. 2002년의 누군가는 15년도 안 되어 사양산업이 될 일에
자신의 인생을 걸었을지도 모릅니다.
방향을 먼저 생각하고, 그다음에 충실히 해야 합니다.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생각을 먼저 하면 돼요. 일어날 일은 일어날 테니까요. 그냥 해보고 나서 생각하지 말고, 일단 하고 나서 검증하지 말고, 생각을 먼저 하세요. 'Just do it'이 아니라 ‘Think first'가 되어야 합니다. 그 생각의 자료 중 하나로 앞에 말씀드리 3가지 상수도 활용해보시기를 권합니다.
한국의 장년층이 추억하는 ‘그때’는 어땠을까요? '한강의 기적’ 을 이루기 위해 다 함께 협력하고, 때로는 노동권이 저해되는 부분도 감내해야 한다는 암묵적, 명시적 압력이 있었습니다. 한국인의 특성으로 꼽히는 ‘빨리빨리' 또한 이 시기에 자리잡혔죠. 아무 것도 없던 시절, 지금 고생하면 나중에 아들딸이 잘 살 수 있다는 논리로 뭐든 열심히, 많이, 빨리 했습니다. 부가가치가 지나치게 저평가되어 제값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지만, 그럴수 록 빨리 만들어 많이 팔아 충당했죠. 그래서 어떤 일이 벌어지냐면, 오래 일하는 것이 미덕인 양 숭상됩니다. 밤 10시에 퇴근하는 김 대리는 훌륭한 직원이라 칭찬받습니다. 설령 게임을 하다 갔더라도 훌륭해요. 늦게까지 있었으니까요.
지금은 어떤가요? 자동화로 사람이 아니라 로봇이 일을 합니다. 노동에 대한 과거의 정의와 지금의 정의가 달라지고 있습니다. 개개인의 역량에 따라 부가가치가 천차만별로 달라집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열심히 하는 게 아니라 잘해야 하는데, 이 구조를 따라가기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바로 성장기에 개발시대의 논리를 교육받은 기성세대죠. 여전히 한국은 OECD 국가 중 노동시간으로 수위를 다툽니다. 이미 경제성장의 기울기가 완만해졌는데도 아직도 급격한 성장에 맞는 과거의 방식을 놓지 못하고 열심히 하라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어떤 문제가 생기나
여기서 핵심은 '공통'입니다. 종이에 그림을 그려서 돈이라고 했을 때, 혼자 믿으면 교환이 안 되고 모두 다 믿어야 화폐로서 교환되고 가치가 보존되는 거죠. 이게 바로 '공통의 상상 collective imagination’이라는 개념입니다.
중요한 점은 경험과 상상력이 같은 지점에서 출발한다는 것입니다. 이번 코로나 팬데믹은 단기간에 전 인류에게 공통의 경험을 하게 했습니다. 여기에 따른 우리의 대응과 그에 따른 반향은 앞으로 사회를 바꾸는 데 엄청난 추진력이 되겠죠.
자신의 가치관을 의심하라
생각해보면 우리 삶에는 크고 작은 변화가 너무 많습니다. 변화는 필연적이고요. 다만 좀 더 힘들어진 건 변화의 속도가 빨라졌기 때문입니다.
변화는 중립적이어서 그 자체가 좋거나 나쁜 것은 아닙니다.
내가 준비를 해놨으면 기회가 되고, 그렇지 않으면 위기가 될 뿐입니다. 그렇다면 사회 변화를 불평하는 것보다는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변화의 속도가 빨라진다면 각자는 더 먼저 가 있으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옛날은 좋고 지금이 나쁘다고 한탄할 게 아니라, 그저 내가 준비할 수 있을지, 우리가 지혜로운 합의에 이를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게 옳을 듯합니다.
예를 들어 코로나를 계기로 우리는 유연근무, 재택근무, 원격지 근무 등의 제도를 시험해봤고, 새로운 방식을 전향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러면 준비해야죠. 어떤 동료와 어떻게 함께할지 정하고, 새로운 방식을 받아들여 조직문화에 녹이고 지원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노력이 요구될 것 입니다.
