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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열한 계단>, 채사장

강다방 2018.04.11 14:36


 


 

 

 

중요한 것은 어른이 된 내가 열아홉의 나를 만난다 하더라도 소냐의 삶에 더 귀 기울여야 한다고 말해줄 수는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누구나 자신만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여행을 마친 사람이 여행을 시작하는 사람에게 아무리 여행의 장단점과 주의사항을 말해줘봤자 소용없다. 스스로 밟아가야 한다. 적접 경험하고 실패하고 배우는 과정을 통과해야 한다. 그래야만 여행을 시작한 사람은 여행이 끝날 무렵에 자신이 처음 들었던 이야기들이 무엇을 의미했는지 이해하게 된다.

 

 


 

 

나는 불만이었다. 밤은 깊어가고, 지하철의 승강장은 고요하고, 막차 시간은 다가오는데, 복음서 안의 가르침은 만족스럽지 않았다. 이렇게 좋은 말씀이 가득한데, 왜 그리스도교가 점령한 이 세계는 가난하고 구차한 삶으로 가득하단 말인가?

 

 


 

 

여행을 통해 내가 보고 배운 건,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이었다. 감추사에는 붓다가 아닌 주지스님이 있었고, 교회에는 신이 아니라 신자들이 있었으며, 시장에는 상품이 아니라 사람들이 있었다. 세상은 형이상학적인 무엇인가로 채워져 있는 공간이 아니라, 처음부터 구체적인 삶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나는 당신이 여행하는 영혼을 가졌으면 좋겠다. 여행하는 여행들은 대체로 숨어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환영받지 못하기 떄문이다. 반대로 우물을 파는 영혼은 비교적 사회에서 환영받는다. 그래서 여행하는 영혼의 소유자도, 우물 파는 영혼의 소유자도, 모두 자신이 우물을 파는 영혼인 것처럼 행동한다. 평생을 거쳐 하나의 분야를 파내려가고자 한다.

 

 


 

 

하지만 산업화 이후 분업화된 환경에서 노동의 결과들은 노동자를 소외시킨다. 현대사회의 노동자는 일의 전체적인 전망을 가질 필요가 없다. 대신 세분화된 특정 분야에 숙달되어 있으면 충분하다. 효율성 때문이다. 노동의 주체로서의 '사람'이 아니라, 한 분야에 특화된 '전문가'가 필요한 이유는 생산량의 극대화 때문이다. 각 분야의 노동자가 자신의 업무를 전문적으로 반복할 때, 사회의 전체 이익은 증대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한 명의 개인에게 전문성을 요구하는 이유는 그 사람의 영혼을 고려해서가 아니다. 효율성과 전체 생산량 증대, 이것 때문이다.

 

 


 

 

군대에서 적응했던 것처럼 현실에서도 나는 잘 적응할 것이다. 다짐했다. 그때까지 최선을 다하리라. 어떤 고민도 하지 않고, 어떤 책도 읽지 않으리라. 남들처럼 자본주의 시스템에 적응하고 말 것이다. 돈을 벌고, 경제적 안정을 찾고,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고, 행복한 노후를 맞을 것이다. 하지만 종종 서글펐다. 열심히 일하고 노력하는 성실한 청년이 되었다고 느낄 때마다, 나의 영혼은 이미 늙어버린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지금처럼 현실을 묵묵히 걸어가세요. 동시에 언젠가 필요할 때 쉽게 꺼낼 수 있도록 이상도 함께 품고 가세요. 아무도 당신에게 둘 중 하나만을 선택하라고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도서관이 더 많고 좋아졌으면 한다. 책은 더 많아지고, 자리는 더 쾌적해지고, 밥은 더 저렴해졌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무엇인가를 시작하려는 사람들이 모이기 때문이다. 세상의 지혜를 앞에 두고 침묵 속에서 내면으로 침잠해가는 그들의 용기를 사회가 보호해줬으면 좋겠다. 도서관이 있다는 건 위안이 된다. 세상과 내가 빠르게 변해가는 동안에도 도서관은 변하지 않고 언제나 나를 맞을 준비를 하고 있으니.

 

 

 

 

다만 충분히 차오르지 못한 채 나온 것은 아닌지, 그만큼 동굴로 돌아가야 하는 시간이 빨리 찾아오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소중한 것일수록 멀어져야 하고, 그리워하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니까. 세상 속에 나와서 선물처럼 만나게 된 소중한 사람들을 즐겁게 그리워하기 위해서라도 나는 언젠가 나의 동굴로 돌아가야만 한다.

 

 

 


 

 

여행자, 그것이 모든 나라는 존재의 직업이고 숙명이다. 나는 노동자가 되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아니라, 세상을 보고 즐기며 배우기 위해 이곳에 왔다. 그리고 그러한 길고 긴 여행 중에서 우리는 운명처럼 성장할 것이다.

 

 


 

 

자신의 계단을 오르는 당신이 건강하기를, 그리고 많은 시간이 흐른 어느 날, 여행 중간 어딘가에 당신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날이 찾아오기를 기대해본다



- <열한 계단>, 채사장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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