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출판물, 에세이] 오래 미뤄둔 일기, 최다라
제목 : 오래 미뤄둔 일기
저자 : 최다라
펴낸곳 : 최다라
제본 형식 : 종이책 - 무선제본
쪽수 : 284쪽
크기 : 130x130mm
가격 : 10,000원
발행일 : 2024년 9월 30일
ISBN : -
혹 지금까지 미뤄두고 있는 게 있다면 더 이상 미루지 말라는 의미에서 추천해 보는 책. 이 책은 엄마와의 관계에서 오는 트라우마와 그를 극복하는 이야기가 담겨있다. 사람마다 오래 미뤄둔 일기는 각기 다르겠지만 그게 무엇이든 언젠가는 마주해야 하고, 그 뒤에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의 일기장도, 이 책처럼 늦게라도 쓰여지길 바라며 살포시 추천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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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매번 나이에 실패했다. 마음과 나이는 늘 엇박자였다. 어릴 적에는 애늙은이였고, 지금은 사춘기 소녀가 할 법한 고민으로 하루를 보내기도 한다. 성숙하게 세상을 바라보아야 할 때는 내면의 아이가 불쑥 나오고, 마냥 즐겁게 웃다가도 너무 오래 살아서 재미가 사라진 듯한 얼굴을 하고 있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일기장은 늘 다르게 쓰였다. 어릴 때는 어른의 일기장이, 어른인 지금에는 어린아이의 일기장이 튀어나온다.
재빨리 도망쳤지만 금방 모서리에 갇혔다. 방안 모서리에서 두 손을 모아 싹싹 빌던 나를 떠올리는 일은 여전히 힘겹다. 매가 아픈 것은 아니었다. 아픈 것은 엄마의 눈빛과 목소리였다. 엄마가 무서워서 도망칠 때면 나도 모르게 비명이 나왔다. 그러면 또 매를 맞았다. 내 목소리가 역겹고 소름 끼친다고 말했다. 그렇게 나는 다른 사람의 큰 소리에도, 나의 큰 소리에도 두려움이 생겼다.
가끔 받았던 벌 중 하나는 방에서 못 나오는 것이었다. 기억에 남는 가장 긴 기간은 한 달이었다. 하교하면 곧장 방으로 들어가야 했고, 화장실을 이용하거나 식사 시간을 제외하고는 밖에 나올 수 없었다.
어딘가 여백을 둔 불완전한 이야기를 주고받았고, 이야기의 빈틈을 나도 모르 게 나의 상처로 채웠다.
갑작스러운 호감은 경계했다. 너무 좋아지면 마음을 천천히 주려고 애썼다. 마음을 건드리는 칭찬을 듣고나면, 이 사람이 혹시 나의 결핍을 눈치채고 한 칭찬은 아닐까 겁먹었다. 속마음을 적당히 생략하고 편집해서 대화를 나눴고 상대에게도 그러한 대답을 듣곤 했다. 빈칸이 많은 대답을 듣고 나면, 그 빈칸을 내가 아는 마음과 생각으로 채웠다. 알 수 없는 상대의 마음을 나로 메꿨다.
DIARY
엄마의 기대가 부담스럽다. 오늘도 늦게까지 공부했다. 새벽에 공부하는데 엄마가 갑자기 거실로 나왔다. 나는 재빨리 불을 끄고 자는 척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늦게까지 공부하면 엄마가 좋아할 텐데. 아마 원래 똑똑한 아이인 척하고 싶었나 보다.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아도 성적이 좋은 척. 이번에도 겨우 성적을 올렸다. 다음에는 더 노력해야겠다.
친구와 비밀 이야기를 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불안해졌다. 내가 없는 시간에 그 친구가 다른 애들한테 내 이야기를 하지는 않겠지? 엄마의 말이 맞았다. 친한 친구에게도"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었다. 내일 빨리 학교에 가야겠다. 가서 친구와 다시 이야기를 해야겠다. 비밀을 꼭 지켜달라고.
연극을 하며 알게 된 친구들은 나와는 많이 달랐다. 그들이 너무 신기했고, 멋있었다. 그들과 함께하면서 나도 그들과 비슷한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그들은 자유로워 보였다. 어딘가에 묶인 것 없이, 아니 애초에 속박을 고려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들은 사랑하는 것을 그저 열심히 사랑했다.
장래 희망이 뭐냐는 친구의 질문에 나는 기계적으로 대학원 진학을 이야기했다. 친구는 그 과정에 내가...
나를 찾아가는 질문을 처음 받았다. 나는 왜 이런 질문을 생각하지 않고 살았을까. 그들은 어떻게 이런 질문을 발견하게 된 걸까? 엄마는 왜 진작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하지 않았을까?