우리는 머릿속에 목표를 그릴 때 으레 출발점과 결승점이 일직선으로 뻗어 있는 길을 상상하지만, 현실의 길은 함정투성이 입니다. 한국은 1997년에 외환위기로 한 번 와해되었죠. 그다음 2008년에는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으로 촉발된 경제위기가 있었고요. 다시 이번에는 코로나 팬데믹이 왔습니다. 네 번째는 뭐가 나올까요? AI나 로보틱스, 메타버스는 어떤 변화를 만들게 될까요?
지금은 상사와 직원 모두 능력을 따집니니다. 상사가 관리자가 아니라 동료로 인식된다면, 이제는 상사도 일 해야 하는 거죠. 물론 상사에게 능력을 요구하는 신입도 그래야 하고요.
이렇게 하여 모두 다 일하는 사회로 가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공정성 이슈가 나오고, 집단평가가 아니라 개인평가로 선회합니다. 이제 회사에서 가장 배척되는 사람은 다 된 밥상에 숟가락 얹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성장을 원하는데 상자에 갇힌
그에 따라 개인에게 성장이 점점 중요한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성장에 대한 언급은 계속 증가하고 있습니다. 성장에 대한 관심이 퇴색하거나 줄어드는 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죠. 10년 전 만 해도 '성장'이라 하면 으레 국가의 성장을 떠올렸습니다. 경제 성장이나 한국 경쟁력 같은 거죠. 지금은 ‘5월에 태어난 딸이 하루가 다르게 크고 있다'처럼 개인적인 영역으로 옮겨가고 있어요. 성장의 연관어를 보면 과거에 보였던 '시장'이나 경제성장' 같은 워드는 다 없어졌습니다. 이것을 보며 이제는 성장이 개인적인
로봇이 우리가 기대한 만큼 진화해간다면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일을 할 것인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물론 산업 자체가 없어지는 건 아닐 테니 소수는 자기 업을 지킬 것입니다. 나머지는 대체되고요. 이미 많은 경쟁이 산업 경쟁이라기보다는 개인 경쟁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때 각자가 준비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바야흐로 사람이 상품이 되는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다니엘 핑크가 말했죠. “파는 것이 인간이다 To sell is human” 라고요. 같은 제목의 책에서 그는 현대의 노동자들은 유형이건 무형이건 자신이 가진 무언가를 팔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나에게 팔게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경쟁의 추이가 바뀐다면 나는 어떤 능력을 얻을지 고민 해봐야 합니다. 막연히 준비하는 분들은 스펙 경쟁에 뛰어듭니다. 취업 스펙 9종 세트 같은 것들. 지금은 이게 통한다고 하지만 향후에도 계속 내 경쟁력으로 유지할 수 있을까요?
한국고용정보원이 만든 시대별 인기직업 리스트가 있습니다. 1950년대에는 권투선수가 인기직업이었대요. 지금도 훌륭한 직업이긴 한데, 인기직업 1위가 될 정도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선망 했다는 걸까요? 선수라는 특성상 많은 분이 영위할 수도 없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1960년대에는 택시 운전기사가 좋은 직업이었습니다. 은행원도 있고, 버스안내양도 나옵니다. 보신 적 있습니까? 지금은 이 직업 자체가 한국에서 거의 사라졌죠.
1970년대에는 건설 기술자, 트로트 가수.
1980년대에는 금융인, 그리고 프로야구가 시작되면서 야구선수가 뜨기 시작했습니다.
1990년대 순위에는 드디어 프로게이머가 나옵니다. 외환딜러 도 나오고요.
2000년대에는 국제회의 전문가나 공인회계사가 좋은 직업이 라 했습니다.
이걸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화무십일홍이라는 말처럼 직업의 영화가 존속되는 기간이 생각보다 길지 않죠. 부침이 커요. 직업을 갖기 위한 우리의 분투기가 10~20년 후에 소용없어질 수 있다면, 무엇을 기계에 맡기고 우리는 인간으로서 어떤 일을 할지도 합의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취준생들이 엄청난 준비를 하고 계신데, 과연 공부만 계속하는 것이 맞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무인화된 상점에서 아이스크림을 집을 때마다 내 직업의 불안감을 체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이 바뀌고 있는데 나라고 버티겠냐는 생각이 들고, 카카오뱅크 앱을 열어 매주 적금을 부으면서 우리 회사는 이걸 따라갈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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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다 모아서 루틴을 만듭니다. 아침에 뭘 하고, 점심에 뭘 하고, 저녁에는 뭘 하고, 가짓수가 점점 늘어나면 루틴만으로 하루가 끝날 수도 있어요.
온갖 국룰이 생겨난 이유는 타인으로부터 내 평판과 효율을 극대화하고 싶어서입니다. 평범하게 살고 싶으니까. 그러나 이 기준이 너무 높습니다. 평범한 게 판교 신혼부부라면 출발부터 불행을 잉태한 거죠. 기준이 높은데 그게 기준이라뇨. 심지어 그걸 모아놨어요. 국어, 영어, 수학을 다 잘할 수는 없잖아요.
무엇보다 평균, 중간을 추구한다는 국룰 자체에 문제가 있습니다. 서글프게도 중간의 인간은 대체됩니다. AI는 중간을 학습해요. 그런데 우리 인간이 지금 중간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실로 많은 변화가 중간에 있는 인간들을 없애고 있습니다. 시스템이 개인의 영역으로 점차 확장되는 게 보여요. 플랫폼은 비용을 낮추고 효율은 높이는 규모의 경제로 움직이기 때문에 소상공인이 힘들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여행 앱이 커지면 지역 여행사가 망하고, 부동산 앱이 잘되면 중개업자가 어려워져요. 그 밖의 각종 동네상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방식이 모든 영역으로 연결되고 확장됩니다. !
프로세스가 자동화되면 이제는 플랫폼 내부 인력도 줄이게 될...
좀 더 현실적인 방법은 나만의 작은 비즈니스를 하되, 장인 匠人의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입니다. 이 길을 택했다면 찻집을 할 때 찻잎을 직접 골라야 해요. 누가 내 고객이 될까요? 내 안목을 용인하는 사람들이 올 겁니다. 실제로 이런 가게들이 있습니다. 한 번은 내추럴 와인바에 갔는데, 홀에서 매니저 일을 하시는 분이 음식의 재료부터 요리법, 와인과의 마리아주까지 줄줄이 설명하는 걸 보고 놀란 적이 있어요.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에 가도 그 정도의 해박함은 기대하기 어려운데 말이죠.
이처럼 방법은 두 가지인 것 같습니다. 플랫폼을 만들거나 장인 이 되는 것. 즉 프로바이더가 되거나 크리에이터가 되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이쪽이든 저쪽이든 1등이 되어야 하고요. 가운데는 없어요. 결국 이 이야기의 무섭고도 슬픈 결말은, 우리가 완전체가 되는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베블런은 1899년에 ‘유한계급 leisure class’이라는 용어를 제안했습니다. 자본소득이 높아 노동하지 않고도 살 수 있는 사람들을 짐금부터 유한계급이라 부르자는 거였죠. 이들은 노동하지 않습니다. 대신 어떻게 하면 나의 여유를 더 많이 표현할 것인지가 무척 중요한 그들의 '일'이었습니다. 유한함을 표현하기 위해 쓸모없는 것에 가치를 두고 비용을 지불하는 것도 그들에게는 중요한 과업이었습니다.
이 차이 때문에 몰이해가 생기기도 합니다. 김 부장님 보기에 이 대리는 말이 안 돼요. 이 대리는 월급이 김 부장의 3분의 1밖에 안 되거든요. 우리 호봉제가 그래요. 그런데도 김 부장보다 돈을 더 씁니다. 전시회다 여행이다 맛집이다 다니느라 바쁘고, 패션에도 꽤 신경쓰고요. 하지만 이 대리 입장에서는 김 부장 월급이 3배면 뭐합니까, 용돈은 자기보다 더 적은데, 대출금에 과외비에 그에 따르는 온갖 부양에, 끝도 없어요.