등장인물은 입체적으로 그려야 한다
등장인물을 입체적으로 그려야 한다는 말이 좋아서, 소설을 쓰고 싶어졌다. 그 말이 위로가 되었다. 복합적이고 모순덩어리인 감정을 안고 있으며, 복잡하고 엉망인 삶을 사는데도 그 삶을 이해시키는 것. 그것이 소설이라는 것. 그 이야기를 통해 세계를 이해하고 나를 이해한다는 말을 듣고는 소설을 사랑하지 않을 방법이 없었다.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하자 쓰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아졌다. 그 글은 꼭 소설이어야 했다. 허구라는 것을...
나의 이야기에서 엄마를 뺄 수 없었다. 그래서 내가 공감하는 이야기들도 종종 엄마가 등장한다. 오늘의 문장은 이거였다. '착한 사람도 상처를 줄 수 있어' 엄마가 착하다는 것도 상처를 준다는 것도 다 인정하는 문장이었다. 그러나 나는 바른말을 하는 그 문장이 가장 불편하다. 엄마가 착하다는 것도, 엄마가 내게 상처를 준다는 것도 마음에 안 든다. 마음껏 미워할 수 있게 엄마가 아주 나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나에게 상처를 안 주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내가 아는 그 엄마였으면 좋겠다.
상실감을 느껴본 사람은 티가 난다. 잃어버리기도 전에 벌써 상실을 준비하는 그 자세와 마음이 보인다. 나의 상실을 들킬까 봐 말을 더 하기도 하고, 몸짓이 과해지기도 하고, 감정이 격해지기도, 다른 일에 힘을 쏟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숨길 수 없는 마음이 있다. 이미 상실을 아는 사람은 상실을 덤덤하게 받아들일 줄 안다. 나의 자리가 없을 수 있다는 것, 나의 세상이 나를 버려두고도 혼자 잘 흘러간다는 것, 나와 무관한...
DIARY
완전한 에세이도, 소설도 없다. 거짓말이 담긴 사실과 진솔함이 담긴 허구가 있다. 소설에선 나의 이야기가 선 명해지고, 에세이에서는 나의 이야기가 모호해진다.
그냥 나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알아서 잘 지내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왜 마음껏 미워하지도 못하게 만들어. 미워하는 날 왜 항상 나쁜 애로 만들어. 미워하려고 하면 왜 늘 나보다 아픈 거야.
글을 쓰기 위한 연습
미움 기록장을 적는 내가 바보 같아 보였다. 나는 누군가를 미워하기 위해서 메모장이 필요했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이, 화나는 일이 너무 쉽게 사라졌다. 따뜻한 눈빛 한 번에, 다정한 웃음에 미움을 금방 잊어버렸다. 각자의 사정이 쉽게 이해됐다. 미움을 기록해 두지 않으면, 금방 화를 풀어버리는 내가 바보 같았다. 누구든 나를 따뜻하게 대하는 건 귀신같이 알아챘다. 한번 고마우면, 다음번에 여러 번의 잘못을 하더라도 그냥 넘어가졌다. '애정결핍이라서 그런가.'라는 생각에 한심해지기도 했다.
내 이야기를 글로 쓰기로 했다. 나부터 나를 봐주지 않으니, 다른 사람들의 호감에 쉽게 휘둘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제대로 마주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이런 결심에도, 여전히 글을 쓰는 것은 망설여졌다. 글에 담기 전, 가장 친한 친구에게 나의 긴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나를 내보이기 전에도 많은 연습이 필요했다.
용기가 안 나서, 술을 마시면서 조금이라도 털어놓을까 했지만, 혹여 말할세라 나는 술과 함께 말을 삼키고 집에 돌아왔었다. 그러한 몇 번의 시도 끝에 친구에게 이야기했다. 말하고 나서도 마냥 속이 시원하지는 않았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과 이창동 감독을 좋아한다. 사라진 것, 사라질 것, 소외된 것을 비추는 그들의 시선이 좋았다. 그들의 영화에서는 먼지가 반짝였다. 소외를 비추는 시선이 반짝이는 먼지에 집약된 듯했다. 오래 전에 쌓인 나의 어느 부분도 반짝이길 바라며 작업실...
미뤄둔 일기가 많이 쌓였다
일기에는 '나는'과 '오늘'을 적는 것이 아니라고 배웠다. 너무 당연한 단어라 쓸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의 일기는 늘 '오늘 나는'으로 시작됐다. 진짜가 아닐수록 '진짜'를 많이 쓴다는 말처럼.
초등학생 때는 매년 일기장 검사를 받았다. 일기를 써서 제출하면, 담임 선생님이 짧은 답장을 적어놓았다. 그게 좋았다. 선생님과 편지를 주고받는 느낌이어서 좋은 내용, 재밌는 내용을 적어서 선생님께 보이고 싶기도 했다.
누군가의 일기장도,
늦게라도 쓰여지길 바라며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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