누가 옳은 걸까요? 둘 다 옳습니다. 부장님은 그 시대에 태어났 기 때문에 참고 돈을 모아 집을 샀습니다. 그러나 이 대리는 매달 100만 원씩 모아도 집 사는 데 70년이 걸려요. 그래서 각자의 삶을 열심히 사는 것뿐입니다. 너무 다른 두 세계가 만나고 있는 것이죠.
모든 것은 변화합니다. 김 부장처럼 자신의 경험이 지금도 통할거라 믿으면 곤란합니다. 브랜드도 현재의 철학과 현실성을 파악하지 못하면 소비자가 공감하지 못해요. 나이키를 좋아하는 이유는 팬데믹 기간 중 'Just don't do it'이라 말할 수 있기 때문이에 요. 늘 고정된 나이키가 아니라 '지금은 코로나로 다들 힘드니 집에서 좀 쉬자'고 말하고, 인종차별 이슈에 대해 '하지 말라'고 목소리를 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세상이 어떻든 그냥 물건만 파는 브랜드에는 사람들이 화를 냅니다.
한편으로는 자료의 표현이나 매무새가 오래된 영화 속 등장인물들의 패션처럼 촌스럽게 보여서 새삼스러웠습니다. 그때 그렇게 자신 있게 만들고 안팎으로 공유하던 자료들이 지금의 눈높이로 보면 모자라는 부분이 많아 민망하고 부끄러웠죠.
10년 전을 돌아보고 얼굴이 붉어지다 다시 든 생각은, 10년 후에도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었습니다. 적어도 멈춰 있지 않고 천천히라도 나아지고 있다는 안도감 때문입니다. 같은 일을 숙련하는 것에 그치는 것뿐 아니라, 선비는 사흘만 지나도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아야 한다는 〈삼국지> 속 여몽의 이야기처럼 더 나아짐을 위해 노력하는 것, 그것이 우리 삶의 의미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나이 들수록 시간이 빠르게 흐르는 것 같다는 어른들의 이야기에 과학은 다양한 설명을 시도합니다. 도파민의 분비와 새로움이 줄어드는 감각의 변화에서부터, 다양한 의무에 지난한 일상이 반복되기 때문에라도 바쁜 것처럼 느낀다는 것이죠. 하지만 그 바쁨이 우리의 성장을 위해 쓰이고 있을까요? 술 마시고 있다는 부끄러움을 잊기 위해 술을 마시는 〈어린 왕자> 속 주정뱅이처럼, 허무함을 잊기 위해 “바쁘시죠?”를 서로 주고받기보다 왜 바쁜지 멈춰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미래는 지금도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업무를 맡기면서 자기 일을 한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강연을 나가면 가끔 이런 대화를 주고받곤 합니다. “어떤 일 하세요?” “마케팅 일을 하죠.” “마케팅 일이 어떤 건데요?” “우리 브랜드의 헤리티지와 에센스를 강화하는 행위를 말하죠.”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시나요?” “광고도 만들고, 프로모션 콘텐츠도 제공하고, BTL 활동으로 여러 이벤트도 하죠.” “그런 일을 누가 하나요?” “대행사요.” 대행사는 다시 또 누구에 겐가 하청을 주겠죠. 이건 본인이 한 게 아닙니다. 내가 했다고 착각하지만 실제로는 내가 한 게 아니에요.
대행에 맡기지 않고 직접 해야 합니다. 사회가 날이 갈수록 분주해지고 복잡해지면서 각자의 일이 분업화되고 있어요. 심지어 글로벌소싱도 됩니다. 그러다 보니 바삐 일하고는 있지만 구조 속의 일부에 속한 터라 전체 큰그림을 볼 기회가 적어집니다. 내 일이 전문화됐다 해도 전체와의 상호연관성이 희미해지면 그 결과물이 어떨지 파악하기 어려워집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엔가 또 소외됩니다. 분업화되는 일은 언젠가 프로세스화되고, 그러면 자동화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역할을 통합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전체 시야를 가지고 내가 하는 일을 하나의 업으로 승화시킬 만큼 수련과 관점을 높이는 작업이 요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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